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맛 3 -와석리에서-
영호 엄마가 상을 들여왔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에 눈길이 쏠린다. 우리는 교사라는 체면을 잃어버리고 굶주린 짐승이 되어 밥상에 달려들었다. 우거지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민망하다. 깻잎장아찌, 고추장 바른 지고추, 불그레한 총각김치가 간소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꺽지튀김을 발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급수인 의풍천에서 여름에 잡은 꺽지를 맑은 골바람에 말려 두었다가 튀긴 것이다. 그 담백한 맛은 표현할 수 없었다. 참기름 소금을 바르면 소주 안주로 그만인 것을 나만은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대체 몇 시간을 헤맨 것인가? 지난 봄 엄나무삼계탕으로 신세진 삼도봉 약초밭에 소주랑 라면을 짊어지고 눈길을 헤치며 올라갔다. 주인은 집을 비웠다. 가져간 것들을 들여놓고 와석리 분교장을 지나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걸었다. 지름길이라고 들어선 것이 엄청난 착오였다. 산골에 해가 지자 금방 앞뒤 분간조차 어려워졌다.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춥고 배가 고팠다. 불안했던 70년대, 산골에서는 쉽게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리자 드디어 가물가물 불빛이 보였다.
문이 열린 것은 그냥 돌아서려 할 즈음이었다. 군복 모양인 방한복을 입은 우리에게 쉽게 문을 열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길 잃은 사람인데 요기를 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때 갑자기 6학년 영호가 튀어 나왔다. "선생님요- 어쩐 일이래요." 아, 잘못 왔구나. 학구가 아닌 강원도의 유일한 학부모 집이였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도 없지 않은가? 영호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방에 들어섰다. 온돌이 따끈따끈했다. 종일 눈길을 쑤신 양말에서 땟국이 찌적찌적 나왔다. 발 냄새가 고약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깨끗한 방바닥에 발자국이 선명했다. 그래도 자리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방에서 만난 따뜻한 밥은 어머니의 밥상으로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방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들깻잎장아찌는 깻잎 위에 켜켜이 다진 마늘, 붉은 실고추, 깨소금으로 양념을 하여 밥솥에 슬쩍 쪄내던 어머니의 그 맛이었다. 총각김치는 어금니로 깨물 때마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처럼 맛도 꼭 그런 맛이었다. 가슴 속에는 고향이 가득했다. 가시가 억세기는 했지만 바삭바삭하는 꺽지튀김을 안주로 소주까지 한잔씩 걸치니 낯이 더 두꺼워졌다. 학부모집이라는 것도, 발이 지저분하다는 것도, 지금 모두가 거지꼴이란 것도 다 잊었다. 영호 엄마가 내온 양푼의 모둠밥까지 다 해치웠다. 소주를 한 병 더 요구하는 용기도 생겼다.
추위와 배고픔 끝에 몸이 녹고 배까지 부르자 온몸이 노글노글해지면서 잠이 왔다. 온몸을 깨끗이 씻고 보송보송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방에서 늘어지게 잠이나 잤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영호네 가족의 따뜻한 마음은 밤길 시오리를 따라와 써늘한 자취집까지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지금도 와석리에서 만났던 따뜻한 어머니의 밥상을 잊을 수가 없다.
(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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