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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송옥근의 < 귀가> 수필과비평 2022.11월호

느림보 이방주 2022. 10. 19. 22:19

<심사평>

송옥근 - <귀가>

 

사랑으로 깨닫는 존재의 소중함

이방주

수필은 수행과 치유의 문학이다. 삶의 고통을 치유하면서 성장과 변환을 추구한다. 작가는 창작과정을 통해 삶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독자는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동안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수행으로 인식한다.

송옥근의 <귀가>를 당선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수필이 수행과 치유의 문학이라는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주변의 사랑을 받으며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 결과 몸은 아픔으로 고통 받지만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이것은 삶의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과정의 체험을 소환하여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동양 철학에서는 사랑을 ‘어짊[仁]’으로 인식한다. 어짊이란 관계를 전제로 한 사랑이다. 작가의 체험에서 ‘간병인-재활병원 의사-남편’으로 대신하는 세계의 사랑에 감동하면서 아픔의 시간을 자신이 더 단단해지는 삶의 과정으로 인식한다. 세계와 자아와의 관계를 전제로 한 사랑으로 자기 존재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소소한 일상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철학적으로 개념화하였고, 치유라는 수필의 문학적 효과를 구현해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좋은 작품을 창작하여 세상을 밝히는 수필가가 되기를 바란다.

 

 

<당선 소감>

 

가을 깊은 날에 그네에 앉아봅니다

송옥근

 

산책로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햇살 위를 거닐고 있습니다. 텅 빈 그네는 자기의 무게만큼 흔들리다 멈추겠지요.

수필이라는 친구가 곁으로 왔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서로가 낯설고 수줍어했던 시간들이 스쳐갑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이 내일이 되는 일상 속에서 글쓰기는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해주었습니다.

“수필 창작은 수행의 길”이라는 이방주 선생님의 말씀, 늘 마음속에 간직하며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산책로에 나가 비둘기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비둘기가 전하는 말을 듣겠습니다. 그네에 앉아 살짝 흔들려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가을이 촘촘히 내려앉습니다.

 

약력

청주대학교 법학과 졸업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증평군청 근무, 지방서기관 명예퇴직

무심수필문학회 회원

제 16회 시인이 되다 빛창공모전 수상(2019), 지하철문학상(1919)

이메일 rabit65@naver.com

 

귀가

송옥근

곳곳에 전해오는 꽃소식에 옷을 갖춰 입었다. 그와 대청호오백리길을 걷기 위해서다. 봄바람을 타고 입술을 내밀 연둣빛 얼굴이 환하게 다가온다.

2016년 가을 어느 날, 야근할 때였다. 갑자기 어지럽고 말이 어눌해지며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는 느낌이 왔다. 간신히 집까지 도착하였으나 구역질이 나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놀란 남편이 급히 119에 연락하여 충북대병원 응급실로 싣고 갔다.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심부 뇌내출혈로 판정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때 간병인 한분을 만났다. 참 따뜻한 분이었다.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나에게 손과 발이 되어 정성스럽게 돌봐주었다. 재활치료를 받는 한 달 동안 간병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분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세계를 본 것이다.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대신하는 일은 육체노동일 뿐만 아니라 어려운 감정노동이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든 일이다. 입원실의 좁은 공간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이야기하면서 정이 들었다. 간병인은 내가 본 가장 고된 직업이었다. 그렇지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말벗이 되어주는 그녀의 정성은 포근했다. 환자와 마음을 함께하는 감정노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내게 일깨워 주었다.

결핵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부모님을 돌보다가 오히려 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다. 나는 나보다 병마와 싸우는 부모님이 더 염려스러웠다. 부득이 언니에게 부모님을 부탁하였다. 힘든 순간에도 빨리 퇴원하여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힘든 재활치료로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육거리시장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사 왔다. 내가 좋아하는 순대도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허겁지겁 순대를 먹었는데 열이 나며 통증이 밀려왔다. 급체라는 진단이 나왔다.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급하게 먹은 게 탈이 난 것이다. 의사가 링거와 약을 긴급 처방하였으나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온몸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에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통증이 너무 심해 삶을 내려놓고 싶었으나 남편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상을 지켜주었다. 그의 간절한 보살핌으로 조금씩 안정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자리 잡았다.

다음날 간과 신장에 대한 초음파 정밀검사를 했다. 그 결과 간 기능 수치는 높았고 담낭에 혹이 있어 담낭암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밖의 소견에 할 말을 잃었다.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쓸개 제거 수술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 달 만에 건강이 조금 좋아져 재활병원으로 향했다.

재활병원 선생님들은 환자들에게 친절했다. 도수치료와 재활치료로 신체기능을 회복시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애로사항도 해결해 주고 용기도 심어주었다. 재활운동으로 담즙에 혹이 녹아내려 수술하지 않고 직장에 돌아갈 수 있었다. 선생님 중 한 분은 고생했다고 생일 축하 케이크를 선물하여 감동을 주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격려해 준 가족과 모든 분에게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한때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희망을 잃고 귀한 몸을 포기하려고 했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밤새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고민해 봐도 답은 없었고 늘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공평하지 못한 운명에 흔들리면서 도저히 살아갈 존재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념과 신뢰로 지켜온 모든 것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봄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남편과 자주 여행을 한다. 남편은 상처를 입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수많은 화려한 꽃 중에 도도하게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들꽃에게 말을 건다.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실바람에도 흔들린다. 저 여린 생명도 아픔을 딛고 꽃을 피웠으리라. 누군가의 바람과 사랑으로 활짝 피었을 것이다. 아프고 나니 이제 알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명의 가치와 자연의 풍요를 함부로 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꽃처럼 향기 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간병인의 따스한 손길, 재활병원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 다정한 남편의 숨결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단비 같은 사랑 덕분이다. 작은 일상에서 큰 축복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다.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한 기쁨으로 사소한 것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는다. 힘든 삶이지만 따스한 볕이 되는 분들이 있어 내 마음도 봄이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서야 잘 부푼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삶인지 알게 되었다.

아픔의 시간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한다. 내 곁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있어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게 되었다. 가출했다 돌아온 몸이 고맙다. 나도 선물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