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22

그냥 떠나신 아버지

그냥 떠나신 아버지 “아들, 막내야”아버지의 외마디 부름이다. 나는 가까이 사는 형님에게 급하게 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새벽 2시 형인들 쉽게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파트에서 업고 내려왔지만 차에서 내려서 응급실까지는 걸어오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직의사가 급하게 x-ray 검사를 하더니 심근경색이 심하게 왔다고 했다. 이 정도면 삼십대도 힘들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술이 확 깼다. 급하게 형님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의사는 최후진단을 내렸다. 새벽 2시 40분이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그때 형님과 형수님이 도착하셨다. 나는 죄인처럼 말했다. 나는 죄인이다. “돌아가셨어요.” 형님도..

벌초냐 도토리냐

오늘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를 했다. 지난여름 긴 장마에 개망초가 두어 자씩 자라고 억새도 숲을 이루어 제절에 고라니 잠자리까지 생겼다. 유월에 해야 할 여름 벌초를 비 때문에 미루다 팔월초순에나 할 수 있었다. 개망초를 다 뽑아내고 억새를 베어냈다. 잔디만 남긴 다음 예초기로 예쁘게 다듬어 놓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했다. 봄에는 봉분에 이끼가 생겨 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뿌리 썩은 잔디가 누렇게 스러졌다. 부근에서 떼를 떠다가 이었는데도 아직도 내 엉성한 속안머리처럼 허여멀겋다. 늦은 가을 다시 한 번 떼를 파다 이어야겠다. 혹시 아나.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속안머리를 까맣게 채워주실지. 허허, 그 소망이 가소롭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늦잠 자고 있을 아들을 불러 운전을 부..

해후

2013년 7월 27일 할 수 없다. 네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강둑이건 논둑이건 달리는 수밖에. 좁은 강둑을 한참이나 기어가다시피 했다. 앞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노인이 있어 속도를 낼 수 없다.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천하 태평이다. 그래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얼마나 가랴. 이렇게 사는 것이 평화이다. 옛날에 우리는 그렇게 태평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강둑을 가다보니 네비가 둑 아래로 내려서란다. 그래 가 보자. 40년 만의 해후. 마음이 급할수록 시간은 멀고도 멀다. 강둑에서 막 내려서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하는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를 끝으로 지도가 바뀌어 버린다. 아 여기가 곧 273-3번지구나. 황당하다. 어디로 가라고 길 가운데 세워 놓는가?  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