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동 돌꼬지샘
샘은 시작이다. 샘은 물길의 시작이다. 바위산 마루에 세운 보리암 절집도 바위틈에 샘이 있다. 신라 혁거세거서간도 나정이라는 샘 곁에서 알로 태어났다. 역사도 샘으로부터 발원한다. 땀은 땀샘에서 나오고 눈물은 눈물샘에서 나온다. 샘은 가치와 진실의 시작이기도 하다. 인류는 자궁샘에서 탄생한다. 샘은 생명의 근원이고 문명의 시작이다.
금강처럼 큰물도 샘으로부터 시작한다. 금강을 거슬러 미호강으로 무심천으로 오르며 원류를 찾는다. 미호강과 무심천 합류 지점인 까치내로 흘러드는 지류 정상천이 있다. 정상천은 정상동 소류지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 지점에 돌꼬지샘이 있다. 그래서 정상천 발원지를 돌꼬지샘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상동 돌꼬지샘을 찾아갔다. 청주 북쪽으로 시가지를 성벽처럼 감싸고 있는 발산의 나지막한 용틀임을 넘어가면 거기에 정상동이 있다. 정상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이 석화(石花)이다. 사실은 ‘돌꼬지’라는 지명이 먼저였겠지만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돌꽃’이라 생각해서 석화라고 표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큰샘’이 있다. 사람들은 돌꼬지샘이라 한다.
돌꼬지샘을 중심으로 서울 방향은 정상동, 청주 방향은 정하동, 북쪽은 정북동이다. 샘을 중심으로 세 개의 행정동 이름이 정해진 것으로 보면 큰샘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냥 식수를 제공하는 기능을 넘어서 인근 마을의 문화적 중심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돌꼬지샘은 마을 한가운데 있었다. 상수도만 사용하여 물이 흐리고 폐허가 되었을 것이란 지레짐작은 기우였다. 주변은 깔끔하고 물은 맑고 투명하다. 샘물은 퍼낼수록 깨끗해지는 법인데 사용한 흔적이 없는데도 깨끗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샘에 인줄을 치고 소지를 걸었다. 최근에 용천제(龍泉祭)를 지낸 자취이다. 머지않은 곳에 정자도 있다. 샘은 여인네들의 공간이고 정자는 남정네들의 공간이다. 샘은 시작이라는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마을은 고요하다. 넓지 않은 마을 고샅이 깔끔하다. 집들은 옛 마을의 때를 벗었다. 양옥에 철대문을 달았다. 담장에는 덩굴장미가 피고 대문간에는 능소화가 늘어졌다. 컹컹 짖어대는 개들도 윤기가 흐른다. 빈터에는 승용차가 몇 대씩 번쩍거린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 심의로 하나 되어 오랜 세월 관습으로 이어온 사람살이가 꾀를 벗고 살을 입혀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했을 것이다. 돌꼬지샘물을 먹던 문화가 시들하고 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고샅을 걸으며 영양가 없는 걱정을 한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용천제를 아직도 지내고 묵은 샘물을 퍼내고 새물을 받으려는 마을 사람들의 심사가 남아 있지 않은가. 마을에는 아직도 큰샘이 민중의 마음기둥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샘은 시작이다. 물길의 시작일 뿐 아니라 마음의 시작이고 기둥이다. 샘물은 물길을 만들고 사람들은 물길을 따라 마음을 세상에 내보낸다. 그것이 바로 문명이고 문화이다. 돌꼬지샘이 정상천에 흘려보낸 물은 무심천에서 7개 지류와 만나 미호강으로 금강을 지난다. 금강물은 청주 사람들의 심의를 담아 흐르다 백제의 얼도 담고 민중의 울분도 실어 서해로 간다. 태평양 너른 바닷물도 돌꼬지샘에서 발원한다. 작은 샘물 한 줄기가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결국 하나가 된다. 샘은 물길의 시작이고 생명의 시작이며 하나됨의 시작이다. 돌꼬지샘물은 작지만 그 가르침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
(2023.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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