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에 가보세요. 말만 들어도 화려하잖아요. ―아홉 폭 병풍을 두른 듯한 산―. 단번에 아홉 폭이나 되는 산수화가 떠오르잖아요? 조화옹이 여덟 폭을 둘러치다가 한 폭 더 욕심을 부려 본 모양이지요? 한 번 가 보세요. 정말로 산수화 속에 거니는 신선이나 도인이 된 기분이거든요.
유월 초가 좋아요. 오월이 좋지만 그 땐 입산금지 기간이잖아요. 보은에서 상주 가는 길을 천천히 달려보세요. 길 양쪽으로는 숲이 우거질 만큼 우거진 산이 있고요. 적당히 기름진 논밭이 있어요. 봄, 가을에는 정말 그 땅이 얼마나 기름진가 짐작할 만하지요.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수는 맑고 깨끗해서 거기 아무렇게나 뒹구는 아기들 머리 만한 돌이 꼭 백인들 민대머리 빛나듯 봄볕에 반짝이거든요. 청태도 백태도 하나 없이 아주 깨끗하거든요. 그래도 산이 가진 생명력을 논밭에 뿌리나봐요. 봄에는 생기가 넘치고 가을에는 여문 알곡이 넘치고요.
그런 생기를 보면서 천천히 달리세요. 혹 아나요? 산의 생기라도 받게 될는지요. 몇인지도 모를 모롱이를 돌고 돌면, 왼쪽 높은 산기슭에 한국 통신에서 설치한 거대한 안테나가 나오걸랑요. 안테나가 보이면 더욱 천천히 달려요. 바로 검문소가 있어요. 그리고 검문소 바로 못 미쳐서 휴게소가 하나 있어요. -적암 휴게소- 거기 차를 세우세요. 요금은 없어요. 공짜예요. 커피나 한잔 팔아 주세요.
구병산 골짜기 바람이 휘돌아 내려 들 건너 기슭에 부딪쳐 떡갈잎 향기를 담고 되돌아오면, 이국적인 커피 향은 어느덧 꽃지짐처럼 낯익은 토종 향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 향에 취하지는 마세요. 탱자나무 푸르른 울타리를 돌면서 거기 매달릴 샛노란 탱자나 생각하셔요. 그리고 천천히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그냥 예서 살았으면'하는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세요. 도회의 때묻은 발이나 씻고 가세요.
거기에는 아이들이 없어 문닫은 초등학교가 있어요. 그래도 을씨년스럽다 여기지 마세요. 교문 바로 옆에 병아리 벼슬같이 빨갛고 애처로운 맨드라미가 피어있는 아담하고 예쁜 교회당이 있걸랑요. 거기서 가지고 다니던 시커먼 마음이나 일단 씻어 보세요. 검은 마음만 없으면 귀신이 무섭겠어요?
교회 돌담을 헐고 만든 사립문에는 보라색 나팔꽃이 그 얇디얇은 꽃잎을 팔랑이고요. 교회 앞에 작은 시내에는 분바른 새색시 이마처럼 곱고 보송보송한 물이 소프라노 소리를 내며 생기를 자랑하거든요. 게다가 감나무 숲에 가린 색칠한 가옥들이 언뜻언뜻 보이고요. 북쪽에는 물론 거대한 구병산 병풍이 마을을 둘러치고 있고요.
15도 앞을 올려다보세요. 산수화가 그려진 거대한 병풍이 일단 먼지에 찌든 눈을 씻어 주겠지요. 거기에 핀 떡갈나무 잎은 더 넓고 깨끗할 것 같고, 거기에 핀 단풍잎은 아기 손바닥처럼 더욱 포동포동할 것 같고, 거기에 핀 두릅 순은 잘 삶은 회오리밤처럼 더 소담할 것 같고요. 그런데 이 병풍은 철따라 바뀐다네요. 살아있는 병풍이지요. 뭐든지 다 있을 것 같은 병풍이지요. 도토리가 있고, 그거 줍는 다람쥐가 있고. 산밤이 있고 그거 훔치는 청설모가 있고. 산삼이 있고 그거 소망하는 심마니가 있고. 도닦는 스님이 계시고 그 분 마시는 샘물이 있고.
맑은 시냇물 바라보고, 고추밭 바라보고, 가끔씩 아홉 자락 병풍을 올려다보면서 걸으면 점점 가파른 길이 나오고 숲이 우거지고, 가파르기가 더욱 심해져서 숨이 턱에 닿도록 30분쯤 걸으면서 갈증으로 물을 찾을 즈음에 바로 눈앞에 산 뽕이 우거진 절터가 보이겠지요.
기다리던 물은 가는 대롱을 타고 '쪼르륵 쪼르륵' 졸다 일어나 억지로 누는 아기 오줌발처럼 방울방울 떨어지는데 한식경은 되어야 겨우 표주박으로 한 바가지나 받게 될까 말까. 그러나 떨어지는 물은 그렇게 보잘것없어도 그 물이 바로 정력에는 그만인 정력 샘물이라네요. 그도 그럴 것이 바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마나 되며, 떨어진대도 다 흘러내리고 몇 방울이나 스며들겠으며, 스며든대도 몇 방울이나 틈새를 비집고 밖으로 솟아나오겠어요. 그놈이 나오느라 힘들어 그렇게 '쪼르륵 쪼르륵' 힘없이 떨어지나 봐요. 그러나 그놈이 뚫고 나오는 힘은 또 얼마나 크겠어요. 또 그걸 먹으면 그 생기가 어떻겠어요. 생각하면 소름이 돋지 않아요.
아무튼 이 절이 퇴락한 데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있는데, 그 중에도 스님들이 하산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참으로 처음 들어보는 재미가 솔솔 표주박에 샘물 넘치듯 하지요.
"절을 짓고 스님들이 모여 도를 닦는데, 도저히 수도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밤이면 밤마다 스님들을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수도자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인 욕구였다. 저녁마다 눈에 아른 거리는 것은 '半開한 紅木丹이 發旭於春風'인지라, 그러나 그것은 허상일 뿐 '進進할 자리도 또 退退할 자리'도 없어 輾轉反側하느라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염불도 독경도 모두 허사였다. 도저히 이 번뇌를 떨치지 못한 수도승들은 하나 둘 하산하고 절은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스님들에게 그렇게 떨칠 수 없는 번뇌가 일어나게 한 원인은 바로 샘물이었다. 그리하여 이름을 '정력 샘물'이라 했다나 어쨌다나."
절 아래 사람들이 사찰을 시기해서 꾸며낸 얘기겠지만, 어찌 보면 그게 인간 구원이지요. 사람을 인간으로부터 산으로 구원한 게 아니라, 산으로부터 인간으로 구원한 거 아닌가요? 그거 읽고 허겁지겁 다시 한 바가지를 받아 마셨으니 나도 속물은 속물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 때부터 정상까지는 힘들이지 않고, 숨도 헉헉 내쉬지 않고, 허벅지 팍팍한 것도 모르고 단숨에 올랐어요. 꼭대기 바위산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니 멀리 문장대가 보이고, 그렇게 거대하던 안테나도 고추장 접시 만하게 보이고요. 우리가 달려온 도로에는 흰개미들이 달리는 것 같이 보이고요. 뭐니뭐니해도 나무숲에 숨어 내갈긴 배설의 쾌감이야말로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정력 샘물의 효험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지요. 하긴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우리 일행은 여섯 시간 반이나 걸리는 돌산을 별 탈 없이 힘들이지 않고 섭렵했답니다. 더구나 취를 꺾는 여유까지 누리며……. 정력 샘물의 덕이겠지요. 아니 정력 샘물의 덕이라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한 번 가보세요. 그리고 그런 생각 한 번 해보세요. 정말이에요. 효험 있어요. 정력 샘물이니까요. 정력이 넘칠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생각이 어느 틈에 나의 몸을 지배한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요.
(200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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