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내와 함께 있으면 우리는 조건 없이 우리이다. 아니 우리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우리이다. 우리는 함께 살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함께 생존한다는 것과 다르다. 한 집에 살면서 같이 자고 일어나 같이 밥 먹고,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다만 함께 생존하는 것이다. 생각할 것을 함께 생각하고, 좋아할 것을 함께 좋아하고, 믿는 것을 함께 믿고, 사랑할 것들을 함께 사랑하는 것, 그래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함께 가치 있다고 하는 그것이 함께 사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우리'이다. 짐승은 한 울안에 있으면 우리가 되
겠지만, 사람은 한 울안의 생각을 가져야 우리가 될 수 있다.
부부가 아니라도 우리는 '우리' 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부부 사이처럼 함께 살지 않아도 벽을 허물고 생각을 함께 하면 잠시나마 '우리'가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출발과 도착지가 같은 것이 아닌가?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작은 흥분과 여행지에서 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안정된 기분이 아니었다. 집을 떠난다 생각해서인지 몹시 춥고, 잔걱정 많은 아내의 덕으로 짐도 많아서, 아내가 조치원 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역사 앞에서 우리는 일주일간의 이별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별다른 의식도 없이 헤어졌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눈길을 마주칠 수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이 아내는 그의 새끼손가락만큼이나 작고 귀여운 차를 휘익 돌리더니 사라져 버렸다. 대합실에서 30분을 떨면서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도 섭섭하지 않았다. 우리는 진하면서도 덤덤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서울행 무궁화호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나는 공연히 '혼자 앉아 갔으면…'하고 바랐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잡고 나자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낯선 여자가 바싹 마른 엉덩이를 내 코앞에 디밀더니 옆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싫었다. 그녀도 별로 달가운 눈치는 아니었다. 정장 차림인데도 계속 나를 치한이나 되는 듯이 경계했다. 그녀의 축 늘어진 가방에 꿈틀거리는 구렁이라도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참는 수밖에 없었다.
안쪽에 앉은 나는 밖을 내다보려면 꼭 창 쪽에 앉은 그녀의 징그럽도록 빨갛게 칠한 립스틱에 눈길이 걸렸다. 노랗게 탈색된 머리는 새치가 드문드문한데도 무슨 머릿기름을 발랐는지 쭈루룩 겉돌면서 헝클어져 윤기 없는 산발이다. 밖을 내다보고 싶었으나, 그 윤기조차 없는 머리를 시선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지그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녀는 손거울을 들고 못생긴 손톱으로 눈가를 독독 긁기도 하고, 공연히 산발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기도 하면서 스물 한 살 멋쟁이 아가씨 흉내를 내었다. 사십대 연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수국 같은 우아함이나, 해바라기 같은 우뚝한 아름다움은 한 꺼풀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끔 제 옷자락이 내 의자에 걸치기라도 하면 똥물이라도 튄 듯이 쓸어 간다.
재수 없어. 안경을 벗고 손으로 얼굴을 비벼본다. '쓱싹 쓱쓱' 유난히 소리가 크다. 아침에 공들여 면도를 했는데도 얼굴이 까칠까칠하다. 까만 양복에 싸락눈이 내린다. 손바닥에서 꼬질꼬질한 냄새가 난다. 닦아도 닦아도, 발라도 발라도 윤기 없는 이 살결. 빌어먹을. 그러면서도 그녀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화장품이 오버코트에 묻을까 다시 한 번 옷자락을 단속한다.
전의역를 지날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가 밀렸느니, 역 대합실이 몹시 추웠느니 하는 긴요치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전화를 받다 보니 벌써 천안이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부드러운 남자 승무원이 옆에 와서 이야기 해 주는 것처럼 낯익은 어조라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지금 천안 역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 없이……."
'우리는?' '우리는'이라.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우리는 '우리'구나. 승무원도, 김밥 장수도, 신문 장수도, 우리는 '우리'였다. 옆자리 산발한 여자도 '우리'였다. 기차라는 한 울 안에 있으니까. 조치원서 같이 출발했으니까. 천안에 같이 도착하니까. 우리가 탄 열차가 플렛홈에 도착했다. 우리는 둘 다 내리지 않았다. 흘끔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그녀도 '우리'를 깨달았을까?
손거울을 보면서 손가락 끝으로 입술을 그리던 그녀는 갑자기 손거울을 손가방에 던지듯 집어넣고 귤을 하나 꺼냈다. 저걸 먹으라고 주면 어떡하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데 반을 쪼개서 건넨다. 어쩐지 자주색 손톱이 징그럽게 생각되지 않았다. 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미안스러웠다. 그 미안함이라도 표현하고 싶어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 보았다. 수원이라고? 우리는 동행이군요.
우리는 수원에서 함께 내렸다. 역 앞에서 그녀는 고개를 '까딱'해 보인다. 붉은 립스틱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난다. 두 사람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잠시나마 '우리'가 되어 있었다.
낯선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서둘러 기다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은 바깥 날씨보다 더 써늘하다. 거기 또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의 앉아 있었다. 이들과는 무엇으로 '우리'가 되어야 하나? 갑자기 집이 그립다. 그 따뜻하고 푸근한 나의 '울'이 그립다.
(200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