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것대산이나(病床일기) 20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에필로그

4월 11일(토) 나는 별로 자랑거리도 아니면서 병상일기를 여기에 올린다. 이렇게 기록을 해 두는 것도 별 이유가 없다. 다만 내게 어떤 경각심을 주고 싶기도 하고, 병상에 있을 때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첫째는 나로선 입원이라는 것이 참으로 생소한 경험이었다. 누구든 몸이 아프면 치료를 ..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 병상에서 19일째

3월 3일 (화) 아침에 4시에 기상, 조심 조심 밖으로 나갔다. 몸을 씻었다. 옷은 갈아입지 않았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려 6시 40분쯤 지하 방사선과에 내려갔다. 사진을 찍었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담당 의사가 올라왔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한다. 아직은 염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18일째

3월 2일 (월) 신학기 첫날이다. 이날 시업식 입학식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 있었으면 참으로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가하다. 평소대로 5시에 기상하여 머리 감고, 주사맞고 7시에 아침밥을 먹었다. 이제는 아픈 곳이라고는 없다. 정말 내일은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담당 의사도 그렇게 말했..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17일째

3월 1일(일요일) 종일 병원이 조용하다. 일요일인데다가 날씨까지 좋아서 그런 모양이다. 이른 아침에 연선생이 인절미를 사가지고 왔다. 양복을 입었다. 양복을 잘 입지 않는 그이기 때문에 웬 양복이냐고 하니까 어머니를 모시고 인천에 간다고 한다. 인천에 사시는 수양 어머니 칠순 잔치에 어머니..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16일째

2월 28일(토) 학교에서도 쉬는 토요일이다. 봄방학 중이니까 대부분이 어제 모였다가 오늘은 쉴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정했으니까. 학교에 있더라도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오늘은 가뿐한 기분으로 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누구와 먼 산을 갔을 것이다. 오전에 친구 최 선생님이 이 선생님하고 함께 왔..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15일 째

2월 27일(금) 오늘은 신학년도 전 직원이 출근하는 날이다. 오늘 모두 만나 상견례를 하고 2009학년도 업무와 학급 담임, 교과를 나누어 갖는 날이다. 자리를 배정받고 짐을 옮기는 날이다. 부산하고 할 일이 많아 복잡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교과, 새로 만날 아이들을 그려 보며 기대에 부..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14일 째

2월 26일 (목) 5시 기상 여명의 하늘이 맑고 따사로워 보인다. 날씨가 참 좋다. 봄기운이다. 내 몸에는 언제 봄이 올 것인가? 것대산 능선이 더 선명하다. 하늘 색이 고와서 그럴 것이다. 하늘과 경계를 이루는 검은 선이 우리가 밟고 지나간 마루금이다. 바지 자락에 잡초 더미를 휘감으며 거침없이 걷던 ..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 병상에서 13일 째

2월 25일(수) 4시에 기상, 자유로운 몸으로 샤워, 나도 오랫 동안 맘껏 했다. 손등과 발등, 팔, 허벅지에 반점이 몇 개씩 돋아나서 발갛게 부풀었다 가라앉곤 한다. 담당 의사에게 퇴원 얘기를 했다. 아주 난처한 얼굴이다. 27일에 보자고 달래듯 말한다. 내가 퇴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항생..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 병상에서 12일 째

2월 24일(화) 5시 40분 기상 머리감고 용변을 보았다. 속이 쓰리다. 어디 불편한데 없으세요? 하기에 속이 쓰리다고 했다. '알마겔'을 주었다. 먹지 않았다. 점심에도 주었다. 또 먹지 않았다. 그랬더니 저녁에 또 주었다. 먹지 않았다. 그리고 속이 쓰리지 않다고 했다. 속이 쓰린 이유는 크게 뭐가 잘못되..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 병상에서 11일째

2월 23일 (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보니 붉은 반점이 몇 개 솟았다. 팔을 걷어보니 거기에는 없어졌다. 바지를 내리고 뒤로 돌아보니 흔적만 갈색으로 변해서 남아 있다. 변은 여전히 누렇게 풀어져 흙탕물처럼 떠내려 간다. 대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다. 온몸이 초토화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