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연자방아

느림보 이방주 2002. 1. 9. 22:21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당신께서 늘 넘나드시던 언덕으로 자리를 옮기신 처음에는 매일 아침 가 뵈었는데, 차츰 주말에나 한 번 들르게 되더니, 이번에는 벌써 한 달이나 된 듯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임을 생각하면 죄스럽기 짝이 없다. 지난 여름 산소 앞에 베어낸 아카시아가 까맣게 말랐다. 깨끗이 깎아 놓은 묘정에는 쑥이 파릇하게 돋았다. 담쟁이덩굴도 이미 잎이 떨어지고 빈 덩굴만이 돌에 달싹 달라붙었다.

집에 들렀다. 마당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감나무에는 까치밥이 대롱대롱 쳐져 있다. 자꾸 허물어지는 담장이나 꾀를 벗는 대문간이나 펄렁이는 비닐조각들이 마음을 한없이 스산하게 한다.

연자방아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 화려했던 시대는 가고, 방앗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연자매만 풀섶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제 가시 큰 두릅나무, 사납게 우거진 쐐기풀, 말라빠진 망초, 열매만 앙상한 도꼬마니가 우거진 속에서 덩그러니 혼자 서서 화려했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박물관이나 민속촌에서도 이렇게 크고 육중하며 맵시 있게 만들어진 연자매를 본 일이 없다. 아직도 때하나 끼지 않은 채로 곱고 예쁜 살결로 고적하게 텅 빈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 없이 그 자리에 버티어 서서, 자신의 위상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기울어지는 종가의 위상을 책임지듯, 쓰러져 가는 우리 살던 집과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추억을 지켜 줄 것이다.

옛날에는 연자방아 바로 옆에 디딜방아도 있었다. 기억조차 어렴풋한 어린 시절에 이 두 방앗간 때문에 우리집은 언제나 북적댔다. 디딜방아에는 동네 사람들이 조바심을 하거나 수수방아를 찧었고, 연자매에 소를 매어 다른 곡식들을 바심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디딜방아는 내가 철이 들 때까지 메주 다짐이나 조바심할 때, 또는 인절미를 만들 때 떡메 대신으로 쓰기도 하였으나, 연자방아는 아주 어릴 때부터 위상을 잃었다. 그래도 초가로 지은 두 방앗간 부근에는 잡초 한 점 뿌리내릴 틈이 없이 식구들이 오갔다.

이제 그 방앗간을 지키던 사람들이나 왕래하던 사람들은 시절을 따라 다 사라지고, 몸통이 아름을 넘던 디딜방아도 간데 없는데, 연자매는 아직도 덩그러니 혼자 남아 고집스럽게 종가를 지키고 있다. 지난 늦여름에 어머니를 뵈러 왔을 때에는 연자매 주변에 잡초들 사이로 취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꽃대궁이 허리까지 올라와 어머니의 무명 적삼처럼 하얗고 청초한 꽃을 소복소복 피우고 서 있었다.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풀섶에서 달빛처럼 하얗게 핀 취를 보면서, 서둘러 취를 뜯어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주시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렸다.

어머니께서는 산에 지천으로 나 있는 취를 캐어 이제는 인적이 끊어진 연자매 주변에 심어 놓으셨다. 우리 내외가 갑자기 갔다가 어머님 얼굴만 뵙고 아니 온 것만도 못한 아쉬움만 남긴 채 휭 돌아 나오는 날을 위하여 그렇게 심어 놓으신 것이다. 퇴락해 가지만 높다란 종가집 뜰에 넌지시 돌아앉아 비닐 봉지에 뭐든지 자꾸 싸주고 싶었던 어머니이시다. 우리 내외는 차 안에 퍼지는 취의 향기를 어린 날 어머니 가슴에서 맡던 그 아련하고 포근한 냄새처럼 맡으며 돌아오곤 했다. 아직도 취, 돈나물, 달래 같은 연하고 향긋한 어머니의 흔적이 방앗간 주변에 남아 있다.

종손부이신 어머니는 누구도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싸우며, 거죽도 위상도 모두 허물어지는 종가의 권위를 지키셨다. 정말로 지켜야 할 사람들은 모두 별수 없는 제 할 일을 핑계로 자기 앉을 자리를 잊고, 안락을 찾아 장마 때 미꾸리 빠지듯 짐을 벗어버리는데 어머니만은 그 고독의 울을 혼자 굳건히 지키셨다. 가끔 푸념처럼 "하늘에는 별도 많고, 세상에는 일도 많고, 사람들은 말도 많고, 뭣도 많고"하시며 내뱉듯 하시는 것이 초연하게 고독을 넘어서는 울력의 전부였다. 그렇게 소쩍새의 절규 같은 한을 산비둘기 울음처럼 꾸밈없이 내뱉으셨지만, 그 고독의 울을 떠나지는 않으셨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마지막 강을 건너기 위해 내 집에 오셨을 때도 감나무 얘기, 마당의 콩 멍석 얘기, 강아지 밥 줄 걱정을 하시며 그냥 거기로 착각하고 계셨다. 나는 이승의 마지막 강나루가 내 집인 줄을 모르시는 어머니께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철부지였으나, 그냥 그게 더 편해 보이셔서 더 우기지 않았다.

이제 연자매만 덩그러니 남은 거기에서 사람들이 다 명당이라고 하는, 내가 정해드린 자리라 더 애틋한 유택이 숲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지금도 그렇게 거길 지키고 계신 것이다. 사람들이 다 떠났다 해서 떠나는 일이 없는 연자매처럼…….

사진 작가인 조카의 작품 중에 연자매 앞에서 취를 뜯는 어머님 사진이 있다. 연자매가 사분의 일쯤 보이고, 그 앞에서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호미를 들고 나물을 캐는 사진이다. 지금은 구경할 수도 없는 대소쿠리를 옆에 놓고, 윤기 없는 흰 머리칼을 바람에 홀홀 날리며, 평생의 고독을 초월한 듯 관세음보살처럼 눈을 지그시 아래로 뜨신 어머니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다. 어머니의 거친 손에 드뭇한 검버섯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지금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이제 그 자리에 어머니는 안 계시고 연자매만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가슴 아픈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저 그런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연자매처럼 그렇게 무겁고 굳게 그리고 묵묵히 지키던 어머니의 그림자 뒤에 숨어 있는 고집에 대한 연민의 아픔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의 방황을 대신 사죄하며 더욱 굳게 자리를 지켜온 마지막 조선의 여인의 거룩함에 대한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무책임한 자손이 아닐까 하는 회오의 아픔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이제 이승의 강을 넘으셨지만,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초연하게 고독을 넘으시던 고집만은 사진에서처럼 무직한 연자매 옆에서 모두 떠나버려 텅 빈 고독의 울을 아직도 지키고 계실 것이다.
(200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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