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54

닭 삼계탕이 배달되었다. 여름감기로 입맛을 잃은 시부모를 위해서 며느리가 보냈단다. 뚜껑 있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서 아직도 뜨겁다. 백김치, 깍두기, 파 송송, 후추소금까지 정갈하다. 새로 담근 열무김치를 꺼냈다. 동치미무가 있었으면 금상첨화겠다. 아삭아삭 풋고추도 내놓았다. 상은 금방 차려진다. 아내가 다른 그릇에 다시 담아 먹자고 하는 걸 그대로 먹자고 했다. 내게는 격식을 차릴 겨를이 없다. 우선 김칫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입안이 얼얼하다. 이 순간을 기다리며 목욕재계하고 얌전하게 엎드린 닭님을 뒤집어 상면했다. 젓가락으로 찍어 가르기에는 등짝이 너무 여리다. 이미 반쯤 갈라진 배를 열었다. 찰밥 덩어리가 얌전히 좌정하였다. 대추, 밤을 건져 잔반통으로 보냈다. 쓴맛은 빨아들이고 단맛을 내보냈으..

죽粥

죽(粥) 아내가 저녁으로 콩나물죽을 끓였다. 오랜만이다. 목감기로 고생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이다. 한술 떠 보았다. 된장을 덜 풀고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었으면 칼칼한 맛이 더 진했을 것 같다. 그래도 콩나물이 많이 들어가서 구수했다. 뜨거운 죽을 한 숟가락 가득 떠서 후후 불어 입에 넣어 보았다. 깔깔했던 목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식도를 타고 뜨겁게 흘러내리면서 니글니글한 기름기까지 개운하게 씻어 내려가는 듯하다. 잃어버린 입맛에는 콩나물죽이 약이구나. 죽은 치유이다. 구수하고 개운한 콩나물 맛으로 먹으면서도 죽사발을 휘저으면서 쌀알을 찾는다. 잠재된 습관이 이토록 오래 간다. 죽도 보릿고개도 참 지겨웠다. 조반석죽(朝飯夕粥)도 호화롭게 생각되던 시절이다. 아침에는 밥을 먹고 점심은 거르고 저녁은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