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가 품은 우주 새벽 산책길에서 딱한 중생을 만났다. 젓가락으로 입에 올리다 흘린 자장면사리 같다. 꿈틀꿈틀 힘겹게 기어간다. 지난 밤 폭우에 땅속 지렁이 은신처에 빗물이 괸 모양이다. 물구덩이에서 살만한 곳을 찾아 지상으로 나오셨을 것이다. 블록 위에 물이 없으니 숨쉬기는 괜찮겠다. 그런데 여기는 처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산책로는 입주민들이 새벽부터 산책을 한다. 폭우가 내리고 하늘이 말끔하게 갠 날 아침에는 걷는 사람이 더 많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이들이 자전거를 탄다. 쓰레기 수거 차량의 바퀴는 지렁이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하다. 새벽 총알 배송을 생명으로 아는 택배 차량을 지렁이가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운동화에 밟혀 으깨지고 자전거 바퀴에 치어 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