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META 7

사월이 오면

한국수필 4월호 권두 칼럼 사월이 오면 부이사장 이방주 사월이다. 자연이 꿈틀댄다. 사월의 생명력이다. 누가 사월의 꿈틀거림을 막을 수 있을까. 다만 몸과 마음으로 따를 뿐이다.사월이 오면 10일이나 15일쯤 녹음을 찾아 떠난다. 어디가 좋을까. 세종시 조치원읍을 지나 비암사를 찾아간다. 비암사는 뱀서방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에 충청도 말로 ‘비암[蛇]절’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극락보전 앞 삼층석탑 상륜부에서 3점의 불비상이 발견된 후 ‘비암(碑岩)’절이 분명해졌다. 이 불비상은 부흥백제시대 유민들의 애끓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불비상 유래담보다 사월을 맞아 비암사로 가는 길의 초록을 말하려 한다. 조치원에서 연서면 쪽으로 낮은 고개를 살짝 넘어 과수원길 모롱이를 돌아서면 꽃더미 속에 우뚝 서..

박힌 돌, 굴러온 돌(무심7호)

박힌 돌, 굴러온 돌 이방주미국 대통령 선거가 요동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의 후보를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로 확정되려는 추세이다. 반면 공화당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을 후보로 확정하였다. 재미있는 일은 81세인 바이든 대 78세인 트럼프 구도에서 바이든 현 대통령이 열세였는데, 흑인이며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로 유력해지자 미국인들의 지지 구도가 급격하게 변하여 59세인 해리스 부통령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니 더 신선해 보이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공화당의 박힌 돌이다. 물때가 더께로 끼어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박힌 돌이 뿌리를 내리고 요지부동이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변화의 요구가 날마다 새롭다. 남의..

道에 조화로운 技의 옷을 입혀야

한국수필 7월호 권두 칼럼 道에 조화로운 技의 옷을 입혀야 정치 행위는 도(道)와 기(技) 중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 문득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어느 일간지에서 읽은 칼럼이 생각난다. 칼럼을 쓴 논설위원은 정치가 道보다 技에 의존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선거에서 技에 의존하려면 속셈이 시커멓거나[黑] 얼굴이 두꺼워야[厚]한다고 주장한 것 같다. 결국 현실은 道가 技에 말려들어가 속셈과 얼굴의 두께로 결판나 버렸다. 가치의 혼돈으로 인하여 유권자들은 道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본적 교양을 잃어버리고 후안무치한 곳으로 마음이 쏠린 듯하다. ‘政者正也’라. 정치라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다. 곧 ‘정치는 道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위정자가 도적질을 하지 않으면 백성도 도둑질하지 않는다...

자벌레는 얼음을 재고, 개구리는 바다를 말하고

책머리에(수필과비평 11월호) 자벌레는 얼음을 재고, 개구리는 바다를 말하고 이방주 가을비가 그치고 날이 서늘해졌다. 아파트 정원에 나무들이 고요하다. 정원에 나가보았다. 오감이 상쾌하다. 비 그친 가을날에 받는 반기가 흡족하다. 새팥덩굴이 철제 담장을 칭칭 감고 올라가 노란 꽃을 피웠다. 노란 꽃 사이로 두 치쯤 되는 가느다란 새팥꼬투리가 맺혔다. 새팥꼬투리 진한 녹색이 갈색으로 변하면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꼬투리가 터지고 떨어진 씨알들이 겨울잠을 자며 봄을 기다린다. 씨알은 얼음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나야 초록의 새싹을 틔운다. 그것이 춘화(春化)라는 시간의 섭리이다. 노란 꽃이 예쁘고 꼬투리가 신기해서 들여다본다. 계절의 순환이 여기 담겼다. 새팥덩굴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자벌레가 기어간다. 새..

수필 쓰는 사람은 -무심수필 6호 권두 수필-

권두 수필 수필 쓰는 사람은 정원에 낙락장송들이 고요하다. 가지가 비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흐느적거린다. 그제부터 엊저녁까지 태풍 카눈이 커다란 손으로 세상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카눈은 느림보 태풍이라는 이름으로 느릿느릿 왔지만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우리 아파트 정원 큰 나무들은 크게 상처를 입지 않아 다행이다. 그제는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다. 유리창에 물방울이 흥건하다. 밤새 비바람에 시달린 정원이 궁금해서 새벽에 나가보려니 바람에 막힌 공동 현관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간신히 문은 열었으나 나갈 수는 없다. 굵은 빗줄기가 전후좌우로 미친 듯이 쏟아 붓는다. 우산도 소용없다. 비를 맞히려고 정원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올려놓았던 난분 하나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다행히 잔디밭으로 떨어져서 깨지지..

21세기 수필, 머묾과 벗어남의 미학

권두언 21세기 수필, 머묾과 벗어남의 미학美學 천명관의 장편 〈고래〉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인간의 꿈과 욕망 그리고 운명이나 현실과의 갈등을 다소 냉소적이고 해학적인 어조로 풀어낸 작품이다. 서사의 범위가 엄청나게 큰 데에도 놀랐지만, 규범과 상식을 벗어나는 낯설게 하기나 현실과 환상 사이의 드나듦의 서사구조는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했다. 처음에는 과연 현대에 창작된 소설인가 할 정도로 전기성傳奇性을 보여 황당하다가 어느 틈에 현실로 돌아온 서사에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듯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는 듯 벗어난다. 염상섭의 〈삼대〉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처럼 단군신화를 원형으로 하는 삼대구조에 머물면서도 완전한 혈통도 아닌 여성 중심의 삼대구조로 틀을 벗어난다. 현실..

이방주 수필평론집 [해석과 상상] 서문

해석과 상상을 엮으며 수필은 일상의 철학적 해석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상’이란 말이 걸리겠다. 우리네 삶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일상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체험한 사실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따져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해석이다. 수필은 매우 주관적인 문학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개성이 넘치는 인식과 해석도 보편적인 삶의 진리로 개념화되어야 독자에게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개념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가는 체험한 사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한다. 소재가 된 대상에 대해 앎을 극대화해야 한다.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하면 곧 자기만의 독창적인 인식에 이르게 된다. 심오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남들이 다 보는 것은 작품의 제재로서 가치가 없다. 보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