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24

청주성 탈환과 주봉마을 민충사(愍忠祠)

청주성 탈환과 주봉마을 민충사(愍忠祠)  산양재 마을 탐방에서 박춘번 묘비를 읽고 청주성 탈환 영웅의 행적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순천박씨인 춘무(春茂), 춘번(春蕃), 동명(東命)이 그들이다. 이들의 행적은 산양재 마을(東陽村) 경로당 연혁비에도 있고 산양재 마을 박춘번 묘비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박춘번 묘비나 산양재 경로당 연혁비에는 청주성 탈환에 대하여 춘번을 중심으로 그의 형인 춘무, 조카인 동명이 도와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 살펴보았다. 순천박씨 세 분의 공로는 다를 게 없는데 그들의 활동이 대부분 춘무가 중심이 되고, 그의 아들인 동명이 크게 활약하였고 춘번도 여기에 함께한 것으로 기록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동명은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에서도 공이 컸고 그 아들..

산양재 마을을 지키는 낙락장송

산양재 마을을 지키는 낙락장송 비하동 강서초등학교 뒷산을 넘어가면 산양재 마을이 있다. 반송리에서 조치원 가는 큰길을 건너 신작로를 따라 서촌동으로 가다 보면 산양재 마을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산양재는 열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몇 번 가 본 것이 전부이다. 죽림동 고향집에서 5리가 좀 넘었는데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 그 마을을 찾아갔다. 반송에서 신작로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되었다. 지금 강서1동 중심지인 반송리는 그 시절 1960년대 후반에도 가게가 있고 장이 섰다. 등잔불 켜는 석유를 사러가거나 식구들 생일이 돌아오면 심부름으로 물오징어나 꽁치를 사러 가기도 했었다. 부모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 우백호 자락에는 낙락장송이 늠름하고, 좌청룡 자락이 된바..

독립운동가 마을과 덕신학교

독립운동가 마을과 덕신학교 옥산들에 가을이 한창이다. 큰길에서 코스모스 너머로 보이는 들판이 풍성하다. LG로를 따라 미호강을 건너면 세계 최고 볍씨마을 소로리가 거기이다. 덕신학교가 있던 독립운동가 마을 덕촌리는 옥산면 소재지를 지나야 한다, 면소재지를 지나 고가 차도를 넘어서면 오른쪽 갈림길이 하동정씨 세거지인 덕촌리 들머리이다.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1968년 창립되어 반세기를 넘어서 아직도 건재한 전국 유일의 이(里) 단위 신용협동조합인 덕촌신협이 보인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고요하다. 응봉산 솔숲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품격 높은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금방이라도 만세소리가 고요를 깨뜨릴 듯하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덕촌리 독립운동가 마을’ 표지석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구녀산성에서

성사랑은 끝났다. 높고 가파른 산을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인제는 몸이 산성과 겨루기를 할 이유도 없다. 마지막으로 나지막한 구라산성을 갔다. 구녀산성이라고도 하는 구라산성은 초정에서 미원으로 넘어가는 이티재에서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상당산성에서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좌구산 쪽으로 등마루를 밟으면 구라산성과 만나기도 한다. 구녀산성에는 아홉 누이와 막내아우의 성 쌓기 내기 전설이 있다. ‘오누이 성 쌓기 내기’ 유형의 전설은 예산의 임존성에도 ‘묘순이 바위’ 전설이 전해지고, 세종시 애기바위성에도 유사한 전설이 전해진다. 함께 쌓으면 될 것을 혈육이 다투다 함께 파멸을 맞는 이야기이다, 구녀산성 전설은 구라산성이 구녀산성으로 이름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고구려 산성이라는 의미에서 ..

춤추는 호랑이

춤추는 호랑이 이방주 호무골은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과 용담동 사이에 있다.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앉았다. 2000년 즈음에 근무하던 금천고등학교 복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하루 종일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과수원이 보이고, 과수원 한가운데 평화로운 집 한 채가 아주 가깝게 보이기도 했었다. 한 5년쯤 지나서 주변이 시가지가 조성되고 아파트가 들어섰는데도 과수원 마을은 그대로 보였다. 어느 토요일 찾아가보기로 했다. 학교 뒤쪽으로 4차선 도로를 따라 주성고등학교 쪽으로 가다보면 산성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산성초등학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골짜기에 아담한 마을이 나온다.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에도 편입되지 않은 마을은 동글동글한 야산 아래 전설을 간직한 채 평화로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몽단이재 의마총(義馬塚)

몽단이재 의마총(義馬塚) 말무덤은 잡초에 묻혀 있었다. 주검 모양대로 봉분을 지었는지 몸통, 머리, 네 다리가 말의 형상 그대로이다. 7월의 햇살이 쪼아대니 풀이 삐들삐들 말랐다. 봄에 피었을 삐비꽃 한 무더기가 마른바람에 흔들린다. 의마가 찢어 물고 왔다던 주인 매은당梅隱堂 박동명朴東命 장군의 옷자락 같다. 청주시 옥산면 국사리 의마총을 찾아갔다. 봉분 앞 ‘義馬之塚의마지총’이란 표지석이 개망초 꽃대에 가렸다. 개망초가 하얗게 핀 제절이지만 옥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梅隱堂義馬之塚碑’ 육척 비문에 고스란히 남았다. 비석은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까지 얹었다. 비를 세운 이들의 정성이 갸륵하고 격식이 있다. 제절 아래 2004년에 세운 ‘몽단이재와 의마총 유래비’는 옥산면 이장들이 정성을 모았다. ..

지금 율봉역에는

지금 율봉역에는 저녁 8시, 율봉공원은 활기가 넘친다. 유월초순, 비릿한 밤꽃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무대 위에 한 여성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인지 체조인지 흔들어댄다. 공원 잔디밭까지 점령한 사람들이 함께 흔들어댄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흘끔흘끔 쳐다보니 긴 머리 큰애기도 있고 빠글빠글 볶은 머리 아줌마도 있다. 엄마 따라온 젖먹이 아기는 유모차에서 흔들어댄다. 걸음마 어린 아가도 아장아장 흔들흔들 흔들어댄다. 조밥에 입쌀 섞이듯 사내들도 듬성듬성 흔들흔들한다. 강아지들은 잔디밭에서 제멋대로 뛰어다닌다. 밤이다. 밤꽃 냄새 흐드러지는 밤이다. 세상이 흔들어대니 나도 흔들린다. 사람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간다. 철강으로 납작하게 만들어 세운 역마(驛馬) 세 필이 달리는 모습으로 멈..

상당산 호랑이

상당산 호랑이 나는 오늘도 네가 그립다. 너의 고운 얼굴이 그립다.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길고 성긴 속눈썹을 드리운 너의 눈빛이 그립다. 새벽안개가 걷힐 무렵 이름보다는 아름다운 미호문에 오르면 거뭇거뭇 네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뭇한 실루엣이 초록으로 변해갈 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를 응시한다. 한남금북정맥 골짜기마다 잔설이 녹고 초록이 꿈틀거리는 해토머리 한낮이 되면 너도 내게 점점 다가오는 느낌이다. 태양이 황홀한 노을을 너의 온몸에 쏟아 붓고 하늘빛이 시나브로 숨을 거두면 나는 아쉬움으로 몸부림친다. 너의 둥그런 등줄기 너머로 청주 시가지가 뚜렷하게 보이는 아침이 올 때까지 나도 외로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수읍, 오창읍, 오송읍을 품고 있는 미호강이나 팔결들판도 내..

방죽골 장승제에서

방죽골 장승제에서 방죽골 장승제에 다녀왔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얼음이 풀리고 흙이 부드러워진다. 못가에 버드나무는 잔가지부터 옥색을 띤다. 대보름은 대개 입춘과 이웃한다. 이때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면서 새해 사람살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동제를 지내는 마을은 거의 사라졌다. 원형대로 전승되던 문의면 노현리 달집태우기도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문의면 남계리 방죽골에서 장승제를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주에서 청남대쪽으로 가노라면 오른쪽으로 방죽골 마을유래비가 보인다. 회덕황씨 문의파 낙향시조인 황희옥이 1470년경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땅을 개간하고 방죽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연년세세 황씨네 삶의 터전이 되었다. 마을은 나지막한 야산 기슭에 동남향으로 포근하게 들어앉았다. 앞에는 정방..

고려견의 생각

고려견의 생각 초롱길을 혼자 걷는데 목줄도 없는 개가 나를 보며 ‘앙앙’ 짖어댄다. 달려들 기세이다. 개는 무엇으로 짖을까. 윤동주 시인은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라고 했다. 시인이 자신을 어둠으로 규정한 까닭은 지식인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나도 어둠이라 부끄러워하면서 ‘가자, 가자’ 해야 하나. 어떤 이는 개가 짖는 것은 반가움의 표현이라 한다. 그럼 밝음이다. 개도 두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다. 누구나 어둠과 밝음이 있다. 이빨을 드러내고 앙앙거리는 초롱길의 개는 나에게서 어둠만을 본 것이다. 어둠 뒤의 밝음은 보지 못한 것이다. 청주대학교 박물관 앞에 가면 오래된 개 두 마리를 만난다. 고려견이다. 남석교 양쪽 머리 법수(法首) 상단에 조각되어 서 있었는데 어찌어찌해서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