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빔밥
월간 ≪수필과 비평≫을 발행하는 신아출판사를 찾아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출판사처럼 번듯하지도 않았고, 대로변에 아스콘으로 포장된 주차장을 가진 화려한 건물도 아니었다. 큰길에서 좁은 골목을 꼬불꼬불 들어가서야 빛바랜 간판을 만날 수 있었다. 초행인데도 허둥대거나 기웃거리지 않고 단번에 떡하니 그 앞에 차를 댈 수 있었던 것은 예사로운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건물이 사무실이고 어느 건물이 인쇄공장인가 언뜻 알아볼 수 없었다. 가정집과 가건물 같은 건물을 요리조리 붙여서 한 마당 쪽으로 출입구를 내어 쓰고 있었다. 한 마디로 ≪수필과 비평≫이란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외양이었다.
외부 모습에 비해 편집실 내부는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갈색 타일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너른 사무실 한편으로 죽 붙여놓은 책상에서 열 명쯤 되는 편집디자이너들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최근 출판된 책들인지 여기저기 쌓여 있어 넘치는 생기를 조용히 웅변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수필집을 출간하기로 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 한 분이 서정환 사장님께 안내해 주었다. 수필문단의 저 윗자리에 있는 분인데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소박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일어서서 맞아 준다. 셔츠 바람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시골 아저씨 같은 분이었다. 차탁 위에 놓인 전병과자나 점잖은 호남 말씨가 두터운 정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분이라 생각하게 했다. 월간 ≪수필과 비평≫ 외에도 ≪소년 문학≫ ≪좋은 수필≫ ≪see≫를 월간으로, 격월간 ≪여행 작가≫ 와 ≪문예연구≫를, ≪계간 문예≫ ≪인간과 문학≫ ≪DAVINCI≫를 계간으로 발간하며, 숨어 있는 좋은 수필가들을 발굴하여 현대수필 100인선을 문고판으로 발간하여 보급하는 이른바 문학과 수필문학의 대중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분이다.
곧이어 한경선 ≪수필과 비평≫ 편집장이 찾아와서 내가 출간하기로 한 수필집 ≪풀등에 뜬 그림자≫의 편집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교정을 해 간 것과 책 모양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표지 디자인 견본을 보면서 편집장님과 사장님의 의견을 들어 조율했다. 두 분과 나는 서로 의견을 존중해서 아주 쉽게 마무리가 잘 되었다.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 같아 사장님의 문학에 대한 꿈을 엿보려는 의도로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명함에 밝혀 놓은 것만 봐도 문학의 대중화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지금 참여하고 있는 청주시 1인1책 강사나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수필문학 창작교실 강좌도 수필문학의 문학성 제고와 대중화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슬쩍 비쳤다. 수필문학에 대한 꿈을 가지고 평론가로서의 공부를 하고 있노라니까 매우 반가워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인연이 되자고 했다. 월간 ≪수필과 비평≫을 통해서 숨어 있는 좋은 작품을 드러내어 널리 알리고, 월간 ≪좋은 수필≫을 통해서 대중에게 수필문학을 전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편집장이 나를 음식문화를 소재로 맛깔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좋은 수필에서 그것을 한번 기획해 보자고 해서 나를 들뜨게 했다. 아울러 ≪창조문학≫에 실린 <수필적 상상으로 형상화한 삶의 근원적 가치>라는 목성균 수필가 작품에 대한 내 평론에 관심을 표했다. 목성균 수필가의 유고집 ≪생명≫도 수필과 비평사에서 출간한 것이고, 그로 인해 그 분의 문학적 가치가 조명된 것이라는 말은 편집장이 했다.
사장님이 이곳에서 출간된 책 몇 권을 선물로 주었다. 내게 필요한 책만을 골라 주어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도심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했다. 회사 이곳저곳을 자상하게 안내 받으면서 마치 내가 일하는 회사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편집장님에게 나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군말을 했다. 그녀는 해를 두고 자주 만난 지인처럼 바로 그러자고 대답해 주었다. 두 분이 모녀지간처럼 수더분하고 따뜻한 정으로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주비빔밥을 대접한다고 하기에 민망하고 받기 거북했지만 도타운 정을 버릴 수 없어 한국집이라는 전주비빔밥집으로 따라갔다. 문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다. 두꺼운 유기그릇에 담아 내온 비빔밥을 보자 바로 침이 괴어 대화를 계속 할 수 없었다. 누구나 먹는 데친 나물을 밥 위에 얹어 유기그릇에 담았고, 나박김치와 콩나물 냉국이 따로 나왔다. 반찬으로는 상추 겉절이, 배추 짠지, 미나리무침, 김무침, 숙주나물무침, 튀김게무침 등이 전부였다.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상이어서 부담되지 않았다.
사장님이 먼저 나무젓가락을 들어 밥을 비볐다. 나도 젓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편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주비빔밥의 예법이 있을지 몰라 기다렸는데 바로 따라 비볐다. 비빔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문학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장이나 함께 간 아내도 가끔씩 사장님과 나 사이의 대화에 참견하면서 비빔밥의 양념 같은 구실을 했다.
비빔밥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기 위해 생겼다고 하고, 민간에서 제의 때처럼 사람이 많이 모일 때 준비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먹었다고도 한다. 내가 여학교에 근무할 때는 체육대회 같은 때 학급 학생 전원이 도시락을 가져와 양푼에 쏟아 넣고 함께 비벼 먹기도 했다. 비빔밥을 먹은 아이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게 되었다. 어떻게 먹든지 비빔밥은 마음이 통하는 대중이 함께 먹을거리를 놓고 차별두지 않는 대중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에는 외국인까지 비빔밥을 좋아해서 한국 음식문화의 세계화에도 한몫을 한다고 들었다.
문학의 대중화는 문학을 대중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문학에 맞추는 것이다. 곧 대중을 문학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문학의 대중화이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맛깔스러운 전주비빔밥만 비빈 것이 아니라 문학의 대중화를 꿈꾸는 마음까지 비비는 기분이었다. 특히 서정환 사장님은 자신의 삶보다 문학을 우선으로 여기면서 외적 화려함보다 내실을 중히 여기고, 형식보다 내용에 마음을 두고, 대중에 대한 사랑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의 ‘대중으로 나아가는 문학’과 대중에게 수필문학을 심어주고자 하는 나의 소망을 함께 비벼 먹었다고 생각하니 가슴까지 훈훈해졌다.
처음이라 용기가 필요했던 전주 방문은 나도 모르게 인연을 따라 끌려간 여행이었다. 그간에 잿밥에 뜻을 둔 문단에 대한 불신을 염불에만 전념해온 그 분의 텁텁한 모습으로 깔끔하게 헹구어낸 기분이었다. 이제 비빔밥처럼 소박하고 고소하면서도 모두가 하나처럼 차별 없는 수필 문학의 대중화에 대한 꿈을 굳게 다져 본다.
(2014.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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