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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견의 생각

고려견의 생각 초롱길을 혼자 걷는데 목줄도 없는 개가 나를 보며 ‘앙앙’ 짖어댄다. 달려들 기세이다. 개는 무엇으로 짖을까. 윤동주 시인은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라고 했다. 시인이 자신을 어둠으로 규정한 까닭은 지식인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나도 어둠이라 부끄러워하면서 ‘가자, 가자’ 해야 하나. 어떤 이는 개가 짖는 것은 반가움의 표현이라 한다. 그럼 밝음이다. 개도 두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다. 누구나 어둠과 밝음이 있다. 이빨을 드러내고 앙앙거리는 초롱길의 개는 나에게서 어둠만을 본 것이다. 어둠 뒤의 밝음은 보지 못한 것이다. 청주대학교 박물관 앞에 가면 오래된 개 두 마리를 만난다. 고려견이다. 남석교 양쪽 머리 법수(法首) 상단에 조각되어 서 있었는데 어찌어찌해서 여기..

강현자의 <대문 즘 열어 봐유>

관계에 대한 소망 대문 즘 열어 봐유 강현자 발쌔 가을인게비네유. 시월이 왜 그르키 빨르대유. 고놈의 코로난지 머시깽인지 땜이 정신이 항개두 읎슈. 예전 겉으먼 아이덜 운동히다 뭐다 혀서 동네가 떠들썩했겄구먼 천지사방이 조용허네유. 가을걷이 끝내먼 우리 마을 부녀히서 단풍 구이경두 갔을 틴디 뭐 워쩌겄어유. 집구석이나 틀어백혀 호냐 있이야쥬 머. 아이구, 그라고 보니께 옛날 생각나네유. 우리 동네 종냄이네 뒷집에 대처 사램이 이사를 와가꾸 살었었슈. 그 빨간 벡돌 이층집언 워냥 쥔은 따로 있넌디, 뭔 일인가 젊은 새닥네가 시를 읃어 왔대내뷰. 워째 이런 촌구석이까지 들으왔으까 동네 사램덜언 궁금했지만서두 그맇다구 대놓구 물어볼 수는 읎잖유. 그냥 뭐 속딘 말루다가 워티기 절단나서 왔내비다 하믄서 쉬쉬 했..

임미옥의 <모정의 영역>

일상에서 사랑 찾기 모정의 영토 임미옥 어머니는 해마다 장을 담그셨다. 팔 남매 중 스스로 담가 먹는 큰 시누이를 제외한, 일곱 집이 먹을 양을 담그셨다. 시누이들은 된장을 친정에서 퍼다 먹었다. 오십 줄이 넘도록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 그 일은 이어졌다. 시누이들에게도 각자 시어머니가 계시고 대한민국 어머니들 장 담그는 솜씨는 모두 선수 아니던가. 그런데도 된장만큼은 친정에서 퍼갔다. 몸은 시집갔어도 된장 맛은 두고 갔나 보다. 시누이들은 모였다 흩어질 때가 되면 장독으로 우르르 간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까르르 장독이 들썩인다. 나로선 끼어들 수 없는 그녀들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날 나는 그 세계를 엿보다가 흥미로운 풍경을 관찰하게 됐다. 어머님께 용돈도 넉넉히 드리고 형제자매간에 선물도..

정상동 돌꼬지샘

정상동 돌꼬지샘 샘은 시작이다. 샘은 물길의 시작이다. 바위산 마루에 세운 보리암 절집도 바위틈에 샘이 있다. 신라 혁거세거서간도 나정이라는 샘 곁에서 알로 태어났다. 역사도 샘으로부터 발원한다. 땀은 땀샘에서 나오고 눈물은 눈물샘에서 나온다. 샘은 가치와 진실의 시작이기도 하다. 인류는 자궁샘에서 탄생한다. 샘은 생명의 근원이고 문명의 시작이다. 금강처럼 큰물도 샘으로부터 시작한다. 금강을 거슬러 미호강으로 무심천으로 오르며 원류를 찾는다. 미호강과 무심천 합류 지점인 까치내로 흘러드는 지류 정상천이 있다. 정상천은 정상동 소류지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 지점에 돌꼬지샘이 있다. 그래서 정상천 발원지를 돌꼬지샘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상동 돌꼬지샘을 찾아갔다. 청주 북쪽으로 시가지를 성벽처럼 감싸고 있는 ..

따비

따비 엇, 저게 뭐지? 아 따비구나. 저게 바로 따비야. 한국민속촌에서 오래된 농기구를 발견했다. 문우들과 이야기에 빠져서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따비를 처음 본 것은 거의 50년 전 벽지학교에 부임했을 때이다. 화전민 학부모 집에 올챙이묵을 얻어먹으러 갔는데 헛간에 따비가 있었다. 밭을 가는 농기구 같은데 삽도 아니고 쟁기나 극젱이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이 따비라는 것을 학부모에게 물어서 알았다. 전에는 ‘따비’ ‘따비밭’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농기구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다. 어른들은 산비얄을 일구어 고구마나 조를 심어 먹는 밭을 따비밭이라 했다.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던 1960년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언 땅이 풀리기 시작하는 2월이면 산비얄을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 그 밭을 따비밭이라 했다. 해..

충북여성문인협회 축사

충북여성문학 26집 출판 기념 및 올해의 여성문학상 시상식 축사 2022년 12월 14일 오후 4시 청주 예술의 전당 대회의실 수상자 : 김숙영 수필가 금남의 행사인 여성문인협회 큰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동 청주여자고등학교 앞을 지나노라면 큰 키로도 들여다 볼 수 없었던 높은 담이 원망스러웠는데 30대 중반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신비롭던 아이들에게 문학과 국어를 가르치고 대학을 보내고 했을 때처럼 비슷하게 황홀합니다. 오늘 올해의 여성문학상을 수상하시는 김숙영 선생님은 제가 교육대학 1학년일 때 2학년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김종서선생님께 영어를 배웠는데 머리 긴 김종서 선생님이 선배 중에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그 분이 김종서 선생님 따님인 김숙영 선생님이..

후학양성‧문학평론지 출간…화려한 인생2막 ‘눈길’ (청주문화 원고)

후학양성‧문학평론지 출간…화려한 인생2막 ‘눈길’ 이방주 수필가 청주문화 원고 충청투데이 김진로 부국장 인터뷰 퇴직 후 인생 2막이 더 주목받는 이가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이방주(71) 수필가다. 그는 고희의 나이에 문학평론집을 출간하고, 수필창작 교실을 열어 후학 양성에도 앞장서는 등 현역시절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신곡문학상 대상과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쓰고, 문단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작가이지만 지난해 받은 신곡문학상은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지난해 26회를 맞은 신곡문학상은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며 동화작가로 활동했던 신곡 라대곤 선생이 제정한 문학상으로 ‘수필과 비평사’를 대표하는 권위 있..

19. 송옥근의 < 귀가> 수필과비평 2022.11월호

송옥근 - 사랑으로 깨닫는 존재의 소중함 이방주 수필은 수행과 치유의 문학이다. 삶의 고통을 치유하면서 성장과 변환을 추구한다. 작가는 창작과정을 통해 삶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독자는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동안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수행으로 인식한다. 송옥근의 를 당선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수필이 수행과 치유의 문학이라는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주변의 사랑을 받으며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 결과 몸은 아픔으로 고통 받지만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이것은 삶의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과정의 체험을 소환하여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동양 철학에서는 사랑을 ‘어짊[仁]’으로 인식한다. 어짊이란 관계를 전제로 한 사랑이다. 작가의 체험에서 ‘간병인-재활병원 의사-남편’으..

나의 소주 반세기

나의 소주 반세기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나의 소주는 딱 한 잔이다. 반백년 소주 배움이 돌고 돌아 겨우 한 잔으로 돌아왔다. 고희를 맞은 내 삶의 영역은 딱 소주 한 잔으로 이룬 나비물만큼밖에 안될 것 같아 마음 아프다. 한 잔을 놓고 잘라 마시고 또 잘라 마신다. 씁쓸하다. 소주 입문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망의 고3이 될 열아홉 살 2월이다. 학교는 2월이 헐렁하지만, 흔들리는 가슴은 가눌 길이 없었다. 학교길 고갯마루에 구멍가게를 겸한 주막이 있었다. 겨울도 봄도 아닌 나른한 오후 하굣길, 주머니를 뒤져 소주 한 병을 샀다. 병뚜껑을 이빨로 물어 열었다. 한 모금 ‘쭈욱’ 빨아보았다. 목구멍에 ‘캭’ 불이 붙는다. 씁쓸하다. 씁쓸하더니 달달하다. 화끈하게 남은 맛은 가슴 가득한 바로 그..

팔봉산이 낳은 예술 혼, 형제의 생애와 아픔 -김복진, 김기진의 가지 않은 길

청주의 리더스피릿김복진 김기진 가지 않은 길 팔봉산이 낳은 예술 혼, 형제의 생애와 아픔 이방주(수필가, 문학평론가)정관 김복진   팔봉 김기진 선생 생가팔봉리를 찾아간다.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는 팔봉산 서쪽 기슭에 다소곳하게 들어앉았다. 여덟 봉우리가 좌청룡 우백호 혈맥을 이루어 듬직한 어깨처럼 마을을 감싸 안았다. 한가위 연휴로 마을은 한가하다. 고샅마다 백일홍, 코스모스가 피어 찾아오는 사람들도 고향이 된다. 팔봉리는 내 고향 죽림동에서 한 고개 너머 이웃마을이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연배인 팔봉리 사람들은 내가 졸업한 남이초등학교 동문이다. 팔봉리는 고향 마을이고 김복진, 김기진 형제는 나의 고향 선배 예술인이다. 정관 김복진(井觀 金復鎭1901~1940), 팔봉 김기진(八峰 金基鎭190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