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에는 여러 가지 가벼운 거짓말로 남을 놀라게 하거나, 얼떨떨하게 만드는 풍습이 있다. 사람들은 이 만우절을 서양 풍습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동양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설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인도에서는 춘분에 불교의 설법이 시작되어 3월 31일에 끝났는데, 4월 1일에 남에게 헛심부름을 시키거나, 헛걸음을 시키면서 즐거워하던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만우절의 풍습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일반화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단조로운 생활에 리듬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십 년 넘게 죽 여고생만을 가르쳐 온 나에게는 만우절이 결코 평범한 날만은 아니었다. 나의 거짓말은 이미 구세대이므로 '학교 앞 은행나무에 목련꽃이 하얗게 피었더라.'라든지, '학칙이 변경되어 내년부터 우리 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바뀐다더라.'는 믿지도 않을 거짓말로 아이들에게 바람을 넣는 수준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조직적으로 선생을 골탕 먹이고 즐거워했다. 선생들도 알아도 속고 몰라도 속으며 그날 하루를 아이들에게 즐거운 날로 제공하였다. 아이들의 장난이라는 것은 대개 교실을 바꾸어 수업하러 들어온 선생을 당황케 한다든지, 교실 문을 닫고 있다가 문을 여는 순간에 폭죽을 터뜨려 놀라게 한다든지, 문손잡이에 풀칠을 해 놓아 난처하게 만드는 정도가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에 속아서 당황하고 놀라는 햇병아리를 넘긴 나는, 만우절이 다가오면 어떤 장난에도 속지 않은 예를 들어가며 아이들에게 절대로 안 속는다고 큰소리를 쳐서 아이들을 김빠지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머리를 짜내어 나를 속이려 한다.
3학년 아이들은 만우절을 잊고 산다. 그러면 아침 조회 시간에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가 모의고사에서 10점 이상 올리지 못하면 학부형을 소환한다든지, 복도에다가 전학년 성적을 게시할 방침이라든지 하는 터무니없는 말로 아이들을 속이고 만우절임을 일깨워 그날 하루만이라도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실을 바꾸는 등의 수업 결손을 가져오는 장난을 피해 가며 슬기롭게 선생을 놀리는 장난을 친다. 나도 영광스럽게 그 대상이 되곤 했다.
하루에 세 시간을 계속해서 수업을 해도 재미있는 반이 있었다. 그 반에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난꾸러기 영랑이란 아이가 있었다. 영랑이는 예쁜 얼굴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두꺼비, 공룡, 뱀, 도마뱀 같은 징그러운 플라스틱 장난감을 주머니에 골고루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놀래 주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본래 세상에서 뱀을 가장 싫어하여, 어렸을 때 뱀에게 놀라 며칠 씩 앓아 누웠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 해 만우절날, 아침에 담임 학급에서는 바람을 일으켰으면서도 만우절임을 까맣게 잊고 그 반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 분위기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출석부에 무엇을 끼운 듯, 약간 도도록하게 일어나 있었다.
평소에 선생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초콜릿이나 사탕 꾸러미, 또는 편지를 자주 끼워 놓았었기 때문에 '누구 짓일까?'하는 생각으로 경례를 했다.
그리고 출석부를 펼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펜을 떨어뜨리며 뒤로 물러섰다. 출석부 가운데에 늘어져 있는 것은 초콜릿도 알사탕도 아니었다.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편지는 더욱 아니었다. 한 뼘하고도 반이나 되는 꿈틀거리는 배암이다. 그것은 모조품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배암이다.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색이 바랬으리라.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건 모조품이었다. 그러나 '속았구나'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천하에 어떤 경우에도 속지 않는다고 큰소리 친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졸렬하고 비겁하지만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나는 고개를 떨구면서 비틀비틀 교탁 옆의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안면 근육을 움직이며 손을 내저었다. 앞에 앉은 아이들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물, 무울…….'하고 소리를 내었다. 속으로는 '이놈들아, 이번에는 네 녀석들 차례야' 하면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얘들아, 선생님이 진짜 놀라셨나 봐"
"아냐, 속지마"
"야, 진짜야 물 있니?"
한 녀석이 보온병을 열고 따뜻한 보리차를 가지고 왔다. 나는 입술에 물을 축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연기는 대성공이다. 영랑이와 그 일당은 울먹이면서 등 뒤로 와서 어깨와 팔다리를 주무르고 수선을 피웠다. 10 분쯤 흘렀을까.
"아, 그 놈들 안마 한 번 시원하다."
나는 비겁하게 위기를 모면하고, 아이들은 투덜거리면서 나의 반격을 불평하였으나, 아이들과 정은 더욱 깊어졌다.
이듬해는 1 학년을 맡게 되었다. 처음으로 담임해 보는 1학년이라 기대도 있고 나름대로의 각오도 있어서 아이들과 정은 날마다 새로워졌다. 아침 조회를 자치적으로 한다든지, 모듬일기를 쓰도록 하여 말길을 열어 놓는다든지 하여 아이들과 담을 헐었다.
이 해에도 만우절은 어김없이 왔다. 1학년이니까 '웬만하면 속아 줘야지'하면서도 전 해에 있었던 얘기를 미리 해 주면서 속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첫 시간에 담임 학급인 1반 수업이다. 경례를 마치자 마자
"선생님, 부탁 드릴 게 있어요."
"만우절인데 선생님 속일 생각을 해야지 웬 부탁이야? 다 들어줄게"
"그러면 선생님 고추 따 주세요."
"뭐, 고추를……."
이건 해도 너무 하는구나 생각했다. 절대로 속아 줄 수 없는 문제를 이 아이들이 내고 있지 않은가? 얼굴이 빨개지고 몸둘 바를 몰라야 재미있을 텐데 '어디다가 고추를 숨겨 놓았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칠판 위에 실하게 생긴 풋고추를 하나 숨겨 놓았다.
"고추라, 익은 고추로 할까? 풋고추로 할까? 선생님은 익은 고추밖에 없는데. 너희는 풋고추가 좋겠지? 뭐든 들어준다고 했는데. 오라 풋고추가 여기 있구먼."
"아니, 그거 말고 밑에 있는 걸로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내 내 눈은 교탁 밑을 살피고 있었다. 과연 교탁 아래에 실하게 생긴 풋고추가 하나 더 매달려 있었다.
그 날 점심은 풋고추가 입맛을 돋구었다. 그러나, 내가 속아 주지 못한 걸 속죄하는 뜻에서 점심 시간까지 소문내지 않았다. 그래서 몇 분 젊은 선생님들이 고스란히 당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저희와 공범이라며 공범끼리만의 의리로 더욱 믿음이 두터워졌다.
이태 후 학교를 옮겨 2학년을 맡았는데, 공학이지만 여학생을 맡았다. 만우절이 가까워 오자 수업 시간에도 그 쪽으로 화제가 옮겨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전에 있었던 얘기를 해 주며 '절대로 속지 않는다. 날 속이면 학급 전체에게 초코파이를 제공한다'고 까지 공언하였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선생님은 속지 않는다는 것을 다 들어서 알기 때문에 포기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회 시간에도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첫 시간 수업을 들어가자 반장이 일어나서 아이들에 게 전달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조용히 차례를 지키면서 X-ray 검진을 마치고 교실에 와서도 조용히 있어야 해. 옆 반 수업 방해되니까. 양호 선생님 특별 부탁이야. 알았지?"
하고 앉는다. 경례를 마치고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X-ray 검진은 1학년 때 안 해?"
"저희는 작년에 못했어요"
누군가 크게 대답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아이들도 열심히 학습에 임했다. 그런데 15분쯤 지나자 옆 반 반장이 들어오더니,
"선생님 저희반 검진 끝났어요. 6반 애들 빨리 나오래요"
예상했던 일이라, 의심 없이 아이들을 내 보내고 교실에 혼자 남았다.
그런데 잠시 후 일은 벌어졌다. 교실 앞 잔디밭에서 아이들 합창 소리가 들렸다. 수업 중에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우리반 아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손뼉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속았다. 내가 내다보니 잔디밭에 이번에는 50여 명이 손나발을 하고 내게 소리를 지른다.
"속았지? 속았지? 별 수 없이 속았지?"
학교가 온통 소란스럽다. 완패했다. 더 소란을 피우기 전에 항복했다. 그날은 빵값으로 알량한 주머니를 털렸다. 그러나 그런 대로 아이들과 정이 두터워졌다.
그렇게 지낸 1 년 종업식날 아이들은 헤어짐을 섭섭해했다.
만우절은 쓸데없는 서양 풍습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남아 있다. 또한 아이들과 나 사이의 두터운 벽을 허무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선생은 완벽한 인격을 갖추고 물샐틈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가끔씩 보이는 빈틈은 바로 아이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구멍이 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담도 허물어지고, 아이들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1997. 4. 1)
그러니 십 년 넘게 죽 여고생만을 가르쳐 온 나에게는 만우절이 결코 평범한 날만은 아니었다. 나의 거짓말은 이미 구세대이므로 '학교 앞 은행나무에 목련꽃이 하얗게 피었더라.'라든지, '학칙이 변경되어 내년부터 우리 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바뀐다더라.'는 믿지도 않을 거짓말로 아이들에게 바람을 넣는 수준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조직적으로 선생을 골탕 먹이고 즐거워했다. 선생들도 알아도 속고 몰라도 속으며 그날 하루를 아이들에게 즐거운 날로 제공하였다. 아이들의 장난이라는 것은 대개 교실을 바꾸어 수업하러 들어온 선생을 당황케 한다든지, 교실 문을 닫고 있다가 문을 여는 순간에 폭죽을 터뜨려 놀라게 한다든지, 문손잡이에 풀칠을 해 놓아 난처하게 만드는 정도가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에 속아서 당황하고 놀라는 햇병아리를 넘긴 나는, 만우절이 다가오면 어떤 장난에도 속지 않은 예를 들어가며 아이들에게 절대로 안 속는다고 큰소리를 쳐서 아이들을 김빠지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머리를 짜내어 나를 속이려 한다.
3학년 아이들은 만우절을 잊고 산다. 그러면 아침 조회 시간에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가 모의고사에서 10점 이상 올리지 못하면 학부형을 소환한다든지, 복도에다가 전학년 성적을 게시할 방침이라든지 하는 터무니없는 말로 아이들을 속이고 만우절임을 일깨워 그날 하루만이라도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실을 바꾸는 등의 수업 결손을 가져오는 장난을 피해 가며 슬기롭게 선생을 놀리는 장난을 친다. 나도 영광스럽게 그 대상이 되곤 했다.
하루에 세 시간을 계속해서 수업을 해도 재미있는 반이 있었다. 그 반에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난꾸러기 영랑이란 아이가 있었다. 영랑이는 예쁜 얼굴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두꺼비, 공룡, 뱀, 도마뱀 같은 징그러운 플라스틱 장난감을 주머니에 골고루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놀래 주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본래 세상에서 뱀을 가장 싫어하여, 어렸을 때 뱀에게 놀라 며칠 씩 앓아 누웠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 해 만우절날, 아침에 담임 학급에서는 바람을 일으켰으면서도 만우절임을 까맣게 잊고 그 반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 분위기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출석부에 무엇을 끼운 듯, 약간 도도록하게 일어나 있었다.
평소에 선생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초콜릿이나 사탕 꾸러미, 또는 편지를 자주 끼워 놓았었기 때문에 '누구 짓일까?'하는 생각으로 경례를 했다.
그리고 출석부를 펼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펜을 떨어뜨리며 뒤로 물러섰다. 출석부 가운데에 늘어져 있는 것은 초콜릿도 알사탕도 아니었다.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편지는 더욱 아니었다. 한 뼘하고도 반이나 되는 꿈틀거리는 배암이다. 그것은 모조품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배암이다.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색이 바랬으리라.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건 모조품이었다. 그러나 '속았구나'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천하에 어떤 경우에도 속지 않는다고 큰소리 친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졸렬하고 비겁하지만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나는 고개를 떨구면서 비틀비틀 교탁 옆의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안면 근육을 움직이며 손을 내저었다. 앞에 앉은 아이들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물, 무울…….'하고 소리를 내었다. 속으로는 '이놈들아, 이번에는 네 녀석들 차례야' 하면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얘들아, 선생님이 진짜 놀라셨나 봐"
"아냐, 속지마"
"야, 진짜야 물 있니?"
한 녀석이 보온병을 열고 따뜻한 보리차를 가지고 왔다. 나는 입술에 물을 축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연기는 대성공이다. 영랑이와 그 일당은 울먹이면서 등 뒤로 와서 어깨와 팔다리를 주무르고 수선을 피웠다. 10 분쯤 흘렀을까.
"아, 그 놈들 안마 한 번 시원하다."
나는 비겁하게 위기를 모면하고, 아이들은 투덜거리면서 나의 반격을 불평하였으나, 아이들과 정은 더욱 깊어졌다.
이듬해는 1 학년을 맡게 되었다. 처음으로 담임해 보는 1학년이라 기대도 있고 나름대로의 각오도 있어서 아이들과 정은 날마다 새로워졌다. 아침 조회를 자치적으로 한다든지, 모듬일기를 쓰도록 하여 말길을 열어 놓는다든지 하여 아이들과 담을 헐었다.
이 해에도 만우절은 어김없이 왔다. 1학년이니까 '웬만하면 속아 줘야지'하면서도 전 해에 있었던 얘기를 미리 해 주면서 속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첫 시간에 담임 학급인 1반 수업이다. 경례를 마치자 마자
"선생님, 부탁 드릴 게 있어요."
"만우절인데 선생님 속일 생각을 해야지 웬 부탁이야? 다 들어줄게"
"그러면 선생님 고추 따 주세요."
"뭐, 고추를……."
이건 해도 너무 하는구나 생각했다. 절대로 속아 줄 수 없는 문제를 이 아이들이 내고 있지 않은가? 얼굴이 빨개지고 몸둘 바를 몰라야 재미있을 텐데 '어디다가 고추를 숨겨 놓았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칠판 위에 실하게 생긴 풋고추를 하나 숨겨 놓았다.
"고추라, 익은 고추로 할까? 풋고추로 할까? 선생님은 익은 고추밖에 없는데. 너희는 풋고추가 좋겠지? 뭐든 들어준다고 했는데. 오라 풋고추가 여기 있구먼."
"아니, 그거 말고 밑에 있는 걸로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내 내 눈은 교탁 밑을 살피고 있었다. 과연 교탁 아래에 실하게 생긴 풋고추가 하나 더 매달려 있었다.
그 날 점심은 풋고추가 입맛을 돋구었다. 그러나, 내가 속아 주지 못한 걸 속죄하는 뜻에서 점심 시간까지 소문내지 않았다. 그래서 몇 분 젊은 선생님들이 고스란히 당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저희와 공범이라며 공범끼리만의 의리로 더욱 믿음이 두터워졌다.
이태 후 학교를 옮겨 2학년을 맡았는데, 공학이지만 여학생을 맡았다. 만우절이 가까워 오자 수업 시간에도 그 쪽으로 화제가 옮겨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전에 있었던 얘기를 해 주며 '절대로 속지 않는다. 날 속이면 학급 전체에게 초코파이를 제공한다'고 까지 공언하였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선생님은 속지 않는다는 것을 다 들어서 알기 때문에 포기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회 시간에도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첫 시간 수업을 들어가자 반장이 일어나서 아이들에 게 전달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조용히 차례를 지키면서 X-ray 검진을 마치고 교실에 와서도 조용히 있어야 해. 옆 반 수업 방해되니까. 양호 선생님 특별 부탁이야. 알았지?"
하고 앉는다. 경례를 마치고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X-ray 검진은 1학년 때 안 해?"
"저희는 작년에 못했어요"
누군가 크게 대답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아이들도 열심히 학습에 임했다. 그런데 15분쯤 지나자 옆 반 반장이 들어오더니,
"선생님 저희반 검진 끝났어요. 6반 애들 빨리 나오래요"
예상했던 일이라, 의심 없이 아이들을 내 보내고 교실에 혼자 남았다.
그런데 잠시 후 일은 벌어졌다. 교실 앞 잔디밭에서 아이들 합창 소리가 들렸다. 수업 중에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우리반 아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손뼉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속았다. 내가 내다보니 잔디밭에 이번에는 50여 명이 손나발을 하고 내게 소리를 지른다.
"속았지? 속았지? 별 수 없이 속았지?"
학교가 온통 소란스럽다. 완패했다. 더 소란을 피우기 전에 항복했다. 그날은 빵값으로 알량한 주머니를 털렸다. 그러나 그런 대로 아이들과 정이 두터워졌다.
그렇게 지낸 1 년 종업식날 아이들은 헤어짐을 섭섭해했다.
만우절은 쓸데없는 서양 풍습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남아 있다. 또한 아이들과 나 사이의 두터운 벽을 허무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선생은 완벽한 인격을 갖추고 물샐틈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가끔씩 보이는 빈틈은 바로 아이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구멍이 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담도 허물어지고, 아이들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1997. 4. 1)
'느림보 창작 수필 > 서리와 햇살(교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담배 맛 보셨습니까 (0) | 2001.06.01 |
---|---|
1999년 5월 15일 (0) | 2001.05.23 |
준국이와 선주 (0) | 2001.03.03 |
우렁각시 (0) | 2001.02.13 |
의풍 일기 1 (0) | 2000.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