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리는 날의 김치찌개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봄눈이 이렇게 많이 내린 것도 참 드문 일이다. 김치 냉장고에서 갓 꺼낸 김치맛이 신선하다. 이렇게 눈이 소복이 쌓인 날 아침에는 게으른 눈을 비비고 두어 걸음으로도 넉넉한 좁은 마당에 겨우 길을 내고, 눈을 파헤쳐 김치를 꺼내던 가련한 산골 총각 선생 시절이 생각난다... 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2004.03.20
불의 예술 창을 열기가 두렵다. 요 며칠 사이에 차가워진 아침 공기 때문이 아니다. 하늘빛 때문이다. 아파트 회벽 사이로 보이는 코발트 빛 하늘이 온몸을 빨아들일 듯하다. 창을 열다말고 진열장을 들여다본다. 지난 88년 단양을 떠날 때 방곡 도요의 명장 傍谷 서동규 선생으로부터 얻은 녹자(綠磁.. 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2003.12.10
永生의 흙 도회를 조금만 떠나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흙집이다. 뿐만 아니라 흙집이 고상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것은 시멘트벽에 거죽만 황토를 바른 집을 봐도 알 수 있다. 또 그것을 보면 흙집이 도회인의 선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시 근교에 새로 지은 흙집은 옛날처럼 볏짚으로 지붕.. 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2003.08.21
창(窓) 창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넓은 유리창으로 햇살이 곰실곰실 방안으로 퍼지는 그런 집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분홍색 커튼을 힘주어 젖히면, 맑은 유리창에 이슬방울이 쪼르르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흰 눈이 포근히 쌓인 소나무 가지들이 보이는 그런 창이 그리웠다. 아주 가까이 있..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3.08.16
눈길에서 -나의 문학, 나의 고뇌 - 눈 쌓인 길이라도 생각처럼 그렇게 심하게 미끄러운 건 아니다. 어제 아침부터 내리던 진눈깨비가 오후에는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어제 돌아오는 길에 비하면, 기온이 뚝 떨어져 밤사이 포근하게 쌓인 눈길이 오히려 안전하다. 아침까지도 눈발이 화톳불 참나무 재티 날듯 햇살에 반짝인..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3.07.24
국어교육의 등대 -연수를 마치며- 김 교수님! 교수님과 선생님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後生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先成者에 대한 최소의 예우를 담은 마음으로 김 교수님을 불러 봅니다. 학급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이라 불렸을 때 좋았던 기분을 뒤로 하고 말입니다. 연수 첫날, 현관에 붙은 대자.. 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2003.07.22
질마재에는 비가 내리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빗방울이 차창에 듣는다. 골짜기마다 푸르름에 젖은 다락논에는 물이 흥건하고, 하늘에서 파란 솔잎이 비와 함께 쏟아져 꽂힌 듯 모가 땅내음을 맡고 생명을 뿌리를 퍼렇게 내리고 있다. 주변의 싱그러운 풍경이 여유 있어야 할 시골길 운전을 서툴게 한다. 질마재를 넘으며.. 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2003.06.12
나를 기다리지 않는 세상 한 일주일쯤 몸이 부실해져서 아침 등산을 걸렀다. 무슨 연유인지 안방 공기와 다른 공기가 목구멍에 닿으면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이 다 넘어올 것 같은 기침이 쏟아졌다. 귓전에 스치는 바람은 부드럽지만, 아직도 아침 공기가 부실한 내 목에는 걸린다. 별수 없이 기침이 멎을 때까지 아..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3.05.02
마늘 이야기 언제부터인지 신문의 광고를 현란한 언어로 장식하는 것이 마늘 이야기이다. 광고라는 것은 가장 믿을 수 없는 인쇄물이라는 생각 때문에 꼼꼼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남성'에 관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요즈음 약이든 식품이든 '남성'에 관련되는 단어만큼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은 없.. 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2003.05.02
토우(土偶) 골동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토우(土偶)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 도예가이며 토우 작가인 김용문님의 작품이다. 곱고 차진 황토로 빚어 만든 작은 인형 모양이다. 혼자 있을 때에는 금방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이 저절로 배어 나온 그의 슬픔을 바라보며 씁쓸한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고운 황토 한 두어 .. 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200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