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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해석으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적 속삭임

‘관계’의 해석으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적 속삭임 - 『한국수필』 1월호를 읽고 - 이방주 수필가는 창작에 앞서 수필문학의 개념을 분명히 규정하여야 한다. 수필의 범위를 정하고 타문학 양식과 다른 특성을 알고 수필을 써야 ‘넋두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있다. 허구적 양식인 시나 소설과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야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나 구성도 달라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와 수필은 태생부터 다르다. 시가 태초에 인류가 신에게 드리는 소망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면, 수필은 현대를 사는 철학적 인간이 이웃에게 들려주는 치유의 속삭임이다. 그래서 시는 일방적이고 수필은 쌍방 간에 소통하는 목소리여야 한다. 시인은 평범한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대신 기도하는 사제司祭라 한다면 수필가는 이웃과 아..

무심無心 앤솔러지Anthology (무심수필 3호 작품 해설)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휴머니티의 속삭임 - 무심無心 앤솔러지Anthology - 이방주(수필가 문학평론가) 무심 앤솔러지가 지향하는 가치 《무심수필》 3호 발간을 축하한다. 2018년 8월 24일 16명으로 출발한 무심수필문학회는 22명의 단단하고 열정적인 회원으로 정착하여 《무심수필》 3호를 내기에 이르렀다. 창간호에는 14명 회원이 35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었다. 작고 수필가로 우리 고장 목성균수필가의 작품을 실은 뜻은 우리가 지향하는 수필 세계를 어렴풋이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초대 수필로 충북의 대표 수필가인 반숙자, 박영자 수필가의 작품을 실었다. 《무심수필》 2호에는 18명 회원의 작품 36편과 회원 5명의 등단 작품과 심사평, 수상소감을 실어 동인지를 더 든든하게 했다. 초대 수..

벌초냐 도토리냐

오늘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를 했다. 지난여름 긴 장마에 개망초가 두어 자씩 자라고 억새도 숲을 이루어 제절에 고라니 잠자리까지 생겼다. 유월에 해야 할 여름 벌초를 비 때문에 미루다 팔월초순에나 할 수 있었다. 개망초를 다 뽑아내고 억새를 베어냈다. 잔디만 남긴 다음 예초기로 예쁘게 다듬어 놓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했다. 봄에는 봉분에 이끼가 생겨 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뿌리 썩은 잔디가 누렇게 스러졌다. 부근에서 떼를 떠다가 이었는데도 아직도 내 엉성한 속안머리처럼 허여멀겋다. 늦은 가을 다시 한 번 떼를 파다 이어야겠다. 혹시 아나.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속안머리를 까맣게 채워주실지. 허허, 그 소망이 가소롭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늦잠 자고 있을 아들을 불러 운전을 부..

일상에서 삭이고 우려낸 삶의 원형성 - 김윤희의 <어머니의 길>-

제 27회 충북수필문학상 심사평 어머니의 길 김윤희 ‘가 봐야지, 가서 꼭 한 번 만나봐야지’ 오래전부터 그리던 곳을 향하고 있다. 차창에 눈을 매단 채 앉아 있어도 마음은 몇 시간째 서성거린다. 드디어, 율포 앞 바다 새벽안개에 머리를 감고 가지런히 참빗질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산기슭 구릉 따라 푸르게 일렁이며 가슴을 열고 다가오는 봇재다. 더러 소릿재로 불리기도 하는 이 고개를 중심으로 한쪽은 판소리 서편제가 터를 내린 곳이고 또 다른 쪽은 보성 남쪽 끝 바닷가 마을을 끌어안고 있는 녹차 재배지이다. 해안을 굽어보는 활성산의 봇재가 바다의 물결마냥 남실남실 굽이치고 있다. 율포 앞 바다와 산 구릉이 밤마다 무시로 은밀히 마음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 닮아가면서 만들어냈을 이 초록 물결에 나의 달뜬 마..

다독다讀 -김은숙과 함께 하는 미디어 북카페

유튜브 방송 미디어Z이 운영하고 김은숙 시인이 주관하는 미디어북카페 [다독다讀]에 초대되었다. 일시 : 2020년 9월 3일 오후 3시 장소 : 강서동 존버카페 유튜브 미디어Z 스튜디오 사회 : 김은숙 시인 초대 도서 : 이방주의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다시보기 : www.youtube.com/watch?v=jeUe2P8yjoY 김은숙과 함께 하는 미디어 북카페 다독다독에 초대되었다. 처음 김은숙 시인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지만 호기심은 있었다. 그러나 선뜻 하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은숙 시인은 내가 하는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내가 해야 할 일과 이 방송이 나가고 난 다음에 내게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사양할 단계를 이미 넘어 버렸다. 본래 나는 이렇게 ..

앗싸, 호랑나비

이제 지겹다. 정말 멀미난다. 유월 하순에 시작한 장마가 칠월을 빗속에서 지내게 하더니 입추가 지나도 멈출 줄을 모른다. 세상에 물이 흥건하다. 세상 뿐 아니라 세상살이가 장마에 빠져 버렸다. 정월에 듣도 보도 못하던 코로나가 들어와 세상에 겁을 먹이더니, 일마다 급류에 휘몰아쳐 제정신이 아니게 했다. 어떤 이는 코로나 방역에 날밤을 새우며 싸우다 목숨까지 버리는가 하면, 어떤 이는 코로나를 파도 타듯 올라타고 유유히 대양으로 나가 깃발을 날리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은 오르락내리락 우왕좌왕, 정부는 으르렁으르렁, 검찰은 비실비실, 의원은 두리번두리번, 무지하고 무능하고, 오만하고, 염치없고, 비굴하게 몽니부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휘말리고 돌아쳐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가치는 바퀴 빠진 ..

하동포구에 떠오른 무지개, 그 실존의 흔적 -김규련 작품론-

김규련 작품론 하동포구에 떠오른 무지개, 그 실존의 흔적 이방주 □ 적막한 우수 빛깔의 무상無常 수필가 김규련(1929~2015)은 자신의 수필을 ‘적막한 우수 빛깔의 무상無常’이라고 했다. 무상은 허무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함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무상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나고 변하고 없어지고 또다시 나는 것이어서 그대로인 것이 없는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김규련의 수필에는 무상한 인생의 끊임없는 순환이 녹아 있다. 소목素木 김규련은 1968년 《수필문학》에 작품 〈강마을〉을 발표하여 등단한 이래 2015년 6월 별세할 때까지 《강마을 1977》 《거룩한 본능 1979》 《종교보다도 거룩하고 예술보다도 아름다운 1985》 《素木의 횡설수설 1989》 《높고 낮은 목소리 1992》 《귀로의 ..

로고스와 파토스의 미학 - 이방주의 <보리누름에>

로고스와 파토스의 미학 허상문 들어가며 과학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적 삶에서는 갈수록 이성과 지성의 논리가 삶의 중요한 태도로 여겨진다.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준 편리와 안락에 깊이 침윤되어 사람들은 점차 정심세계의 중요성에는 관심이 사라져 가는 듯하다. 기술과 자본의 힘에 의존하다 보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는 거듭된 불화와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라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창궐하고 있는 것도 인간과 다른 생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생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간다운 삶은 타자(세상)를 위한 공감과 희생을 가능케 하는 사랑의 감정으로부터 성숙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고하고 그러한 정신적 가치가 점차 소멸해 간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심미적 삶..

자연에서 이룬 존재의 정원

강흥구 수필가의 수필집 《산밭에 핀 도라지꽃》 자연에서 이룬 존재의 정원 이방주 (수필가, 문학평론가) □ 들어가기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세계에 존재한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소크라테스 이전에 엘레야 학파를 세운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0년경~450년경)는 존재는 모든 것이 가진 속성일 수도 있고 물리 세계 너머에 또는 그 위나 뒤에 있는 대상이나 영역일 수도 있다고 했다. 불가(佛家)에서 존재(存在)는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채운 현상들을 두루 일컫는다. 보통 그 현상들이 물리적인 인과 관계를 가질 때 ‘존재한다’라고 인식된다. 그리고 그 존재의 실체는 오감에 의해서 알아낸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

현대수필가 100인선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

현대수필가 100人선 90 이방주 수필선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가 수필과비평사. 좋은수필사에서 나왔다 수필과비평사와 좋은수필사에서 기획하여 수필문학평론가 수필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전국 수필가 중에서 선정하였다고 한다. 제안을 받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벌써 선집을 낼 때가 되었나. 정말 선집을 내도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그러나 중간 정산을 하는 것도 의미 있고 그럴 때도 되었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1998년 등단하여 22년간 수필을 쓰고 2014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평론도 썼다. 그간 수필집을 여섯권 내고 의 개정판인 를 냈다. 지금까지 출간한 수필집에서 시기별 주제별로 40편을 가려서 연보와 함께 엮었다. 연보는 내게는 아주 중요한 섦인 40년 교직과 20년 문단생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