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우산을 펴지 않는 것은

느림보 이방주 2002. 1. 22. 00:06
아직은 소한에서 대한에 이르는 길목인데도 해토머리에 내리는 비처럼 주룩주룩 쏟아진다. 벌써 땅이 녹기 시작할 건가? 아니면 더욱 꽝꽝 얼게 할 셈인가? 출근길에 아내가 우산을 내어 준다. 지하주차장까지 우산 없이 뛰어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도 겨울비니까 우선 차가울 테고, 오랜만에 내리는 비라 하늘의 때라도 씻겨 내리느라 더러울 테고…….

내 차안에는 우산이 둘이나 있다. 하나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인데, 어느 대학 입시 설명회 때 얻은 2단으로 접는 우산이다. 입시 설명회에서 어떤 의미로 우산을 주었는지 궁금하지만 그냥 들고 다닌다. 살이 녹슬고 기울어서 바람이 불 때 빗방울을 다 막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런 대로 아직은 쓸만하다. 아직은 내게 황당한 배반감을 안겨 줄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아직은 믿음이 남아있다.

또 하나는 어떤 학교에 근무할 때 쓰레기장에서 주운 것이다. 한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인데 누군가 그냥 버렸기에 주워 가지고 다닌다. 알록달록한 꽃무늬에 요즘 새로 나온 커다란 우산이다. 2단이나 3단으로 접는 우산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혼자 쓰기에는 너무 외롭고 허전하다. 뿐만 아니라 친한 사람은 둘이 함께 쓰면 비 한 방울까지도 다 막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볼 시린 어떤 시련이나 하늘의 작은 먼지까지도 다 막아 줄 완벽한 방패막이다. 어떤 환란에도 내게 완벽한 믿음을 줄 수 있을 그런 놈이다.

모든 환란을 다 막아 줄 수 있는 우산이 과연 있을까? 옛날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이던 시절에 자동차가 흙탕물을 치고 그대로 달아날 때의 황당함도 이 우산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설사가 나서 길모퉁이에서 실례를 해야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도 이 우산 하나면 어떤 시선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많아지자 '핵 우산'이란 말이 흔히 쓰인다. 핵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 우산이 핵우산이라도 되는 듯이 비상시를 위하여 아끼고 쓰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종이 우산이 있었다. 종이에 기름을 먹여서 고색 창연한 빛을 내는데다가, 대나무 살이 두껍고 튼튼해서 웬만한 바람에도 잘 견디어서 정말 갖고 싶던 우산이다. 그러나 많은 식구에 혼자서 이 우산을 차지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 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좀처럼 내 차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내 차지가 된다 해도 하루 종일 우산을 지키느라 공부를 설치는 것이 일쑤이다. 한 시간쯤이나 걸어야 하는 등교 길에 비가 많이 내리면, 아무리 기름을 먹였대도 종이가 흠뻑 물을 먹어 바람이 한번 '휙'하고 불면 힘없이 찢어져 그 황당함이란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종이 우산도 쏟아지는 비로부터 나를 편안히 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 황당함만 한 아름 안겨 줄 뿐이었다.

그 후 말갛게 하늘이 비치는 비닐 우산이 나왔는데, 우산을 쓴 채로 비나리는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듣기 좋았고, 동그랗고 말간 빗방울들이 방울방울 굴러 초가집 처마처럼 '주룩주룩' 떨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십리나 되는 학교 길을 걸어가서 빗물에 흠뻑 젖었어도 접어서 '휙' 한 번 뿌리면, 물기가 싹 가시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나 이 우산도 바람에는 속수무책이다. 바람이 불면 살이 겁나게 휘다가 부러지기도 하고, 부러지지 않는다 해도 옷을 다 버리게 마련이다. 때로 광풍이라도 불면 홀랑 뒤집혀서 역시 어이없고 황당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이 좀 더 좋아졌을 때, 학교가 먼 나는 비상시를 위하여 3단 우산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해도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키가 큰 나는 머리와 어깨까지만 피할 수 있을 뿐이지 허리 아래로는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비를 맞았다. 그냥 우산을 썼다는 의미로 쓰는 것이지 비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숙명적으로 완전한 우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요즈음에는 흔해 빠진 게 우산이다. 각종 기념행사에서도 우산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다. 우산은 굳이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해도 우산 통에 가득 쌓이게 마련이다. 이제 걸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크게 소용되지 않아 천덕꾸러기가 다 되었다. 식구보다 훨씬 많은 우산이 아파트 발코니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나리는 날 선택되는 은총을 기다리다가, 이삼 년만 지나면 저 혼자 뼈가 삭고 살이 문드러져 생명을 마치게 마련이다. 어떤 놈은 세상에 태어나서 얼굴이 곱지 못해서 별 한 번 안아보지 못한 항아님처럼 한 점 빗방울에도 젖어보지 못하고 시들어 가는 것도 있다.

제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나도 어쩌다 이런 우산에게 은총을 베풀다가는 황당함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런 우산을 잘못 가지고 나갔다가는, 살이 삭아서 잔잔한 바람도 견디지 못하거나, 실밥이 풀려서 한쪽 솔기가 펄럭이게 마련이다. 점잖은 자리에 아무리 빛나게 차리고 참석했다 해도 남 보기에는 딱하게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즘 들어 우산이 아주 좋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가 아주 얌전하게 내려 준다 하더라도 늘 손에 쥐고 다니던 완전히 믿는 놈이 아닌 한, 아무리 큰 우산이라 해도 완전히 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환란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우산은 없을까? 그렇다고 핵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그런 분수 밖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세파의 어려움이나, 쓸데없는 유혹이나, 억울한 지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우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 내편이라고 믿을 수 있는 우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초여름 장마 때처럼 우울한 날이 계속되는 요즈음, 이 우울함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그런 우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연히 불안하고 누가 쫓아오는 듯한 초조함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우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나기에 섞여 내리는 굵은 우박의 어이없는 세례로부터 나를 막아 줄 수 있는 우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덕치를 베푼 목민관에게 백성들이 만인산이라는 일산을 선물했다고 한다. 목민관으로 나아간 일도 덕치를 베푼 적도 더더구나 없지만, 그동안 큰 죄 없이 살아온 대가로라도 누가 내게 만인산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거기까지 바랄 분수는 되지 못한다. 내게는 지금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믿을 수 있는 우산 하나면 족하다. 이것만이라도 예전의 종이 우산처럼 잔 바람에도 황당하게 찢어지는 낭패나 당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말갛게 하늘이 보이던 비닐 우산처럼 회오리바람에 홀랑 뒤집혀 믿음에 배반하는 허망함이나 안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내 종이 우산이라도 고이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당당히 세상의 우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빗방울 '후드득' 떨어지는 아파트 마당을 우산도 펴지 않고 성큼 성큼 걸어서 주차장으로 갔다. 이 허망한 시대에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우산에게 쓸데없이 당하는 황당함보다는 차가운 빗방울이 오히려 견딜만했기 때문이다.
(200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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