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탕자인가? 벚꽃이 휘날려 떨어지고 목련마저 '후드득-' 세상을 버릴 때까지, 나는 게으른 탕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렇게나 뒹굴며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뼈아프게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면서도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 '이제 일어나야지', '이제 일어서 가야지'하면서도 늘 그렇게 그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떨쳐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탓하면서도 그런 나의 나태를 인정하는 용기를 갖지 못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누가복음 15장 18절)
이런 종교적 회개를 생각하면 나의 나태는 나에 대한 죄일 뿐 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나를 둘러 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게으른 탕자인 것이다.
금수산 정방사는 벌써 15,6년 전 단양에 살 때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못 가고 말았다. 작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길을 떠났다가 청풍 문화단지를 거쳐 상천리 백운동에 차를 세우고, 금수산에서 가은산으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의 절경을 바라보다가, 장송이 서있는 기슭을 돌아 나오면서도 정방사라는 표지판만 보고 2.5Km를 걸어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백운동 마을에서 바라보는 금수산의 경관이나, 금수산의 한 지맥인 가은산의 아기자기함을 보면서 그냥 만족하고 말았다. 능강 마을의 아름다움에 취해 운전을 기우뚱거렸다. 그러면서 틀림없이 절을 감싸고 있을 법한 가장 아름다운 산줄기 하나를 온통 더럽히고 있는 방갈로들을 바라보면서 걸쭉한 말들이나 내뱉을 줄 알았지, 절이 있는 계곡으로 차 머리를 들이댈 용기는 내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별것 아닌 일에도 '떨치고 일어서 나아가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게으른 탕자였다.
또 지난 5월 친구 내외와 나의 초임지를 돌아보고 새로 준공을 본 옥순 대교에서 구담봉, 옥순봉과 청풍호에 빠진 금수산 자락의 비단폭 같은 아름다움에 취했으면서도, 막상 정방사 입구를 지나 올 때는 '한꺼번에 다 돌면 다음에 또 못 오지.'하는 핑계를 대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역시 능강 마을의 방갈로에 대고 점잖지 못한 언사나 내뱉으면서…….
그러나, 초파일 우리 절 예배를 끝내고 기어이 정방사 참배를 떠났다. 입구에는 이미 안내하는 분이 와 있었다. 차를 가지고 갈 수도 있다 했다. 그러나 절에 예배 오는 이들을 위해서 합승 버스를 운행한다 했다. 차를 입구에 세워 두고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며 점심을 먹었다. 걸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길은 뜻밖에 포장까지 되어 있다. '일어서 나아가기'만 하면 이렇게 열리는 것을 '박차고 일어서 나아가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고찰이기는 해도 화려하거나 웅장할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절 마당에 불두화나 한 두 그루 서있고, 절 집의 지붕 너머로 낙락장송이라도 몇 그루 보이는 그런 절이면 족할 듯 했다. 혹시 마당이 넓어 연못이 있고,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 들어 수초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수초들 사이로 항상 깨어 정진한다는 잉어라도 유유히 돌아다닌다면, 더욱 서방이 바로 거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수련 몇 송이 둥둥 떠 있는 걸 기대한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그러나 밟고 올라선 계단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며 고개를 꺾어 올려다 본 절 집은 그런 한가한 중생을 경악하게 했다. 절 집 지붕을 덮었을 것 같은 소나무는 간 곳 없고 금방이라도 쓸어 덮을 것 같은 바위 절벽이 나의 나태에 대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바위 밑에 겨우 붙어 그 으름장을 도망할 수 있는 대웅전의 앞마당은 다섯 보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열려 있는 문으로 부처님이 품고 굽어보시는 사바 세계는 광활하고도 풍요롭다. 힘차게 꿈틀거리는 금수산의 용틀임이나, 이무기의 발톱으로 할퀸 것 같은 청풍 호반의 수몰선이 모두가 으르렁거리며 나태한 나를 꾸짖는 듯하여 온몸이 움츠러든다. 금수산이 아무리 건산(乾山)이라지만, 그 서사면(西斜面)에 뿌리내린 생명들은 넘치는 생기를 몰아 서늘한 깨우침으로 마구 달려든다. 절 집 그 자체가 목탁이고 경전이고 염불이고 석가의 미소이다.
대웅전을 돌아 뒤안의 바위 아래가 궁금하다. 거기에는 바위에서 짜낸 듯이 감로수가 괴어 있다. 물 한 구기를 떠서 아내와 딸아이에게 건네고 나도 마셨다. 온몸에 스민 탕심이 사르르 씻어 내리는 듯하다. 티끌 한 점 없는 정갈한 뒤안이 부처님의 으름장을 보는 듯하다. 여러 해의 역사(役事) 끝에 완공을 본 듯한 바위 위에 소담하게 매달린 말벌의 토굴이 부처님의 자비를 일깨운다. 이런 정갈함과 역사(役事)를 통해서 중생은 거듭난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아래 들마루에서 땀을 씻었다. 보살 한 분이 벌겋게 수박을 잘라 온다. 보살님의 마음이 돌미나리 향기처럼 아름답다. 나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누가 이 높은 곳까지 수박을 공양하였을까? 그냥 절공양 삼배로 끝난 나의 나태가 부끄럽다.
끝없이 멀리 보이는 하늘, 그리고 그 끝에 거뭇한 산줄기, 그 수많은 산줄기들이 잿빛 가사 입은 사제가 되어 부처님 꿇어 엎드려 있다. 맑은 호수에 눈뜨고 정진하는 잉어 대신 청풍 호반의 수많은 눈뜬 중생들이 정진할 것이고, 불두화를 피울만한 아담한 뜨락 대신에 온 산이 온 가지 생기를 내 품는다.
한없이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낙조를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우리는 걸어서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온통 신성한 부처님의 울력으로 가득했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나태를 떨치고 일어서 가는 길에 용서와 자비가 있는 것을….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나태를 떨치고 일어서 가는 길에 으름장과 깨달음이 있는 것을….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나태를 떨치고 일어서 가는 길에 돌미나리 같은 보살의 향내가 있는 것을….
(200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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