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 그날은 달이 밝았다. 그러나 무섭지 않았다. 달이 밝은 밤이면 모충동에서 개신동으로 넘어가는 배고개 공동묘지 앞을 지나기가 가볍지 않았다. 묘지 앞 커다란 방죽에 밝은 달빛이 여인의 하얀 치맛자락이 되어 넘실거린다. 때로는 삼베 도포가 일렁거려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날은 무섭지 않았다. 몇 집 남은 고갯마루 마을을 지나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를 따랐다. 야간 수업이 끝나면 밤 11시 50분, 자정이 넘었을 텐데 이 밤에 웬 개가 따라오나. 송아지만하다. 누런 등줄기에 내리는 달빛이 신비롭다. 눈빛이 형형하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시오리길, 이미 집에 도착해 공부를 시작했을 시내 사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게 놀려야 했다. 개는 계속 나를 따라온다. 공동묘지 앞 방죽 옆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