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마음으로 우러러볼 수 있는 태양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자신의 진짜 태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도 또한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그토록 바라기를 하는데도 구름 속에서 숨어 짱짱한 볕 한 번 제대로 비쳐 주지 않는 태양을 향해 애타는 '바라기'를 하는 사람도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태양은 생명의 원천이고, 살아가는 진리의 근원이며, 믿음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바라볼 태양을 온전히 지니고 방황하지 않으며, 언제나 '바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삶이 '해바라기성'이라는 지탄을 받는다면 그것은 때묻은 세간 탓이라고 생각한다.
11월의 아침은 참으로 어수선하다. 새벽에 '후두둑' 비가 뿌리더니 하늘이 보일 만큼 밝아졌을 때는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매봉산을 버리고 구룡산에 갔다. 조금이라도 하늘 가까이에서 비바람에 씻긴 대지의 맑음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은 온통 비에 젖은 낙엽의 천지다. 아카시아는 특유의 엷은 노랑으로 물들이기도 못한 채 이미 떨어지고, 아직도 파란 잎자루 몇 개가 엉성드뭇하게 매달려 그 모습이 썰렁하다. 봄에 그토록 산을 하얀 환희로 뒤덮었던 벚나무도 자줏빛 물들이기를 포기하고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이제 보기 드문 조선 소나무도 노랗게 바늘잎을 쏟아 놓았다. 참나무들은 아직도 엷은 녹색으로 퇴색되어 끄트머리부터 불에 그을린 듯 누렇게 말라들고 있다. 그렇게 퇴색한 녹색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떨고 있다. 물 묻은 대지는 이렇게 겨울을 준비하고, 겨울의 문턱에서 사람들은 축축한 가을산을 웅크리며 걷는다.
여름을 온통 물에 잠겨 지내고 맞은 올 가을은 단풍이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 산이 온통 여름동안의 물들이기를 자랑하며 오만가지 색으로 뽐내야 할텐데 그런 물들이기의 축제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냥 우중충하고, 칙칙하게 떨어지는 그들의 '여름나기'를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 그들은 이 여름에 어떤 태양을 모시고 '바라기'를 해왔을까?
퇴근길에 우리 동네로 넘어오는 길가에 가꾼 멋들어진 느티나무들의 '물들이기'도 여느 해만큼 화려하지 못하다. 대개 느티나무는 아침저녁으로 선들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 짙은 녹색이 자줏빛으로 변하다가 발갛게 되거나 노랗게 변하여, 그 작은 잎새들이 거리를 온통 축제의 꽃가루로 가득 채우는 법인데, 올해는 아직도 푸른색을 버리지 못했거나 그냥 갈색으로 말라 떨어져 도로에 흩날린다.
은행잎처럼 화려한 물들이기가 어디 있을까? 어린날 꾀꼬리 가슴처럼 샛노란 은행잎은 얼마나 오돌오돌한 흥분으로 우리를 들뜨게 했는가? 그런데 우회도로 은행나무들은 아직도 그냥 연녹색으로 있다가 오늘 첫눈을 맞았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푸른빛도 가시지 않은 은행잎들이 가장자리만 노란 테두리를 두른 채 소복이 떨어져 제 발 밑에 누워버릴 것이다. 푸라타나스도 '해바라기'만 잘하면 그런 대로 멋진 가을을 장식하는 낭만의 한 구석을 차지한다. 그러나 올해는 푸른 잎이 병든 잎처럼 여기저기가 거뭇거뭇해지다가 떨어져 추한 날개를 펴고 이리저리 뒹군다. 뿐만 아니라 단풍조차도 그 이름만큼의 단풍을 보이지 못한다.
'해바라기'의 천재인 해바라기조차도 올해는 '해바라기'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이다. 올 봄에 새로 개통한 학교 앞 도로 한 편에 시(市)에서 해바라기를 심었다. 장마가 시작할 무렵에 그 많은 해바라기 모가 어디서 났는지 도로가 잔디밭에 소복하게 심었다. 시에서 계획적으로 미리 묘판을 만들었다가 옮겨 심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할 기특한 생각을 한 공복(公僕)에게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늦여름 해바라기들이 그 커다란 얼굴을 태양을 따라 돌리면서 화려한 황색의 천지를 이룰 것을 상상하며 가벼운 흥분에 젖었다.
모종을 끝난 뒤 잦은 비 덕분에 척박한 땅에도 바로 뿌리를 내리고, 대공이 제법 어린아이 손목 굵기 만해지면서 울퉁불퉁한 근육까지 자랑하게 되었다. 널찍하고 싱싱한 잎사귀들이 굵은 빗방울에도 끄덕 없이 견디게 되었다. 한 차례 모진 바람이 불어 초등학교 아이들 키만큼 자란 몇 그루가 넘어지기는 했어도 기둥같이 튼튼한 줄기와 생명력을 자랑하는 잎사귀들이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팔월 한 달 내내 내린 비는 좀 늦게 모종한 해바라기들을 제 키만큼 키우는데 한 몫을 한 모양이다.
구월이 되자 해바라기들은 그 싱싱한 잎사귀들이 검푸르게 변하고 상순에 동그랗게 멍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곁가지까지 길러서 더 소담한 가을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구월에도 심술궂은 그들의 태양은 그들이 바라는 것만큼 쉽게 따사로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아침에 조금 얼굴을 내밀어 그 작고 여린 멍울들이 재빠르게 동쪽을 향하면 어느새 검은 구름 사이로 숨어 보는 사람을 애태웠다. 그러나 줄기나 잎은 여전히 싱싱했다.
해바라기들은 그렇게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시월 어느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아침 출근길에 해바라기들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해바라기들의 그 청청한 잎사귀들이 아랫도리서부터 시들어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억세고 싱싱해 보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서리맞은 고구마 잎이나 고춧잎처럼 시커먼 죽음의 색으로 변해 버렸다. 똥이 덕지덕지 묻은 비루먹은 송아지 꼬리처럼 추레하니 서있는 꼴이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오늘 차가운 진눈깨비를 맞고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내일 아침 출근 길이 두렵다. 태양의 크기 만한 얼굴에 영근 씨앗을 가득 담은 그 무게로 고개가 뒤틀어질 가을을 기대했었는데, 피다 시든 가련한 해바라기 멍울들이 이제 까맣게 썩어갈 일이며, 한여름 동안 그토록 꿈을 키우며 하늘을 향했던 싱싱한 줄기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을 저미는 듯하다.
태양은 어떤 사람에게 오롯한 볕을 내려 주는 것일까? 어떻게 사는 사람에게 마음놓고 '바라기'를 허락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태양을 잘못 찾은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기'를 하지 않은 것일까? 그들에게 태양은 본래부터 그렇게 매정한 것이었을까?
처음으로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해 없는 하늘을 향하여 그렇게 절절하게 '해바라기'를 하던 학교 앞 해바라기들에게 여름 내내 따뜻한 볕 한줌도 내려 주지 않은 매정한 하늘이 원망스럽다. 여름 내내 물에 퐁당 빠진 듯이 비만 맞으면서도 태양을 닮은 황금색의 얼굴을 터트려 보려고 열망하다 맥없이 시들어가는 어린 멍울이 한없이 안쓰럽다.
(200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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