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에도 호박이 한 스무 덩이쯤 들어왔다. 농사를 짓는 아내의 초등학교 친구가 보내 온 것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두 덩이씩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고도 열 덩이쯤 남았다. 아내는 또 누군가 나누어 줄 사람을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꼽고 있었지만, 나는 이제 그만 거실에 두고 마음 보양이나 했으면 했다. 그러나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내심으로 아내의 나누는 덕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아내는 나의 비좁은 욕심을 품에 안듯이 자신의 소망을 접어주었다.
호박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잘 생겼다. 그야말로 호박처럼 생겼다. 볕이 좋았던 작년 것만은 못하지만, 반짝반짝 윤이 나고 알맞게 구부러져 깊이 패인 주름에다가 손으로 빚어서 알맞게 누른 것처럼 균형미를 갖추었다. 게다가 옛 장인들의 수택이 오른 골동품처럼 윤기가 흐르는 등황색은 바라보기만 해도 내면에 꿈틀거리며 쓸모 없는 쪽으로 흩어지는 헤아림을 사위게 했다. 그런 호박을 바라보면서, 이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 나의 색깔로 물들여졌으면서도 나와는 다른 좀더 큰손을 가진 아내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거실 여기 저기 눈길 닿는 곳마다 조심스럽게 그들의 자리를 정해 주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호박이나 호박꽃의 외모를 경멸하여 말한다. 나도 호박꽃을 볼품 있는 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습하고 후미진 풀섶으로만 기어다니던 호박덩굴이, 가늘고 여린 덩굴손으로 이층 건물 높이의 소나무를 감고 올라가, 건물 그늘에 가린 다른 놈들보다 먼저 아침햇살을 받으면서 노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호박꽃을 본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태양이 가까운 곳에서 볕을 받아 소담스럽게 피어난 그 꽃에서 숨겨져 있으면서도 아직도 버리지 못한 호박 같은 아내의 소망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텃밭에 여기저기 뻗은 덩굴에도 아침이면 지천으로 환하게 피어난다. 수꽃은 기다란 꽃대 위에서 소박한 모습으로 피어나지만, 암꽃은 짧은 꽃대에 새알 만한 씨방을 달고, 그 위에 수꽃보다 더 크고 소담하게 피어난다. 호박꽃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미나 백합과 달리 꽃잎이 서로 갈라서지 않는 통꽃이다. 그런 꽃을 볼 때마다 별것도 아닌 일에도 잘 웃는 아내의 함박 웃음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다. 아내는 남의 기쁜 일에도 호박꽃처럼 환한 기쁨을 꾸밈없이 잘 드러낸다.
가루받이를 끝낸 암꽃은 시들어 떨어지지만 열매는 날마다 눈에 띄게 커간다. 녹색 풍선에 입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어린 씨방은 빵빵한 탄력으로 터질 듯 통통해지면서 녹색의 줄무늬와 엷은 옥색바탕으로 퍼드러진다. 잔털이 보송보송했던 어린 열매가 뽀얗게 색이 엷어지면, 젖살 오른 어린 아이 볼처럼 오동통하다. 그러다가 새신랑 마고자 단추처럼 가슴 떨리게 투명한 색이 되었을 때 안쓰러운 마음으로 애호박을 수확한다. 다른 열매보다 굵은 사각의 과일 자루는 잔가시까지 소복하게 나 있다. 그러나 천금을 얻은 것만큼이나 마음은 풍요롭다.
애호박은 커다란 잎새 뒤에 숨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없다. 한창 무르익어 먹기 좋은 처녀 호박이 되어 있어도 잎새 때문에 미처 눈에 띄지 못한 놈은 불행하게도 그냥 쇠어 늙어간다. 그렇게 늙은 호박은 가을을 맞아 엉성해진 덩굴과 잎새 아래에서 볕을 받아 점점 등황색으로 짙어가고 덩이도 또한 커진다. 서리 내릴 때쯤 꼭지가 마르면 따들이는데, 모양이나 빛깔, 큰 덩어리가 횡재한 것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늙은 호박의 멋은 애호박의 오동통한 맛에 비해 사십대 중반의 아내처럼 깊고 그윽한 빛깔과 맛을 낸다.
그런 아내의 빛깔과 맛에 길들여진 나는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서 호박으로 된 모든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호박잎 된장국이나 호박잎 쌈, 애호박구이, 호박전, 애호박부침개, 호박떡, 호박새우젓국, 호박국이 다 좋다. 들큰한 맛과 이것저것 한데 섞어 음식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것 같아 좋아하지 않던 호박범벅도 이제는 그다지 싫지 않다.
호박잎 된장국은 여린 호박잎을 까칠까칠한 껍질을 벗기고 손바닥에 놓고 약간 비벼서 넣고 된장을 풀어 끓여낸다. 여기에 감자를 몇 조각 넣으면 더 깊이 있는 맛이 난다. 멸치나 다른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아야 맛의 진수를 볼 수 있다. 과음한 이튿날 아침 속 푸는 데는 북엇국이나 아욱국이 따라오지 못한다. 그런데 호박잎 된장국은 손맛을 많이 탄다. 아내의 손맛이어야 한다. 된장을 적당히 풀어야하고 호박잎 손질에도 그 맛이 많이 좌우된다. 특히 서리 내릴 때쯤 추위로 풀이 죽은 호박잎 사이로 철모르고 나온 파릇한 어린 새순과 잎줄기, 꽃망울, 가루받이를 못한 열매를 함께 넣고 끓인 호박잎 된장국을 먹으면 속만 편안해 지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따뜻한 손길이 마음까지 쓰다듬는 듯하다.
애호박전도 애호박을 얇게 썰어서 밀가루를 발라 기름에 지져서 양념 간장을 곁들여 먹으면 그냥 그 맛이다. 호박전이나 호박새우젓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여름철에 먹는 호박새우젓국은 짭짤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 맛을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늙은 호박의 쓰임새도 다양하다. 늙은 호박을 꼭지만 문을 열듯이 예리한 칼로 도려내고, 씨를 발라 낸 다음 꿀과 대추 같은 것을 넣고 푹 고아 먹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아내의 품에 든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호박고지를 넣은 호박떡, 애호박을 넘어선 푸른 호박고지 나물볶음도 겨울철에 만나는 따뜻함이다.
호박만큼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붙임성 있으며 부접이 좋은 작물도 없을 것이다. 아무 곳이나 흙이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풀섶이나 나뭇가지나 담장이나 마다 않고 덩굴손을 내미는 것이 호박덩굴이다. 마치 층층시하 번성한 집안에서도 스스럼없이 잘 견디는 아내의 모습과 같다.
호박만큼 마음을 풍요롭고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크게 값나가는 재물도 아니면서 몇 덩이만 거실에 들여놓아도 부자가 된 듯 흐뭇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게 한 덩이 번쩍 들어 주어도 대단한 것을 선물 한 듯이 넉넉해진다. 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넉넉한 마음은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호박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먹거리로서의 호박은 물론이고, 시골 텃밭이나 담장에서 꽃을 피우고 힘겨운 열매를 맺은 뒤, 서리가 내리면 힘차게 뻗어 가던 줄거리가 힘없이 말라죽는 호박의 생애를 경멸하는 한국인도 없을 것이다. 호박은 우리 한국인의 아내를 닮았기 때문이다. 생명력, 맛, 넉넉함, 소망, 베푸는 정이 윤기 흐르는 등황색의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거실에 앉아 잘 익어 등황색으로 윤기 흐르는 호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내의 분신으로 온 집안을 가득 채운 듯한 넉넉한 마음이 된다.
(2002. 11. 10.)
호박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잘 생겼다. 그야말로 호박처럼 생겼다. 볕이 좋았던 작년 것만은 못하지만, 반짝반짝 윤이 나고 알맞게 구부러져 깊이 패인 주름에다가 손으로 빚어서 알맞게 누른 것처럼 균형미를 갖추었다. 게다가 옛 장인들의 수택이 오른 골동품처럼 윤기가 흐르는 등황색은 바라보기만 해도 내면에 꿈틀거리며 쓸모 없는 쪽으로 흩어지는 헤아림을 사위게 했다. 그런 호박을 바라보면서, 이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 나의 색깔로 물들여졌으면서도 나와는 다른 좀더 큰손을 가진 아내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거실 여기 저기 눈길 닿는 곳마다 조심스럽게 그들의 자리를 정해 주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호박이나 호박꽃의 외모를 경멸하여 말한다. 나도 호박꽃을 볼품 있는 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습하고 후미진 풀섶으로만 기어다니던 호박덩굴이, 가늘고 여린 덩굴손으로 이층 건물 높이의 소나무를 감고 올라가, 건물 그늘에 가린 다른 놈들보다 먼저 아침햇살을 받으면서 노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호박꽃을 본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태양이 가까운 곳에서 볕을 받아 소담스럽게 피어난 그 꽃에서 숨겨져 있으면서도 아직도 버리지 못한 호박 같은 아내의 소망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텃밭에 여기저기 뻗은 덩굴에도 아침이면 지천으로 환하게 피어난다. 수꽃은 기다란 꽃대 위에서 소박한 모습으로 피어나지만, 암꽃은 짧은 꽃대에 새알 만한 씨방을 달고, 그 위에 수꽃보다 더 크고 소담하게 피어난다. 호박꽃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미나 백합과 달리 꽃잎이 서로 갈라서지 않는 통꽃이다. 그런 꽃을 볼 때마다 별것도 아닌 일에도 잘 웃는 아내의 함박 웃음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다. 아내는 남의 기쁜 일에도 호박꽃처럼 환한 기쁨을 꾸밈없이 잘 드러낸다.
가루받이를 끝낸 암꽃은 시들어 떨어지지만 열매는 날마다 눈에 띄게 커간다. 녹색 풍선에 입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어린 씨방은 빵빵한 탄력으로 터질 듯 통통해지면서 녹색의 줄무늬와 엷은 옥색바탕으로 퍼드러진다. 잔털이 보송보송했던 어린 열매가 뽀얗게 색이 엷어지면, 젖살 오른 어린 아이 볼처럼 오동통하다. 그러다가 새신랑 마고자 단추처럼 가슴 떨리게 투명한 색이 되었을 때 안쓰러운 마음으로 애호박을 수확한다. 다른 열매보다 굵은 사각의 과일 자루는 잔가시까지 소복하게 나 있다. 그러나 천금을 얻은 것만큼이나 마음은 풍요롭다.
애호박은 커다란 잎새 뒤에 숨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없다. 한창 무르익어 먹기 좋은 처녀 호박이 되어 있어도 잎새 때문에 미처 눈에 띄지 못한 놈은 불행하게도 그냥 쇠어 늙어간다. 그렇게 늙은 호박은 가을을 맞아 엉성해진 덩굴과 잎새 아래에서 볕을 받아 점점 등황색으로 짙어가고 덩이도 또한 커진다. 서리 내릴 때쯤 꼭지가 마르면 따들이는데, 모양이나 빛깔, 큰 덩어리가 횡재한 것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늙은 호박의 멋은 애호박의 오동통한 맛에 비해 사십대 중반의 아내처럼 깊고 그윽한 빛깔과 맛을 낸다.
그런 아내의 빛깔과 맛에 길들여진 나는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서 호박으로 된 모든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호박잎 된장국이나 호박잎 쌈, 애호박구이, 호박전, 애호박부침개, 호박떡, 호박새우젓국, 호박국이 다 좋다. 들큰한 맛과 이것저것 한데 섞어 음식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것 같아 좋아하지 않던 호박범벅도 이제는 그다지 싫지 않다.
호박잎 된장국은 여린 호박잎을 까칠까칠한 껍질을 벗기고 손바닥에 놓고 약간 비벼서 넣고 된장을 풀어 끓여낸다. 여기에 감자를 몇 조각 넣으면 더 깊이 있는 맛이 난다. 멸치나 다른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아야 맛의 진수를 볼 수 있다. 과음한 이튿날 아침 속 푸는 데는 북엇국이나 아욱국이 따라오지 못한다. 그런데 호박잎 된장국은 손맛을 많이 탄다. 아내의 손맛이어야 한다. 된장을 적당히 풀어야하고 호박잎 손질에도 그 맛이 많이 좌우된다. 특히 서리 내릴 때쯤 추위로 풀이 죽은 호박잎 사이로 철모르고 나온 파릇한 어린 새순과 잎줄기, 꽃망울, 가루받이를 못한 열매를 함께 넣고 끓인 호박잎 된장국을 먹으면 속만 편안해 지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따뜻한 손길이 마음까지 쓰다듬는 듯하다.
애호박전도 애호박을 얇게 썰어서 밀가루를 발라 기름에 지져서 양념 간장을 곁들여 먹으면 그냥 그 맛이다. 호박전이나 호박새우젓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여름철에 먹는 호박새우젓국은 짭짤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 맛을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늙은 호박의 쓰임새도 다양하다. 늙은 호박을 꼭지만 문을 열듯이 예리한 칼로 도려내고, 씨를 발라 낸 다음 꿀과 대추 같은 것을 넣고 푹 고아 먹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아내의 품에 든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호박고지를 넣은 호박떡, 애호박을 넘어선 푸른 호박고지 나물볶음도 겨울철에 만나는 따뜻함이다.
호박만큼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붙임성 있으며 부접이 좋은 작물도 없을 것이다. 아무 곳이나 흙이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풀섶이나 나뭇가지나 담장이나 마다 않고 덩굴손을 내미는 것이 호박덩굴이다. 마치 층층시하 번성한 집안에서도 스스럼없이 잘 견디는 아내의 모습과 같다.
호박만큼 마음을 풍요롭고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크게 값나가는 재물도 아니면서 몇 덩이만 거실에 들여놓아도 부자가 된 듯 흐뭇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게 한 덩이 번쩍 들어 주어도 대단한 것을 선물 한 듯이 넉넉해진다. 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넉넉한 마음은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호박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먹거리로서의 호박은 물론이고, 시골 텃밭이나 담장에서 꽃을 피우고 힘겨운 열매를 맺은 뒤, 서리가 내리면 힘차게 뻗어 가던 줄거리가 힘없이 말라죽는 호박의 생애를 경멸하는 한국인도 없을 것이다. 호박은 우리 한국인의 아내를 닮았기 때문이다. 생명력, 맛, 넉넉함, 소망, 베푸는 정이 윤기 흐르는 등황색의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거실에 앉아 잘 익어 등황색으로 윤기 흐르는 호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내의 분신으로 온 집안을 가득 채운 듯한 넉넉한 마음이 된다.
(2002.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