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버마재비 문답(自責) 13

열림이냐 닫힘이냐

열림이냐 닫힘이냐★ 닭들의 변명 “우리가 열렸다. 야, 들어가자.”먹을 게 수두룩하단다. 먹거리가 권력이 되고 권력이 먹거리가 되는 법이다. 쉽게 주워 먹기 좋아하는 닭들은 다 모여라. 정체성 같은 건 내던지고 다 모여라. 이념 나부랭이 같은 건 필요 없다. 모가지에 푸르거나 붉거나 타이를 매고 ‘꼬끼오’ 목소리만 크면 된다. 울짱은 훤하게 열려있으니 뛰어 넘을 필요도 없다.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고? 우리는 닭이니까. 양심이나 도덕이나 이념 같은 건 없어도 되는 닭이니까. 먹이만 쪼는 파렴치한 닭대가리니까. 우리는 더불어 몰려가기만 하면 민주가 되고, 공정과 상식을 외치기만 해도 힘이 되니까. 사악함으로 빼앗기만 하면 그것이 민생이고, 아무에게나 어리석음의 간과(干戈)를 들이대도 그것이 공정이..

버립니다

버립니다 『孤獨의 反芻』이 책은 수필가 윤오영이 1974년에 낸 첫 수필집이다. 오지 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100리나 되는 군청소재지의 서점까지 나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호롱불 아래서 이 책을 읽고 윤오영 수필에 취했다. 이듬해에 그 서점에 갔더니 『수필문학입문』이란 윤오영의 저서가 나와서 바로 구입했다. 수필 창작에 대한 전문서적이 별로 없었던 당시에 두 권의 책이 내게는 문학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어느 문학단체에서 ‘고전에게 길을 묻다’라는 수필문학 활성화의 심포지엄을 기획했다. 나는 이 기획에 발제자로 선정되었다. 평소에 우리만의 수필을 주장했던 나는 윤오영의 『고독의 반추』를 통해 우리 전통수필의 맥을 찾아 공론화할 기회로 가늠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재를 샅샅이 뒤져도 『고독의 ..

나으리의 사려, 꼰대의 생각

나으리의 사려, 꼰대의 생각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대답은 약속한 듯 똑같다. 장관 후보자들이 자신의 삶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다는 말이다. 외교관이었던 한 분은 주재국에서 사들인 도자기를 관세 없이 들여와 판매까지 했다고 한다. 한 분은 공무원 특혜로 분양 받은 아파트를 살아보지도 않고 팔아 떼돈을 벌었다. 다른 한 분은 공무로 해외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남편과 자녀들을 대동하고 관광까지 했다고 한다. 사려 깊지 못한 나으리들의 행위를 꼽아볼수록 약오르고 누려온 특혜에 분노한다. 이 분들이 사려가 깊었더라면 언론은 재미가 없었을 테고 야당도 지금만큼 기세등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분노하지 않아도 되고 정부가 말하는 ‘공정’이란 말도 헛갈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가 흠결만 잡..

일절만 하시지요

- 느림보 아저씨, 왜 어깨가 축 쳐져 있어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 에잇 이 버마재비 놈아,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시빗거리냐? 넌 만날 만나기만 하면 시비더라. - 그것 보세요. 느림보 아저씨 제발 일절만 하시지요? - 이놈아, 일절만 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 아저씨 그냥 무슨 시빗거리냐고 물어보면 될 것을, 만나기만 하면 시비냐고 덧붙이냐 그 말씀이지요. 제가 언제 만날 시비였나요? 그러니 이절까지 간 게 아니냐는 말씀이지요. - 아니 '만날 만나기만 하면'이란 말이 뭐가 그리 안 좋은 말이냐? - 이것 보세요. 무슨 시빗거리가 있느냐? 여기까지는 일절, 넌 만날 만나기만 하면 시비라고 한 건 저에 대한 인신공격이잖아요? 그건 이절이라고 하는 거예요. - 그럼 네가 만나기만 하면..

보련산 버마재비 - 상행 2012 -

보련산 버마재비 - 상행 2012 - 이방주 보련산에나 가자. 이 답답한 하늘이 보련산에 가면 열리려나. 그러나 계산하는 것조차 답답한 하늘을 만드는 것임을 아는가? 최근에 김광규의 시 을 읽고 난 뒤 왼쪽 옆구리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 나를 괴롭히는 버마재비와 싸움을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우선 연꽃 같은 보련산 보탑사에 정중하게 모신 아름다운 부처님께 3배를 올리자. 그리고 땀을 흠뻑 흘리자. 보련산 연꽃잎을 한잎 한잎 오를 때마다 부처님께 비는 거야. 거룩한 부처님이시여, 제발 제 옆구리에서 기어 나오는 버마재비를 처단해 주십시오. 기어 나와서 저에게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저 버마재비를 처단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그냥 커다란 소가 되어 살아가게 버려두십시오. 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밥이나 ..

버마재비야, 이제 총을 버려라

버마재비야 이제 총을 버려라         (하늘은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장대비를 퍼붓는다. 진천 이원아트빌리지에 그야말로 아트를 체험하려고 달려갔다. 길은 노아의 홍수를 맞은 것처럼 온통 물바다이다. 차는 방주가 되어 물을 가르며 달렸다. 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버마재비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전쟁의 잔해를 붙여 만든 버마재비는 도끼 모양의 앞발에 총을 들고 세모대가리에 철바가지로 붙인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 여, 수필가 느림보님, 이렇게 험한 날씨에 그 알량한 문학기행이신가? 이런 날은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그래요. (나는 큰 소리에 놀라 움칠 뒷걸음질 쳤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작달비는 미술관을 부숴버..

傲慢의 生理 -버마재비의 의문-

傲慢의 生理 -버마재비의 의문- - 수필가 느림보님 안녕하세요? 요즘은 글감도 많은데 그 잘난 펜을 꺾었나 보지요? 이 귀여운 버마재비에겐 눈길 한번 안 주시나요? - 오! 버마재비, 무슨 일이냐? 아직 春來不似春인데 목숨을 걸고 나왔냐? 오늘이 19도라고? 그러다가 갑자기 사방이 얼어붙는 수가 있느니라. 유식한 인간의 말을 믿고 너의 거처로 얼른 돌아가라. 나는 그래도 생각 깊은 수필가가 아니냐? - 하하! 수필가님, 다르긴 다르시군요. 인간은 인류라는 동물의 생명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 버러지라고 모독하는 버마재비 목숨을 걱정하다니요. 진심인가요? 영 믿어지지 않아. 혹시 버마재비도 키워 돈을 살 생각은 아닌가요? 그러면 버마재비 공장이라도 짓고 당신들이 버러지라고 하는 우리네 곤충류를 잡아..

낙가리 포도밭 사람들 -버마재비 의문-

수필가 느림보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네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날씨에 맡겨야하는 우리 버마재비들의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네요. 그런데 느림보님, 사람들의 운명도 뭐 별 수 없게 되었던데요? 특히 용암동 낙가리 사람들 말예요. 느림보님, 지난봄 낙가리로 올라간 적 있지요? 초파일이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