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를 조금만 떠나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흙집이다. 뿐만 아니라 흙집이 고상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것은 시멘트벽에 거죽만 황토를 바른 집을 봐도 알 수 있다. 또 그것을 보면 흙집이 도회인의 선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시 근교에 새로 지은 흙집은 옛날처럼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가집이 아니라, 황토를 이겨 벽을 바르고 서구 영화에나 어울릴 것 같은 지붕으로 이은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 대개 그런 집들은 과거의 토담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담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어쨌거나 흙집이 새삼 유행하는 것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환토(還土) 본능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흙집을 볼 때마다 흙집에서 살던 훈훈한 추억에 젖기도 한다. 내가 살던 집은 그런 아담한 집은 아니었다. 짚으로 지붕을 이기는 했으나 안채와 사랑채 뿐 아니라, 행랑채에다 높다란 대문간이 있고, 부속 건물로 헛간, 디딜방아간, 연자방아간을 거느리고 있는 큰집이었다. 그러나 마을에는 처마가 뜰에 닿을 듯한 야트막한 초가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정이 저절로 묻어날 것 같은 옛 마을을 그리며 향수에 젖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고유의 흙집이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건축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흙집은 터를 마련하는 것부터 생명을 근본으로 출발한다. 집터는 주변의 산줄기와 물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한다. 산은 바람의 모양을 만들고, 물은 그 집에 살 생명의 모양을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산이 만들어 보내는 바람의 흐름을 집이 가로막거나 되돌려서는 안되고, 골짜기가 만드는 지상과 지하의 물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터를 골라야 한다. 산줄기의 흐름과 물의 흐름도 다 따지고 보면 흙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을 지을 위치가 정해지면 터다지기를 한다. 터다지기도 물론 흙을 다루는 일이고 주변의 생기를 고려한다. 집이 들어설 자리를 깊이 파고 참숯과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는다. 참숯과 소금을 넣는 것은 벌레와 습기 뿐 아니라, 생명을 방해하는 물질이나 잡념까지도 피하고자 하는 과학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커다란 돌을 밧줄로 묶어 여러 사람이 함께 드놓으면서 터다짐 노래를 부른다. 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놀고 마시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터다짐은 터가 되는 흙만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의 터도 달래고 다지는 것이다. 이 때 부르는 터다짐 노래는 우리 고장에도 전해 내려온다.
에헤이 지저미호/ 소백산 제일봉은/ 산중에 두나 조종인데/ 그 산 명기가 줄줄이 너려/ 충청도루 들어왔네/ 충청도 계룡산은/ 산중에 명산인데/ 그 산 명기 나서다가/ 보은산으로 돌아왔네.
보은산에 문장대는/ 세조 대왕이 놀던 댈세/ 그 산 명맥이 뚝 떨어져서/ 청주 우암산 생겼으니/ 청주 도청이 되었구나/ 이 댁 가중에 터를 닦세
(최인복, 남 71세, 청주 영운동, 민담민요지)
이 노래에서 보더라도 소백산, 계룡산에서 발기하여 보은 속리산까지 흙에서 흙으로 이어진 생명의 氣를 새로 지을 집터에 몰아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터다짐이 끝나면 집짓기가 시작된다. 집을 세우는 일은 목재를 다루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흙일로 마감한다. 목수 일은 재목의 선의 조화로 집의 기본 구조를 이루어내는데 비하여 흙은 뼈대에 살을 붙여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는다. 목수 일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흙일은 솜씨와 정성이 성패를 좌우한다.
벽은 흙벽돌을 쌓아 올려 황토를 발라 마감하기도 하고, 속 뼈를 넣고 역시 황토로 바르기도 한다. 흙벽돌은 차진 황토로 만든다. 황토에 볏짚을 알맞게 썰어서 섞고 물과 함께 몇 번이고 이기고 주무르고 밟아서 다진다. 충분히 다져지면 틀에 넣고 찍어낸다. 그리고 그늘에 널어 갈라지거나 깨지지 않게 정성을 다하여 말린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것만큼 황토는 다시 사람에게 그 정성을 되돌려 준다.
뼈집은 기둥과 도리 사이에 수수깡을 엮어 속뼈를 넣고 황토를 이겨 바른 다음, 어느 정도 마르면 황토에 마사(백악이라고도 함)를 섞어 마감 바르기를 한다. 황토에 백악을 섞으면 말라도 갈라짐이 없고 단단하고 황토와 다른 품격 높은 빛깔을 낸다. 이 때 황토 일을 거들어 본 사람은 황토가 차지면서도 얼마나 사람의 말을 잘 듣는가를 잘 알 것이다. 시멘트처럼 다 굳어진 다음에나 단단해 지는 것이 아니다. 물이 고루 섞이도록 다지기만 잘 하면 차지고 끈적거려서 벽에 발라도 흘러내리지 않고, 두텁게 바르고 싶으면 두텁게 바를 수 있고 얇게 바르고 싶으면 얇게 바를 수 있다. 물기가 가시고 흙이 굳으면 오히려 부드럽고 융통성 있어서 저절로 습기가 조절된다. 그뿐 아니라 숨을 쉬듯 공기를 흡수하고 방출하며, 냉기와 온기를 끊어줄 때와 보존할 때를 절로 알아 조절하니 벽은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여기에 구들을 놓고 구들장 사이를 황토로 메운 다음 황토에 마사를 알맞게 섞어 곱게 마감하여 방바닥을 완성한다. 여기에 군불을 때고 누우면 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황토 사우나가 되는 것이다. 지붕은 사치스러운 기와보다 볏짚으로 이은 초가집, 굵은 나무토막을 쪼개 만든 너와집, 굴참나무나 굴피나무의 껍질로 만든 굴피집이 인간을 자연에 더 가깝게 한다.
흙집은 수리나 보존도 황토로 한다. 지금도 해마다 봄가을에 온 식구가 나서서 부뚜막이나 벽, 뜰에 황토 덧씌우기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뒷산에서 황토를 파다가 마당에 놓고 나무 뿌리 풀뿌리를 골라내고 잔돌까지 고른다. 바람에 어느 정도 습기가 날아가면 굵은 흙체로 쳐서 곱게 고른 다음, 물에 질척하게 섞어서 갈라진 부뚜막이나 벽을 바른다. 또 여름 장마에 패인 뜰을 황토를 개어 채운다. 연기에 그을린 부엌도 묽은 황토물로 페인트칠하듯 바르면 새집이 된 듯 산뜻한 기분이 된다. 여기에 산자락과 어울리는 타원형의 아름다움을 지닌 지붕, 봄바람,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 황톳빛 벽, 마당에 뒹구는 삽살개는 향수 어린 한 폭의 그림이다.
집은 토굴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토굴에서 움막으로, 움막에서 토담집으로, 토담집에서 기와집으로 변하는 동안 결코 흙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여러 가지 새로운 소재에 의한 건축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동안 인간의 오만함이 흙을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흙으로 빚어진 사람은 흙 속에서 살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환토관(還土觀)에 의한 고루한 생각만은 아니다. 흙은 신체적인 생명성 뿐 아니라, 마음의 생명성도 유지시켜 준다. 그래서 흙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올곧게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할 것이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삶의 집에서 죽음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이나 죽음이나 그 차지하는 공간은 흙인 것을 보면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을 갖는다면 죽음의 '공포'라는 이념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세속적 유한성을 극복하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永生의 흙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2003. 4. 13)
나는 흙집을 볼 때마다 흙집에서 살던 훈훈한 추억에 젖기도 한다. 내가 살던 집은 그런 아담한 집은 아니었다. 짚으로 지붕을 이기는 했으나 안채와 사랑채 뿐 아니라, 행랑채에다 높다란 대문간이 있고, 부속 건물로 헛간, 디딜방아간, 연자방아간을 거느리고 있는 큰집이었다. 그러나 마을에는 처마가 뜰에 닿을 듯한 야트막한 초가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정이 저절로 묻어날 것 같은 옛 마을을 그리며 향수에 젖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고유의 흙집이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건축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흙집은 터를 마련하는 것부터 생명을 근본으로 출발한다. 집터는 주변의 산줄기와 물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한다. 산은 바람의 모양을 만들고, 물은 그 집에 살 생명의 모양을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산이 만들어 보내는 바람의 흐름을 집이 가로막거나 되돌려서는 안되고, 골짜기가 만드는 지상과 지하의 물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터를 골라야 한다. 산줄기의 흐름과 물의 흐름도 다 따지고 보면 흙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을 지을 위치가 정해지면 터다지기를 한다. 터다지기도 물론 흙을 다루는 일이고 주변의 생기를 고려한다. 집이 들어설 자리를 깊이 파고 참숯과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는다. 참숯과 소금을 넣는 것은 벌레와 습기 뿐 아니라, 생명을 방해하는 물질이나 잡념까지도 피하고자 하는 과학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커다란 돌을 밧줄로 묶어 여러 사람이 함께 드놓으면서 터다짐 노래를 부른다. 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놀고 마시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터다짐은 터가 되는 흙만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의 터도 달래고 다지는 것이다. 이 때 부르는 터다짐 노래는 우리 고장에도 전해 내려온다.
에헤이 지저미호/ 소백산 제일봉은/ 산중에 두나 조종인데/ 그 산 명기가 줄줄이 너려/ 충청도루 들어왔네/ 충청도 계룡산은/ 산중에 명산인데/ 그 산 명기 나서다가/ 보은산으로 돌아왔네.
보은산에 문장대는/ 세조 대왕이 놀던 댈세/ 그 산 명맥이 뚝 떨어져서/ 청주 우암산 생겼으니/ 청주 도청이 되었구나/ 이 댁 가중에 터를 닦세
(최인복, 남 71세, 청주 영운동, 민담민요지)
이 노래에서 보더라도 소백산, 계룡산에서 발기하여 보은 속리산까지 흙에서 흙으로 이어진 생명의 氣를 새로 지을 집터에 몰아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터다짐이 끝나면 집짓기가 시작된다. 집을 세우는 일은 목재를 다루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흙일로 마감한다. 목수 일은 재목의 선의 조화로 집의 기본 구조를 이루어내는데 비하여 흙은 뼈대에 살을 붙여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는다. 목수 일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흙일은 솜씨와 정성이 성패를 좌우한다.
벽은 흙벽돌을 쌓아 올려 황토를 발라 마감하기도 하고, 속 뼈를 넣고 역시 황토로 바르기도 한다. 흙벽돌은 차진 황토로 만든다. 황토에 볏짚을 알맞게 썰어서 섞고 물과 함께 몇 번이고 이기고 주무르고 밟아서 다진다. 충분히 다져지면 틀에 넣고 찍어낸다. 그리고 그늘에 널어 갈라지거나 깨지지 않게 정성을 다하여 말린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것만큼 황토는 다시 사람에게 그 정성을 되돌려 준다.
뼈집은 기둥과 도리 사이에 수수깡을 엮어 속뼈를 넣고 황토를 이겨 바른 다음, 어느 정도 마르면 황토에 마사(백악이라고도 함)를 섞어 마감 바르기를 한다. 황토에 백악을 섞으면 말라도 갈라짐이 없고 단단하고 황토와 다른 품격 높은 빛깔을 낸다. 이 때 황토 일을 거들어 본 사람은 황토가 차지면서도 얼마나 사람의 말을 잘 듣는가를 잘 알 것이다. 시멘트처럼 다 굳어진 다음에나 단단해 지는 것이 아니다. 물이 고루 섞이도록 다지기만 잘 하면 차지고 끈적거려서 벽에 발라도 흘러내리지 않고, 두텁게 바르고 싶으면 두텁게 바를 수 있고 얇게 바르고 싶으면 얇게 바를 수 있다. 물기가 가시고 흙이 굳으면 오히려 부드럽고 융통성 있어서 저절로 습기가 조절된다. 그뿐 아니라 숨을 쉬듯 공기를 흡수하고 방출하며, 냉기와 온기를 끊어줄 때와 보존할 때를 절로 알아 조절하니 벽은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여기에 구들을 놓고 구들장 사이를 황토로 메운 다음 황토에 마사를 알맞게 섞어 곱게 마감하여 방바닥을 완성한다. 여기에 군불을 때고 누우면 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황토 사우나가 되는 것이다. 지붕은 사치스러운 기와보다 볏짚으로 이은 초가집, 굵은 나무토막을 쪼개 만든 너와집, 굴참나무나 굴피나무의 껍질로 만든 굴피집이 인간을 자연에 더 가깝게 한다.
흙집은 수리나 보존도 황토로 한다. 지금도 해마다 봄가을에 온 식구가 나서서 부뚜막이나 벽, 뜰에 황토 덧씌우기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뒷산에서 황토를 파다가 마당에 놓고 나무 뿌리 풀뿌리를 골라내고 잔돌까지 고른다. 바람에 어느 정도 습기가 날아가면 굵은 흙체로 쳐서 곱게 고른 다음, 물에 질척하게 섞어서 갈라진 부뚜막이나 벽을 바른다. 또 여름 장마에 패인 뜰을 황토를 개어 채운다. 연기에 그을린 부엌도 묽은 황토물로 페인트칠하듯 바르면 새집이 된 듯 산뜻한 기분이 된다. 여기에 산자락과 어울리는 타원형의 아름다움을 지닌 지붕, 봄바람,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 황톳빛 벽, 마당에 뒹구는 삽살개는 향수 어린 한 폭의 그림이다.
집은 토굴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토굴에서 움막으로, 움막에서 토담집으로, 토담집에서 기와집으로 변하는 동안 결코 흙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여러 가지 새로운 소재에 의한 건축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동안 인간의 오만함이 흙을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흙으로 빚어진 사람은 흙 속에서 살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환토관(還土觀)에 의한 고루한 생각만은 아니다. 흙은 신체적인 생명성 뿐 아니라, 마음의 생명성도 유지시켜 준다. 그래서 흙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올곧게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할 것이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삶의 집에서 죽음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이나 죽음이나 그 차지하는 공간은 흙인 것을 보면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을 갖는다면 죽음의 '공포'라는 이념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세속적 유한성을 극복하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永生의 흙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200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