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상생법 흙에 대하여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이라고 모순된 相生의 원리를 적나라하게 읊은 시인이 있다. 인간의 실존적 존재의 고뇌에 착상한 시인 오세영님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五行의 相生 원리를 생각한다.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라는 흙에서 시작해.. 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2003.04.04
떫은맛 우려내기 박용래의 시 로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질투다. 한겨울 눈 속에서나 쓰는 하얀 벙거지를 쓰고 사진 속에서 씽긋 웃고 있는 그가 감을 얼마나 알고 있단 말인가? ‘여름 한낮/ 비름 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 돌담 위/ 연시(軟柿)로 익다’는 식의 시의(詩意)의 전개가 자연은 인생의 한 뿌리라는 오묘한 이치를 소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또 어린 날을 온통 고욤나무와 감나무 숲에서 함께 자란 알량한 나의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창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어린 날 날마다 보아도 가슴 울리던 고향집 감나무를 그렸다. 내 기억의 따뜻한 언덕에 서있는 감나무는 지금쯤 다른 나무보다 먼저 상순까지 낙엽을 끝내고 발갛게 익은 감만 소복하게 매달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감나무에서 발갛게 익어가는 ..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12.04
호박 같은 아내 올 가을에도 호박이 한 스무 덩이쯤 들어왔다. 농사를 짓는 아내의 초등학교 친구가 보내 온 것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두 덩이씩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고도 열 덩이쯤 남았다. 아내는 또 누군가 나누어 줄 사람을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꼽고 있었지만, 나는 이제 그만 거실에 두고 마음 보.. 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2002.11.13
해 없는 해바라기 진솔한 마음으로 우러러볼 수 있는 태양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자신의 진짜 태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도 또한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그토록 바라기를 하는데도 구름 속에서 숨어 짱짱한 볕 한 번 제대로 비쳐 주지 않는 태양을 향해 애타는 '바라기'를 .. 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2002.11.08
그날 아침 5시 30분. 세 시간쯤 잤구나. 이 감방에서 이 시간에 잠에서 깨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방이 온통 벽으로 둘러싸인 내 감방은 여명을 알리지 못한다. 그냥 암흑만 있을 뿐이다. 지정된 연구 임무를 띠고 감금된 지 오박육일, 오늘 새벽에야 최종 보고서에 서명할 수 있었다. 정해진 날짜..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10.28
하나의 잎새에 머문 우주 - 나의 수필 쓰기- 1. 수필 바로 보기 수필은 무엇인가? 누구는 수필을 서정이라 하고, 누구는 수필을 교술이라 한다. 또 누구는 수필의 서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수필은 반드시 서사적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흔히 수필은 형식이 없으므로 자유스럽게 쓰면 된다고 한다. 붓이 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 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2002.10.20
자귀나무 그루터기엔 새움이 돋고 아파트 앞 주차장 베어낸 자귀나무 그루터기에서 새로 움이 돋았다. 장마가 계속되는 요즈음, 잎이 무성한 자귀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더 많은 이슬을 안고 있다. 차를 세우고 내릴 때, 내 차의 커다란 문에 걸려 휘어졌다가 문이 닫히는 순간, 함북 머금었던 이슬을 내 바지자락에 힘껏 뿌리는 심술도 .. 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2002.08.25
아카시아의 오만(傲慢) 빗줄기 사이로 학교앞 동산의 울창한 아카시아가 더욱 그 오만한 녹음을 자랑한다. 아카시아 숲은 작년 봄 새로 배수지를 건설하느라 파헤친 붉은 황토를 가려 주어 정말 다행이다. 산 위인데도 아카시아 나무 사이로 가끔 자동차가 보일 듯 말 듯 지나기도 하는 것이 신기하다. 지난봄에..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2.08.12
중미산 가는길 떠날 차비를 했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듯 하나하나 차곡차곡 가방에 챙겼다. 이박삼일의 짧은 여행인데도 준비할 것은 참 많기도 하다. 이번에는 김용택 시인의 시집 『섬진강』을 챙겼다. 무슨 생각인지 시어사전도 넣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넣고 싶었으나 또 참았다. 조동일 교수의 『한국문학 통사.. 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2002.08.11
보리밥이 싫은 이유 김선생님한테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또 보리밥 얘기를 한다. 점심은 먹어야 하지만 보리밥은 싫다. 사실 오늘은 여름 휴가 마지막 날이다. 방학을 맞아 꼬박 일주일을 편히 잘 지냈다. 이번 여름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방에서 뒹굴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한가롭게 지냈다. 하루 90분..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