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축 읽는 아이 (신인상 수상 작)

느림보 이방주 2000. 9. 2. 19:28
(이 글은 '사람 만드는 사람'과 함께 한국수필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한 귀퉁이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리게한 글입니다.)


나는 참으로 어두운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회는 우리에게 올바른 가치를 일러주지 못하였다. 올바른 삶에 대한 의문은 끝이 없었다.
2학년 때 이른봄으로 기억되는데, 토요일 오후 언제나 마찬가지로 터덜터덜 배티(모충동에서 충북대학 넘어가는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주먹만한 자갈들이 뒹구는 비포장 도로는 가끔 차라도 한 대 지나가면 먼지가 날렸다. 고개를 올라서면 오른쪽에 큰 방죽이 보이고, 방죽 건너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 묘지는 남향이라 봄기운이 완연하고 봉글봉글한 무덤 위에는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장 따뜻한 무덤 위에는 보송보송한 할미꽃이 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데 어디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 하악생, 나조옴 봐요오오……"
둘러보니 묘지에서 흰옷 입은 대여섯 사람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왜 저럴까? 못 본 척하고 가 버려야지'하며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묘지 쪽을 바라보니 손나발을 하고 애타게 나를 부른다. '설마 귀신이 대낮에 나와서 나를 잡아가려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한 번 가 보자.' 나는 둑을 지나 방죽을 건너 공동묘지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들은 책가방을 받고 부축까지 하면서 나를 맞았다. 마치 구원의 신이나 맞이하듯이…….
"학생, 학생 한문을 좀 아는지."
그들은 祝文을 내놓았다. 그 때는 그저 제사의 축문이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것은 題主祝(平土祝)이었다. 나는 대강 그 축문을 훑어보았다. 모르는 글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종가의 막내라 독축 소리는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 또 안 할 말로 한 두 자 잘못 읽는다 해도 그들이 알 턱도 없고.
어른들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모두 내 얼굴로 향했다. 나는 망설였다. 이것이 옳은 일인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나 아닐까? 그러나, 여기 애타게 나를 쳐다보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나마, '배운 사람'이라고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들은 서둘러 준비를 했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축문을 더듬으며 침을 발라 입술을 축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청을 가다듬어 보려고 애썼다. 집에서야 독축이 어디 내 차지가 되기나 했어야 말이지. 드디어 제사는 시작되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목청을 끌어 올렸다.
" 維歲次…… 魂箱猶存 仍舊是依"
처음에는 목이 막히고 떨리더니, 중간쯤 가니 내가 들어도 유창한 독축 소리가 되어 묘지에 울려 퍼졌다. 제사를 마치고 음복주를 한 잔 얻어 목을 축이고, 대단한 사람처럼 배웅을 받으며 묘지를 내려 왔다. 못 마시는 음복주가 다리를 휘청거리게 한다.
잘한 일인가? 잘못을 저지른 일인가? 아버지께서 걱정하지 않으실까?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가 어수선했다. 그러나,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비교적 자세히, 그리고 내가 축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말씀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불호령이 내릴 것만 같아서 숨이 막혔다.
'양반의 자식이, 근본을 모르는 사람 축이나 읽어 주고, 음복술에 얼굴이 벌개서 돌아오다니, 니가 초상집에 개더냐? 못난 사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杞憂였다. 오히려 온화하고 만족스러운 빛을 띄우시면서,
"그래, 뭐 축이 제대로 됐을까?"
"제사 때 어른들이 읽는거 흉내를 냈어요."
"그래 잘했다. 배운 사람이 배운 사람 노릇을 한 번 제대로 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몸달았으면 너를 불렀겠냐? 배운 사람은 그렇게 깜깜한 사람을 훤하게 밝혀 주는 거지. 맞아 빛이 되는 기여"
나는 그 때의 감격과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 '배운 사람의 배운 사람 노릇'을 했다거나 '어둠의 빛'이 어디 내게 해당하기나 한 말씀인가? 그러나 다만 '어둠의 빛'이란 그 말씀 은 방황하던 내게는 생명수와도 같은 말씀이셨다.
선생이 되어 이십 오년을 넘어선 요즈음, 내 서재에서 유리창을 열면 바로 내가 어려서 축을 읽어 주던 그 언덕이 보인다. 지금은 방죽도 없어지고 묘지도 없어져, 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지만, 눈을 감으면 그 때의 그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내가 방황하고 번민하던 때의 생명수가 되었던 '어둠의 빛'이란 말씀에 나는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 내 서재는 아버님이 오셔서 계시지만, 그 때의 일을 기억이나 하실까? 아니면, '이 사람이 어둠이 빛이 되어 가고 있는가'하고 살피실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교직 이십 오년을 돌아본다. 아무튼 그 때의 그 사건과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나의 삶의 길에 한 방향을 정해 주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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