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싹 점심시간이다. 3학년 ‘범생이’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영재가 교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입에는 웃음을 흘리고 있지만, 눈에는 ‘글썽’ 구슬이 맺혔다. 영재가 감싸 쥔 새끼손가락에 그 아이 눈에 맺힌 눈물방울만큼 빨간 핏방울이 솟았다. 누가 봐도 대수롭지 않은 상처다. “정말 별거 아닌데요. 소..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5.07.07
교사가 된 제자에게 교사가 된 제자에게 진실의 빛이 되기를… 이 방 주 윤 선생에게 날씨가 무척 더워요. 그곳 낭성은 청주 분지를 딛고 올라선 곳이라, 물 맑고 바람까지 깨끗해서 그렇게 덥지는 않겠지요. 또, 까무잡잡하고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망울을 동경하던 윤 선생이니까 그렇게 심하게 더위를 타지 않을 거라고 ..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5.02.13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살 수만 있다면, 밤잠을 설치고 새벽밥 뜨는 둥 마는 둥 뽀얀 안개를 헤치고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나는 등산 배낭에 코펠과 버너를 넣고, 아내는 노란 쌍꺼풀에 윤이 반짝반짝 나는 멸치 고추장 볶음을 부산하게 준비할 것이다. 나는 나의 무쏘에 되도록 ..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4.07.08
이런 담배 맛 보셨습니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나 전혀 피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술좌석에 어울리면 남들을 따라 한두 개비 피운다. 또 학교 일로 속상한 일이 있다든지 때로 공연히 우울할 때 또 한두 개비 빼어 문다. 또 골초 선생님들의 천국인 이 진학지도실에 연기가 자욱해지는 쉬는 시간 10분이 괴로울 때 차..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1.06.01
1999년 5월 15일 아침 하늘이 침울하다. TV에서는 점잖은 기자가 나와서 '서울 아무개초등학교가 스승의 날 휴업을 한다더니 14일에 행사를 했다.'면서 고급 승용차와 꽃다발이 쌓인 교사들의 책상 그림과 함께 눈을 치뜨며 흥분하고 있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정말이지 한 25 년쯤 되돌아가고 싶다. 문을 열면 아카시..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1.05.23
만우절 有感 만우절에는 여러 가지 가벼운 거짓말로 남을 놀라게 하거나, 얼떨떨하게 만드는 풍습이 있다. 사람들은 이 만우절을 서양 풍습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동양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설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인도에서는 춘분에 불교의 설법이 시작되어 3월 31일에 끝났는데, 4월 1일에 남에게 헛심부름을 ..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1.03.21
준국이와 선주 초임지에서 4 년을 지내다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청원군에 있는 금관 초등 학교이다. 고향이 가까이에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어머니를 뵐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으나, 선생이라는 참맛을 잃고 직장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동안의 병아리 경험을 살려, 나름대로..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1.03.03
우렁각시 1974년 어느 봄날의 일기장에서 산골의 여울은 밤에 더 크게 울어댄다. 해발 500m가 넘는 이곳 추위도 오월이 되자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보이는 앞산에 소나무가 어제보다 훨씬 가까이 보이고 산모롱이에 아지랑이가 제법 따스하다. 낮에는 잘 모르던 물소리가 밤이 되면 한층 아리게 울..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1.02.13
의풍 일기 1 1974년 6월 18일 맑음 6월 들어 일기장을 처음 만난다. 시간이 없는 건지 마음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위한 생활은 점점 잃어 가고 있다. 3월에 시작한 야학 때문에 그렇고, 사택에서 시작한 자취 생활 때문에 그렇다. 피로가 쌓여 죽을 지경이다. 밤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침..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0.09.18
의풍일기 2 1976년 8월 26일 흐림 경호가 학교 오자마자 삶은 강냉이를 내놓는다.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따끈따끈하다. "경호야, 아침에 강냉이만 먹었니?" "아니요." 대답은 아니라지만 아닌 것 같지 않았다. 양식을 덜어 보내는 정성이나 들고 오는 순진함에 목이 멘다. 교무실에서 생각 없이 한 자..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0.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