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54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 월간 ≪수필과 비평≫을 발행하는 신아출판사를 찾아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출판사처럼 번듯하지도 않았고, 대로변에 아스콘으로 포장된 주차장을 가진 화려한 건물도 아니었다. 큰길에서 좁은 골목을 꼬불꼬불 들어가서야 빛바랜 간판을 만날 수 있었다. 초행인데도 허둥대거나 기웃거리지 않고 단번에 떡하니 그 앞에 차를 댈 수 있었던 것은 예사로운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건물이 사무실이고 어느 건물이 인쇄공장인가 언뜻 알아볼 수 없었다. 가정집과 가건물 같은 건물을 요리조리 붙여서 한 마당 쪽으로 출입구를 내어 쓰고 있었다. 한 마디로 ≪수필과 비평≫이란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외양이었다. 외부 모습에 비해 편집실 내부는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갈색 타일은 반짝..

잊을 수 없는 맛 8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백숙-

잊을 수 없는 맛 8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백숙- 아내와 나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윤군 내외가 권하는 대로 거실에 들어앉았다. 큰절을 절차처럼 공손하게 마친 윤군이 아내 정아와 함께 상을 들여왔다. 엄청나게 큰 토종닭이 옷을 벗고 커다란 양푼에 엎드려 있다. 더덕구이, 고사리무침, 취나물무침, 무청김치 등,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반찬이 상위에 풍성하다. 기름진 냄새가 거실에 가득하다. 웬 백숙이냐고 말을 꺼내려는데 체통 잃은 식욕으로 괸 침이 말을 막는다. 정아가 보통 영계백숙 한 마리 턱은 되는 커다란 다리를 찢어 내게 내밀었다. 맛은 냄새보다 더 진하다. 닭다리 근육살의 쫄깃한 촉감이 따끈하게 혀를 감고 넘어간다. 고사리무침을 한 젓가락 집었다. 취나물무침을 또 한 젓가락 집었다. 무청김..

잊을 수 없는 맛 7 - 성황당 떡 신령 -

잊을 수 없는 맛 7 -성황당 떡 신령- 정월 대보름 전날은 집집마다 고사를 지냈다. 친구와 나는 그때마다 떡 신령이 되었다. 그날도 어머니가 일찍 지어 주신 오곡밥을 먹고, 고사떡이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대문을 빠져 나와 친구를 만났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소쿠리를 하나씩 머리에 쓰고 성황당으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작은 고개를 두 개나 넘어서 후미진 자드락길로 세 번째 고개를 찾아 가야 한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날망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으스스 추위가 몰려온다. 부엉이 우는 곳에는 큰짐승도 따라다닌다는데 낮에는 포근하더니 봄추위가 아직 남았는가? 친구가 그냥 돌아가자고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둘이나 넘었는데 어떻게 포기하고 빈손으로 갈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

잊을 수 없는 맛 6 - 라면 -

학교 앞 분식집에서 노란 알루미늄 냄비에 끓여주는 라면은 그야말로 죽이는 맛이었다. 고들고들한 면발도 그렇고, 겉만 살짝 데쳐진 파란 대파 맛도 그렇고, 하얗게 풀어져 노랗게 익은 계란 맛도 그랬다. 호로록 빨면 목구멍으로 꼬불꼬불 넘어갈듯 한 면발을 넘기는 재미도 그만이었다. 목구멍에 화상이라도 입힐 것 같은 알큰한 국물 맛을 어디다 비기랴. 국물을 들이켜고 노랗게 숙성된 단무지를 아삭아삭 깨무는 맛도 일품이었다. 노랑 냄비에 드문드문 붙어있는 고춧가루 조각까지 다 떼어 먹고도 발길을 돌이킬 때 아쉬웠던 심정은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3학년, 숟가락을 놓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그 시절에 저녁을 굶고 자정 가까이 학교에서 견디는 일은 차라리 형벌이었다. 가물에 콩 나듯이 주머니에 용돈이 집히는 날은 ..

영산포 홍어 정식

영산포 홍어 정식 자유인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영산포에 가자고 했다. 가고 싶었다. 일탈의 소망은 염치도 없이 이 나이에도 절실하다. 아직 젊음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곁길로 발을 내딛기로 하고 영산포 홍어 맛을 꿈꾸며 콧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조용한 영산강 강둑을 거닐었다. 강물은 흐르는지 괴어있는지 하늘처럼 고요하다. '포구' 라면 왁자하고 시끄러운 거래가 있을 법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마른 갈대꽃에 묻어나는 바람만 스산하다. 포구에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등대는 불이 꺼진 채 유적이 되어 흥청거리던 옛날 얘기 한 마디도 없이 조용하다. 우리는 강둑에서 황포 돛대가 있는 나루로 내려갔다. 배는 이미 배가 아니라 요릿집이 되어 있었다. 따사로운 볕도 강바람에 차갑다. 둑을 따라 자전거..

잊을 수 없는 맛 5 - 정방사에서 떡국 공양-

잊을 수 없는 맛 5 - 정방사에서 떡국 공양- 설을 맞은 산사의 햇살이 따스하다. 법당 부처님께 세배를 드리고 청풍호 경관을 조망하는데 공양주보살님이 따라온다. 떡국 공양을 하라는 말씀이다. 믿음이 얇은 나는 기름기 없는 떡국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대뜸 감사히 먹겠다고 했다. 곧 대학을 졸업할 아들과 함께 세 식구는 볕이 고운 마루의 작은 소반에 둘러앉았다. 공양주보살님을 따라간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내왔다. 떡국에는 만두도 쇠고기 꾸미도 계란 지단도 없었다. 가늘고 길게 썬 김과 목이인지 석이인지 고명으로 까맣게 얹히었다. 간장은 노란 골파 양념도 없이 맑은 그대로였다. 찬이라고는 배추김치 한 보시기가 전부였다. 큰댁에서 설날 차례를 올리고 기름진 안주로 음복주까지 했으..

잊을 수 없는 맛 4 - 죽은 닭의 비밀

잊을 수 없는 맛 4 - 죽은 닭의 비밀 - 누나가 부른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지은 죄가 있어 못들은 척하고 숨바꼭질에 열중했다. 아주 꼭꼭 숨어버리고 싶었다. 예쁘던 누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담 너머로 보이는 누나는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으리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쪽문을 겨우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부릅뜬 눈이 두려웠는데 짐짓 그러는 것 같아 보였다.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누나는 노란 냄비를 소반에 받쳐 들고 뒤꼍으로 갔다. 장독대 뒤로 돌아갔다. 누나가 내 앞에 내려놓은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볶음탕이었다. “네가 죽였으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말고 다 치워야 한다. 안 그러면 엄마하고 할머니한테 이 누나까지 혼나니까.” 혼나는 것은 나중에 닥칠 일이고 우선 냄새..

잊을 수 없는 맛 3 - 와석리에서 -

잊을 수 없는 맛 3 -와석리에서- 영호 엄마가 상을 들여왔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에 눈길이 쏠린다. 우리는 교사라는 체면을 잃어버리고 굶주린 짐승이 되어 밥상에 달려들었다. 우거지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민망하다. 깻잎장아찌, 고추장 바른 지고추, 불그레한 총각김치가 간소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꺽지튀김을 발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급수인 의풍천에서 여름에 잡은 꺽지를 맑은 골바람에 말려 두었다가 튀긴 것이다. 그 담백한 맛은 표현할 수 없었다. 참기름 소금을 바르면 소주 안주로 그만인 것을 나만은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대체 몇 시간을 헤맨 것인가? 지난 봄 엄나무삼계탕으로 신세진 삼도봉 약초밭에 소주랑 라면을 짊어지고 눈길을 헤치며 ..

잊을 수 없는 맛 2 - 삼도봉에서-

잊을 수 없는 맛 2 - 삼도봉에서 - 여기는 삼도봉, 드디어 산마루에 올랐다. 충북 영춘, 경북 부석, 강원도 하동(현재는 김삿갓면)이 만나는 꼭짓점이다. 봄 햇살이 따스하지만 바람에는 냉기가 남았다. 강원도 쪽으로는 화전이지만 너른 평원이다. 서너 채 초가가 눈에 띄니 배가 고프다. 평원은 모두 희귀한 약초밭이다. 겨울잠을 자던 약초들이 언 땅을 비집고 막 기지개를 켠다. 붉은색으로 손가락을 내미는 것은 작약이리라. 화전이라도 다듬고 가꾸어 깨끗한 약초밭으로 가꾸었고, 바람막이 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모롱이를 돌아가니 나지막한 초가집 마당에 봄볕이 한창이다. 산지이지만 풍요는 아니라도 평온이 있다. 너른 약초밭 끄트머리에는 아지랑이도 아롱아롱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당에 토실토실 살진 토종닭들이 한가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