나 이제 일어나 가리 나는 게으른 탕자인가? 벚꽃이 휘날려 떨어지고 목련마저 '후드득-' 세상을 버릴 때까지, 나는 게으른 탕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렇게나 뒹굴며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뼈아프게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면서도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 '이제 일어나야지', '이제 ..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07.17
나는 그냥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다 나는 소나무가 되고 싶다. 대관령에 찬바람에도 잘 견디어 내고,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도 고고하게 서 있는 그런 소나무가 아니라도 좋다. 동해안 하얀 모래 띠를 따라 검푸르게 성으로 모여 서서 하얀 파도를 바라보는 그런 소나무가 아니라도 좋다. 문의면 문덕리 월리사를 감싸안고 다북다..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2.07.12
탐욕의 계단 정말로 신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삶은 신이 내린 은총인가? 시인 김남조는 이렇게 읊었다.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김남조의 ' 雪日'에서) 그렇다면, 현암사에 가야 한다. 바위에 매달린 듯한 고찰에 그 어려운 계단을 밟..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07.12
목련꽃 지는 법 내 작은 서재 서쪽 창문을 내다보면 이웃 아파트 정원에 피었다 지는 목련을 볼 수 있다. 일찍 퇴근한 날은 아파트 숲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낙조를 볼 수 있다. 해는 거뭇한 참나무 숲으로 떨어질수록 더욱 꼭두서니 빛으로 발갛게 자신을 불태우다가도, 멀리서도 보이는 잎사귀마다 은비늘 같은 반짝.. 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2002.04.13
봄에 만나는 나 봄 아침, 산에 오르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있다. 이 아침에 만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봄의 보송보송한 느낌이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부서진 솔잎이 깔린 오솔길을 걸으면 흡사 양탄자를 밟는 듯한 감각이 부끄러움으로 전해 온다. 솔잎이 깔리지 않은 길이라도 오솔길에는 아직도 습습한 물기..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2.04.06
구병산 정력 샘물 구병산에 가보세요. 말만 들어도 화려하잖아요. ―아홉 폭 병풍을 두른 듯한 산―. 단번에 아홉 폭이나 되는 산수화가 떠오르잖아요? 조화옹이 여덟 폭을 둘러치다가 한 폭 더 욕심을 부려 본 모양이지요? 한 번 가 보세요. 정말로 산수화 속에 거니는 신선이나 도인이 된 기분이거든요. 유..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02.10
우산을 펴지 않는 것은 아직은 소한에서 대한에 이르는 길목인데도 해토머리에 내리는 비처럼 주룩주룩 쏟아진다. 벌써 땅이 녹기 시작할 건가? 아니면 더욱 꽝꽝 얼게 할 셈인가? 출근길에 아내가 우산을 내어 준다. 지하주차장까지 우산 없이 뛰어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도 겨울비니까 우선 차가울 테고, 오랜만에..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2.01.22
그날밤, 강나루에서 그날밤 나는 강나루에 서 있었다. 아프리카 흑인 어린이 이마에 그믐달빛이 비쳤을 때처럼 검은 빛이 반짝이도록 수마가 잘된 자갈이 뒹구는 나루였다. 낡은 나룻배가 한 척 강안(江岸)에 소슬이 매어 서늘한 바람에 흔들거리고, 가로지르는 부우연 안개 아래로 검은 물결은 어스름에도 반짝인다. 이 .. 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2002.01.09
기차에서 만난 그녀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내와 함께 있으면 우리는 조건 없이 우리이다. 아니 우리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우리이다. 우리는 함께 살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함께 생존한다는 것과 다르다. 한 집에 살면서 같이 자고 일어나 같이 밥 먹고,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01.09
연자방아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당신께서 늘 넘나드시던 언덕으로 자리를 옮기신 처음에는 매일 아침 가 뵈었는데, 차츰 주말에나 한 번 들르게 되더니, 이번에는 벌써 한 달이나 된 듯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임을 생각하면 죄스럽기 짝이 없다. 지난 여름 산소 앞에 베어낸 아.. 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200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