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느림보 이방주 2004. 7. 8. 23:03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살 수만 있다면, 밤잠을 설치고 새벽밥 뜨는 둥 마는 둥 뽀얀 안개를 헤치고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나는 등산 배낭에 코펠과 버너를 넣고, 아내는 노란 쌍꺼풀에 윤이 반짝반짝 나는 멸치 고추장 볶음을 부산하게 준비할 것이다. 나는 나의 무쏘에 되도록 많은 책을 싣고, 아들은 또 내가 물려준 노트북 컴퓨터를 선선히 내놓을 것이다.

 

거기서는 새벽에 일어나 산나물을 무치고 고사리를 데쳐서 하얀 쌀밥에 얹어 먹고, 정말로 산 같은 산길로 산보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산보에서 돌아오면 가슴까지 저릿하도록 차가운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머리를 감으면서 그 산뜻한 맛을 날마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해가 이마 높이만큼 비스듬히 비칠 때쯤, 해머를 들고 개울에 널린 물바위를 두드려 꺽지를 잡아오면, 아내는 그 맵찬 솜씨로 매운탕을 끓여 행복한 점심상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부른 배를 적당히 두드리면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유치환의 사랑의 편지를 읽으면, 유치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이 찾아오는 오후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한 달만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우선 아침마다 오르던 낙엽송이 하늘을 찌르는 앞산에 올라, 좁지만 넓어 보이던 그 세상을 내려다 볼 수도 것이다. 골짜기에는 낙엽송 그늘이 어둑어둑하고, 기슭에는 멍석딸기가 검붉게 익어 가시덤불로 발길을 붙잡고, 떡갈나무 숲 사이로 고사리도 포동포동한 손을 내밀어 그 옛날의 나를 반겨 줄 것이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소나무 길에는 혹 송이라도 몇 송이 마른 솔잎을 도도록하게 떠밀고 나올 수도 있고, 그 때 앉아 쉬던 작은 바윗돌 아래에는 산삼도 몇 뿌리 산딸기 같이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슬에 젖은 바지자락을 털며 자갈이 뒹구는 마찻길에 이르면, 아내는 걱정도 없으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맞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두 주일만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베틀재로 넘어가는 해가 저녁 하늘을 발갛게 수놓을 때, 잔잔한 마음을 온통 뒤집어 놓는 용소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내는 얇게 저민 삽겹살을 준비하고 나는 소주 한 병과 불판을 준비하여, 떨어지는 폭포 옆에 버너에 불을 붙이고, 삼겹살 몇 쪽을 구워 둘이서 잔을 부딪치며 지그시 옛날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내의 큰 눈에서 현실의 행복을 읽고, 아내는 내 눈에서 옛날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돌은 한결같이 희고, 물방울은 백옥같이 하얗게 통통 튀어 오르고, 용소에 소용돌이치는 물은 어머니 비취 비녀처럼 고고하게 푸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은 생명력 넘치게 싱싱하고, 바위 끝 아슬아슬한 첨탑에도 소나무는 고즈넉하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을 것이다. 쉬지 않고 피어나는 풀꽃은 하얗고, 노랗고 붉고, 송화는 노란 안개가 되어 날리고, 계수에는 산 복사꽃 흘러내리는 원시의 모습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한 주일만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정말로 진실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침에 국수를 삶으면서도 거리낌 없이 한 젓가락씩 나누면서 소나무의 청청함을 얘기하는 고고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점심으로 찰옥수수 한 자루로도 함께 넉넉해질 수 있는 여유 있는 가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지 둥둥 걷고 누구네 논에라도 들어가 그들과 함께 모춤을 던지며 우스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일이라고 거들고 난 저녁에는, 고등어자반을 안주로 기름 동동 뜨는 옥수수엿술을 대접으로 들이키고 손바닥으로 쓰윽 입술을 문질러 닦아내며, 사람과 마시는 술맛에 황홀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머리로 사는 법은 모르고 가슴으로 사는 법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향에 취한 황홀함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겨울 자이 넘는 눈이 쌓여 해를 넘기는 섣달이 되면, 마을 사랑방에서 가래떡에 옥수수 조청을 찍어 먹으며, ‘옛날 옛적 가장 멋진 호랑이 담배 피우는 법’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에서 잡은 멧돼지 고기를 안주로 소주에 취해 자갈마다 얼어붙는 차가운 달빛을 받으며 자갈 구르는 마찻길을 걸어 총각 선생 혼자 자는 방을 용케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정말로 사람을 만나고, 나도 덩달아 그들을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거기 살던 그 때 그런 아이들끼리 그런 때 묻지 않은 사랑을 하고, 때 묻지 않은 결혼을 하여 저희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사는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나도 정말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다만 한 주일만이라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나는 옛날처럼 진짜 선생이 되는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일찍 불러 가감승제의 아침 자습문제를 칠판에 하얗게 적어 놓고 으름장 놓으며 그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앎이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앎이 힘이 되는 더하기와 곱하기만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앎이 환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앎이 행복이 되는 빼기와 나누기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더하기는 배워 남에게 더해줄 줄 알고, 곱하기는 배워 남에게 곱으로 줄 줄 알며, 빼기는 배워 남에게 빼어줄 줄 알고, 나누기는 배워 남에게 나누어줄 줄 알아야 행복하다는 단순하면서도 변할 수 없는 진리를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의 말은 하느님의 말처럼 모두가 진리인 줄 알았던 그곳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정말로 선생이 되는 행복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늘에 닿은 산은 그대로 하늘을 향하는 소망의 시가 되고, 나무에 얽힌 바람 소리는 그대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되고, 마을을 휘감고 도는 시냇물 소리는 그대로 수필이 되고, 사람들리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는 그냥 드라마가 되어 자연이 온통 아름다운 문학예술인 그곳에 마음껏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거기에 갈 수만 있다면, 거기 가서 다만 며칠만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옛날에 젖어 다만 며칠만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맑은 물에 발을 씻고, 푸른 산바람에 이마를 씻고, 어린 아기 눈물처럼 맑은 아이들 눈에 마음을 씻고, 그렇게 살던 옛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로 선생다운 선생이 될 수도 있고, 글다운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도 정말로 앎이 행복이 되는, 앎이 힘이 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는 거기, 거기는 내가 선생의 뼈를 내려 받은 교직의 고향,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의풍초등학교이다.

(200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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