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맛 8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백숙-
아내와 나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윤군 내외가 권하는 대로 거실에 들어앉았다. 큰절을 절차처럼 공손하게 마친 윤군이 아내 정아와 함께 상을 들여왔다. 엄청나게 큰 토종닭이 옷을 벗고 커다란 양푼에 엎드려 있다. 더덕구이, 고사리무침, 취나물무침, 무청김치 등,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반찬이 상위에 풍성하다. 기름진 냄새가 거실에 가득하다. 웬 백숙이냐고 말을 꺼내려는데 체통 잃은 식욕으로 괸 침이 말을 막는다.
정아가 보통 영계백숙 한 마리 턱은 되는 커다란 다리를 찢어 내게 내밀었다. 맛은 냄새보다 더 진하다. 닭다리 근육살의 쫄깃한 촉감이 따끈하게 혀를 감고 넘어간다. 고사리무침을 한 젓가락 집었다. 취나물무침을 또 한 젓가락 집었다. 무청김치 국물을 한 숟가락 실하게 떠서 입안에 넣어 본다. 구수할 것은 구수하고 감칠맛 날 것은 감칠맛이 난다. 매울 것은 매콤하고 시원할 것은 입안에 ‘짜르르’ 돈다. 정아는 연신 옆에서 시중을 든다.
윤군과 정아는 70년대 초, 여기 두메 학교 같은 학급에서 동문수학한 나의 귀한 제자이다. 유일하게 졸업한 초등학교 동문인 셈이다. 고개 너머 세상을 모르는 두 사람은 이웃에서 결혼하여 함께 살아 왔다. 열심히 일해서 가난을 벗고 아이 셋을 낳아 대처에 유학을 보냈단다. 부부가 몇 번이나 전화로 다녀가라고 채근했는지 모른다. 신세지는 것이 싫어 사양하고 사양하다가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 모롱이를 돌고 돌아 개울가 산기슭에 있는 윤군의 집에 도착했다. 옛날의 가난을 벗고 번듯한 양옥을 짓고 살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당시는 가난으로 찌든 두메를 시대가 바뀌니 관광지로 변했다. 주민들은 호미를 집어던지고 민박을 하거나 식당을 차려 돈맛을 알았다. 이들 내외는 아직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토종닭은 물론 고사리도 더덕구이도 돈이다. 호사스런 대접에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나는 말을 건네어 보았다.
"닭을 길러 민박하는 이들에게 팔면 돈이 될 텐데"
"돈은 벌지요. 그래도 돈보다 중한 게 스승님이잖아요. 선생님은 저희 부부에게 세상에 살아 계신 유일한 스승인걸요. 어차피 이놈은 죽을 닭이래요. 조금 일찍 죽었을 뿐이지요. 선생님 때문에 죽었으니 도리어 영광인 셈이지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른 봄에 병아리를 내서 한 스무 마리 길러요. 동생이 오면 한 마리 잡아 주고, 친구가 와도 한 마리 잡아 줘요. 그러다가 놀러 온 사람이 한 마리 팔라 해서 팔아 보니 돈이 생기대요. 돈 버는 건 좋은데 그 다음에는 동생이 와서 한 마리 잡아 주는데 그게 돈으로 보이잖아요. 아깝단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했지요. 아차, 이후로는 절대 팔지 말자. 정보다 돈이 중하겠어요?"
멈칫 숟가락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돈은 정보다 중할 수가 없다. 내게 백숙보다 맛있는 건 제자 내외의 깨우침이었다. 허참, 내가 깨우치지 못한 것을 도리어 제자에게 배웠다.
(201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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