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사람 만드는 사람(신인상 수상 작)

느림보 이방주 2000. 9. 2. 19:33
(이글은 1998년 9월 '축읽는 아이'와 함께 한국 수필가 협회 부회장이신 서정범 선생님께 추천받아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한 귀퉁이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한 글입니다.)


1973년 4월 따스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교사 임용장을 받고 낯선 고장에로의 첫부임길에 나섰다. 원했던 대로 벽지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다. 무인지경 산길을 오르막길 삼십 리 내리막길 십 리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게 비료를 싣고 가는 농협 트럭을 만나 먼지투성이 비료 부대 위에서나마 차를 타고 부임한 최초의 신임 교사가 되었다. 새 양복에 온통 황토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스물 남짓 시골 처녀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태연한 체 했다. 꼬불꼬불 돌고 돌아 고갯마루에 도착한 차가 엔진을 식히는 동안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소백 산맥의 험준한 준령이 장엄하게 뻗어 내리는 그 골짜기 골짜기마다 문명을 외면한 삶이 보일 듯 말 듯 둥지를 치고 있었다. 밤에는 산돼지 떼가 수십 마리 씩 몰려다니며 농작물을 망쳐 놓는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며 멀리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쪽 멀리 낙조가 애처롭다. 마을에 도착한 것은 이른봄의 기다란 해가 어둠을 몰고 온 시간이었다. 밤이 이렇게 깜깜한 것인 가도 처음 알았다. 마중 나온 선생님들의 안내로 정해진 하숙집에 가 누웠다. 한 선생님이 누워서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이 보였다. 누워서 하늘이 보이는 이 집이 앞으로 내가 살 집이다. 이런 산골 아이들에게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오후에는 교무주임 선생님을 따라 마을 유지들에게 인사를 갔다. 생각보다 마을 사람들은 더 순박했고, 초임 교사인 나를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융숭한 대접을 했다. 집에서 손수 만든 두부를 맛보이기도 하고, 토종꿀로 따뜻하게 만든 꿀차를 구경시키고, 강냉이 엿을 녹여 조청 맛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 집을 돌아다니다가 제법 사랑채까지 있는 어느 집에 안내되었다. 사랑에서는 천자문을 합창하여 읽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기척을 하기도 전에 송아지 만한 수캐가 달려 나와 컹컹 짖는다. 안방 문이 열리며 열 아홉이나 스물쯤 되었을 법한 댕기 머리 처녀가 나왔다.
"선생님 오싰는가요. 어무이요, 좀 나와 보래. 선생님이 오싰니더."
얼굴에 홍조를 띠며 충청도 말도 경상도 말도 아닌 사투리로 어머니를 부른다. 시종 처음 보는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스물 두 살인 나도 약간은 두근거렸다. 잠시 후 어머니인 듯한 중년 부인이 나와서 천자문 읽는 소리가 낭낭히 들리는 사랑으로 안내하였다. 손님이 오셨다는 전갈에 글을 읽던 학동들이 윗방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한 백발이 성성한 노인과 마주 섰다. 교무주임 선생님이 나를 소개했다.
"어르신, 학교에 선생님 한 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아주 젊고 실력 있는 선생님이죠"
"아 그러니껴. 이런 고마울 데가. 자 앉으시지요"
하면서 한사코 아랫목을 권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랫목에 엉거주춤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넙죽 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같이 맞절을 하면서
"어르신 왜 이러십니까? 저는 이제 스물을 좀 넘은 병아리인걸요."
"아, 내 자식을 사람 만드시는 선생님이신데 큰 절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지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니껴?"
나는 '쿵' 하고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다. '내 자식을 사람 만드는 사람' 이것이 이제부터 내가 맡아야 할 엄청난 일이구나. 노인의 그 말씀은 대학에서 들은 어느 교수님의 교육학 강의보다도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나의 회의는 끝났다.
잠시후 안에서 강냉이로 빚은 기름이 동동 뜨는 그 지방 말로 엿술을 내왔다. 여름에 잡아 말렸다는 민물고기 '꺽지' 튀김, 산초 기름에 지진 두부 부침, 고사리 나물, 송이버섯, 이런 말로만 듣던 고급 안주와 달큰하고 고소한 강냉이 엿술이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발개지는 나를 더욱 취하게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사람 만드는 사람'을 되뇌면서 휘청거리는 걸음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날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사람 만드는 사람'
그 노인의 말씀대로 내가 진정한 '사람 만드는 사람' 구실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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