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40

앉은뱅이 일으키기

앉은뱅이 일으키기 교회는 조용했다.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앉은뱅이 노인 옆에 전도사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는 고요하고 경건해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도가 격렬해진다. 멀어서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간절함이 보였다. 하느님이 강림하신 듯, 예수처럼 성스러웠다. 예수께서 마지막 날 게쎄마니 언덕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누워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자고 있느냐. 깨어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던 성스럽고 안타까운 모습이 보였다. 절대자 앞에 우리를 데려다 주는 진정 사제의 모습이었다. 그는 접신(接神)을 한 것일까. 스스로의 생존이 아니라 앉은뱅이 일으키기에 몰입한 전도사가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전기도 없어 어둡고 침침한 예..

반야로 가는 길

반야로 가는 길 월류봉 광장에 우리가 모였다. 여기서 반야로 가는 길을 찾는다. 월류봉은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초강천에 감겨있다. 달이 경관에 취해서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 다섯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 오봉에서 바위 한 덩어리가 미끄러져 내려와 강 가운데서 불끈 일어섰다. 그 바위 마루에 월류정이 있다. 제 그림자에 취한 달도 편히 머물 수 있겠다. 정자까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이다. 월류정을 품은 광장은 풍류 마당이다. 시가 있고 향기로운 술이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 있고…. 예나 지금이나 색(色)의 공간이다. 우리는 여기서 투명한 참 지혜가 있는 반야(般若)의 세계로 찾아가야 한다. 초강천은 비단가람의 한 줄기이지만 성난 황소의 영각처럼 소리를 지르며 월류정 아래를 파고든다. 물안개..

따비

따비 엇, 저게 뭐지? 아 따비구나. 저게 바로 따비야. 한국민속촌에서 오래된 농기구를 발견했다. 문우들과 이야기에 빠져서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따비를 처음 본 것은 거의 50년 전 벽지학교에 부임했을 때이다. 화전민 학부모 집에 올챙이묵을 얻어먹으러 갔는데 헛간에 따비가 있었다. 밭을 가는 농기구 같은데 삽도 아니고 쟁기나 극젱이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이 따비라는 것을 학부모에게 물어서 알았다. 전에는 ‘따비’ ‘따비밭’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농기구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다. 어른들은 산비얄을 일구어 고구마나 조를 심어 먹는 밭을 따비밭이라 했다.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던 1960년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언 땅이 풀리기 시작하는 2월이면 산비얄을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 그 밭을 따비밭이라 했다. 해..

칭키즈 칸 마당에 세종대왕이

칭키즈 칸 마당에 세종대왕이 말은 달리지 않는다. 칭키즈 칸 기마상은 언덕 위에서 은빛으로 빛나지만 그냥 멈추어 서 있다. 은빛 잔등에 8월의 볕이 부서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금방 파란 물감을 마구 쏟아 부을 듯하다. 푸른 하늘이 있기에 칭키즈 칸은 눈부시게 보이는 것이다. 천진벌덕(Tsonjin Boldog) 벌판이 바로 여기이다. 칭키즈 칸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행운의 황금 채찍을 발견했다고 알려진 벌판이다. 고향을 바라보고 우뚝 서있는 칸의 모습에 몽골인들은 감동한다. 칭키즈 칸의 마당이다. 초원을 건너온 바람이 언덕으로 몰아친다. 계단을 오르는데 옷깃을 여며야 할 정도로 바람이 차다. 칸이 밟고 있는 건물에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고 말의 뒷다리 쪽으로 오르면 칸이 들고 있는 황금색..

원대리 자작나무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이다. 그야말로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하다. 어찌 이렇게 하늘로 하늘로 뻗어 오를 수 있는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도쯤 비탈진 수렛길을 3km 정도 걸었다. 큰길가에 못생긴 자작나무들이 '나 여기 있어요.'하면서 구부정하게 서있다. 잔가지도 많고 구부러지고 꺾여서 볼품없다. '너는 아니다. 나서지 마라.'하는 마음으로 그냥 걸었다. 경사진 시멘트 포장길은 힘겹다. 발목부터 무릎까지 팍팍하다. 그래도 걷는다. 오직 훤칠하게 하늘을 향하는 자작나무를 만나려는 설렘이다. ‘원대리院垈里’란 이름은 좋은 삶의 터란 의미이다. 인제에서 내린천을 건너 깊숙한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오지이지만, 나그네 쉬어가는 원터의 의미도 갖고 있다. 마의태자도 서라벌에서 하늘재를 넘어 충주 미륵대원사를 지..

성 그리고 나무

성 그리고 나무 감염, 방역, 격리, 확진 불신의 어휘들이 벽이 되어 세상을 가로막고 있다. 미디어를 열면 생경한 어휘들이 마구 달려든다. 반가운 사람도 손잡을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포옹할 수 없다. 혼자 걷고 혼자 먹고 춤도 혼자 추어야 한다. 격리가 최선이고 혼자가 마음 편하다. 우울하다. 이런 상황에서 뛰쳐나가고 싶다. 가림성에 가자. 거기엔 사랑나무가 있지 않은가. 불신을 허물고 사랑의 약속을 지켜준다는 느티나무가 있다. 모든 사슬을 벗어버리고 카메라를 메고 차안 가득 사랑의 신을 모시고 출발했다. 머릿속엔 이미 느티나무를 그리고 있다. 가림성은 몇 해 전 산성 답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다녀왔다. 그 후 봄이든 겨울이든 가리지 않고 다녔다. 가림성에는 백제 동성왕과 위사좌평 백가苩加의 비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