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40

징벌과 사면의 10월 26일

징벌과 사면의 10월 26일 10월 26일 1909년영화 『하얼빈』을 봤다. 현빈이 분한 안중근이 늙은 늑대 이토 히루부미를 처단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이토 히루부미는 조선이라는 파이 나누어먹기를 협상하러 러시아로 가는 중이었다. 안중근의 총을 맞고 죽었다. 징벌이다. 그날이 1909년 10월 26일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현빈의 연기를 드러내는 구성을 피한 것 같았다. 다만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와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그것은 안중근이 전쟁 포로인 일본군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를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준 일이다. 안중근은 그에게 ‘가정을 돌보라’면서 사면했는데 그는 끈질기게 독립군을 추적하면서 야비한 근성을 보였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안중근은 이토오 히..

적소(謫所)에서

적소(謫所)에서 적소에서 봄을 본다. 호수 가까이 버드나무 가지가 노릇노릇 연두로 물들었다. 소나무 숲엔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산은 마을을 가로막고 강은 산을 비집고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내어준다. 등잔봉 줄기가 호수에 잠기는 산자락 끄트머리에 노수신 적소인 수월정(水月亭)이 있다. 봄이 오듯 나도 적소에 왔다.노수신(1515~1590)은 상주 사람이다. 중종 때 벼슬에 나아가 명종 때 유배되었다가 선조 때 풀려난 정치가이자 유학자이다. 열일곱 살부터 장인 이연경에게 십년공부를 하여 스물일곱에 급제했다. 이조좌랑까지 올랐으나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진도로 옮겨져 19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다시 이곳 산막이 마을 달래강 가운데 작은 섬으로 옮겨졌다. 여기에 초막을 짓고 ..

완보緩步 그리고 노두老蠹

완보緩步 그리고 노두老蠹 오랜만에 간재사고(艮齋私稿)를 펴보았다. 이 책은 1927경 간행된 조선 말 성리학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년~1922년)의 문집이다. 팽개치듯 서가에 묻어두었는데 갑자기 궁금하다. 간재사고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사연은 중요하지 않다. 소중한 고서로 알고 있기는 했으나 관심은 크게 없었다. 내용은 뚝눈으로 봐도 방대하다. 당시 학자들과 주고받은 서신은 물론 성리학에 대한 학문적 소신이 담긴 듯하다. 몇 장 넘기니 책장 일부가 지렁이 기어 간 자리처럼 훼손되었다. 종이가루가 하얗게 묻어난다. 하필이면 글자를 따라 먹었다. 좀이 쏠은 자리이다. 아파트에 좀벌레가 있을 리가 없으니 40여 년 전 내게 오기 전에 이미 먹은 것이다. 그것 참 희한하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나의 소주 반세기

나의 소주 반세기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나의 소주는 딱 한 잔이다. 반백년 소주 배움이 돌고 돌아 겨우 한 잔으로 돌아왔다. 고희를 맞은 내 삶의 영역은 딱 소주 한 잔으로 이룬 나비물만큼밖에 안될 것 같아 마음 아프다. 한 잔을 놓고 잘라 마시고 또 잘라 마신다. 씁쓸하다. 소주 입문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망의 고3이 될 열아홉 살 2월이다. 학교는 2월이 헐렁하지만, 흔들리는 가슴은 가눌 길이 없었다. 학교길 고갯마루에 구멍가게를 겸한 주막이 있었다. 겨울도 봄도 아닌 나른한 오후 하굣길, 주머니를 뒤져 소주 한 병을 샀다. 병뚜껑을 이빨로 물어 열었다. 한 모금 ‘쭈욱’ 빨아보았다. 목구멍에 ‘캭’ 불이 붙는다. 씁쓸하다. 씁쓸하더니 달달하다. 화끈하게 남은 맛은 가슴 가득한 바로 그..

미음완보(微吟緩步)하는 느림보

미음완보(微吟緩步)하는 느림보 《느림보의 수필 창작 강의》 최근에 펴낸 수필 창작 이론서이다. 하늘이 내린 숙제처럼 짊어지고 살았는데 고희에 이르러 가까스로 등짐을 벗었다. 그래서 표제에 느림보라는 이름을 넣었다. 사람들은 나를 ‘느림보’라 부른다. ‘느림보, 느림보 형, 느림보 선생’ 나도 이렇게 불리는 것이 좋다. 나의 모든 것은 이름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담고 싶다고 담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삼십대 중반이었던 1980년대는 온 세상이 숨 쉴 틈도 없이 허겁지겁 역사의 길을 질주하던 때이다. 특히 정치나 경제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지배하였다. 등소평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며 중국 경제를 채근했다. 누구나 ‘꿩 잡는 매’가 되는 것을 정..

古稀의 꿈

古稀의 꿈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그 꿈은 날마다 조금씩 변하고 다듬어진다. 새벽에 침대에 누운 채 공깃돌 다듬듯이 꿈을 갈고 고른다. 글을 구상하고 수필창작 강의 내용을 공그르고 휘갑치기 한다. 그때마다 꿈은 변화한다. 꿈이 변화하는 것은 내 생명이 실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꿈이 꿈틀거리는데 나이가 전제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꿈을 실현하는데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걸림돌이 된다.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일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다. [人生七十古來稀]’ 나는 이 말을 수정하고 싶다. 이 말에는 일흔이 되면 꿈을 갖지 말라는 간교한 가르침이 숨어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에 분노한다. ‘生’이란 동사는 ‘산다’라는 막연한 뜻 외에도 ‘꿈을 품었다’라는 가슴 벅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古稀라는 말은 인제..

보리누름에

보리누름에 이제 막 익어가는 보리밭길을 거닐었다. 연두색 보리대궁이 초여름 따끈따끈한 햇살을 받아 누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성난 까락 사이로 보리 알갱이들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보리밭 둑길을 걸으며 익어가는 보리밭을 바라보노라니 까칠까칠한 까락이 목덜미로 잔등으로 파고드는 기분이다. 뜨거운 태양이 어깻죽지에 내리쬐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처럼 근질근질하다. 그러나 어느새 구수한 보리숭늉 냄새가 난다. 보리밭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보리밭은 고통과 낭만의 기억을 담고 있다. 보리누름에는 일부러 옥천 배바우 마을까지 찾아왔다. 둔주봉에 갔다가 봐두었던 안남면 사무소 앞들이다. 면사무소 광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보리밭 둑길로 접어들면 된다. 갈대 사이로 물이 흐르는 뚝방길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