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일요일 도시 탈출. 현대인은 그들이 그리던 문명을 만들어 놓고 이제 거기를 탈출하지 못해 안달이다. 오래 전부터 대야산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3년 전쯤 10월 마지막 날 경상도 가은 쪽에서 한 번 남 따라 올라가 본 일이 있는데, 그날은 산 아래서는 늦가을에 내리는 비가 산 중턱부터 싸락눈이 되더.. 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2000.10.12
모롱이를 도는 노래 소리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아니 어제 밤부터 내렸다. 아랫녘에는 식수까지 걱정하다가 해갈이 되었다고 방송에서도 야단법석이다. 아무튼 시원해서 좋다. 밤이다. 비나리는 밤이다. 결전의 날을 꼭 일주일 앞둔 아이들을 한바퀴 돌아보고 와 빗방울이 듣는 밖을 내다본다. 유리창 턱에 배달도시락 상자가.. 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2000.09.23
의풍 일기 1 1974년 6월 18일 맑음 6월 들어 일기장을 처음 만난다. 시간이 없는 건지 마음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위한 생활은 점점 잃어 가고 있다. 3월에 시작한 야학 때문에 그렇고, 사택에서 시작한 자취 생활 때문에 그렇다. 피로가 쌓여 죽을 지경이다. 밤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침..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0.09.18
의풍일기 2 1976년 8월 26일 흐림 경호가 학교 오자마자 삶은 강냉이를 내놓는다.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따끈따끈하다. "경호야, 아침에 강냉이만 먹었니?" "아니요." 대답은 아니라지만 아닌 것 같지 않았다. 양식을 덜어 보내는 정성이나 들고 오는 순진함에 목이 멘다. 교무실에서 생각 없이 한 자..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0.09.18
곶감 만들기 고향집에는 감나무가 많다. 산줄기가 좌청룡 우백호로 갈라져 감싸안은 골짜기 한가운데 봉긋하게 솟아 오른 명당에 자리잡은 우리 집은 겨울에도 바람이 없다. 집 주변 산기슭, 따뜻한 언덕배기, 울타리 근처는 겨울에 짚으로 싸매지 않아도 감나무가 얼어죽지 않는다. 그래서 집 주변은 온통 감나무 ..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0.09.15
고사(告祀) 벌써 4-5년 전, 그해 우리 열 한 명의 선생들은 정말 진심으로 아이들만을 위해서 뛰었다. 진학지도실은 아이들 불러다 놓고 속태우는 열 한 명 선생들의 고민처럼 항상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모두 새벽 일곱 시면 출근하여 열 한시 넘어 퇴근할 때까지 다른 사사로운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 오후 여섯 ..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0.09.08
담쟁이처럼 아람처럼 아침에 커튼을 열고 매봉산의 소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쌓인 흰 눈을 우리 딸보다 먼저 발견한 것만도 나에겐 작은 기쁨이다. 제 오빠나 엄마 몰래 이 소식을 전해 줄 딸이 있다는 것도 또한 기쁨이고 행복이다. 퇴근길 소주가 약간 취해 현관 앞에서 이웃과 큰소리로 나누는 인사말에도 죽도를 들고 나.. 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2000.09.02
아직도 어설픈 축을 다듬는 마음으로 (소감문) 아직도 어설픈 축을 다듬는 마음으로 오늘, 아내와 사랑하는 딸 기현이와 함께 팔순 아버님을 모시고 나의 초임지 의풍 학교를 돌아보았다. 마음의 고향인 거기는 아직도 내 이마에 때를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취나물, 고사리, 더덕을 챙겨 주는 제자 내외의 마음이 그랬고, 아직도 돌이끼 하나 없이 .. 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2000.09.02
사람 만드는 사람(신인상 수상 작) (이글은 1998년 9월 '축읽는 아이'와 함께 한국 수필가 협회 부회장이신 서정범 선생님께 추천받아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한 귀퉁이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한 글입니다.) 1973년 4월 따스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교사 임용장을 받고 낯선 고장에로의 첫부임길에 나섰다. 원했던 대로 벽지.. 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2000.09.02
축 읽는 아이 (신인상 수상 작) (이 글은 '사람 만드는 사람'과 함께 한국수필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한 귀퉁이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리게한 글입니다.) 나는 참으로 어두운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회는 우리에게 올바른 가치를 일러주지 못하였다. 올바른 삶에 대한 의문은 끝이 없었다. 2학년 때 이른봄으로 기억되는데, .. 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2000.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