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98

생태문명과 원형原型문학 - 『한국수필』 3월호를 읽고-

생태문명과 원형原型문학 - 『한국수필』 3월호를 읽고- 이방주 21세기를 지배하는 화두는 생태문명이어야 한다. 우리 인류는 지난 수세기 동안 산업과 물질문명에 기대어 풍요를 누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인류가 잊고 있었던 것은 그러한 풍요가 자신의 삶의 터전인 생태계를 끊임없이 파고 헤치고 할퀴면서 누리는 폭력적 문명이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인류의 삶에 큰 재앙이 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예를 들면 14세기 유럽의 인구를 3분의 1이나 감소시켰던 페스트의 대유행을 들 수 있다. 이후 유럽 인구를 13세기 수준으로 회복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 가능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페스트로 사망했는지 알만하다. 20세기 들어 지구온난화로 페스트에 못지않은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점도 우리는 그냥 넘어갈 일..

관계의 지혜를 통하여 존재 방식을 발견함 -최종<온종일 비> 서평

관계의 지혜를 통하여 존재 방식을 발견함 최 종, 《온종일 비》 (문예바다 2020) 1 문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호소하고 해결하는 지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미적 울림을 주는 언어예술이다. 문제 해결의 지혜는 진실에 가치를 두는 삶의 진리를 말한다. 곧 문학은 인간의 삶과 존재방식에 대한 진실성을 추구하는데 목적을 둔다고 말할 수 있다. 문학 애호가들은 그렇게 찾아낸 진리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수필문학은 진리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체험의 기록이며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최종 수필가는 1941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서 2020년 팔순에 수필집 《온종일 비》를 상재했다. 이미 2018년에 수필집 《깨갱》을 출간한 바도 있다. 법원 ..

상생相生의 변증법 -『한국수필』 2월호를 읽고 -

한국수필 2월호 월평 상생(相生)의 변증법 -『한국수필』 2월호를 읽고 - 문학 작품이 독자를 붙잡는 것은 미적 울림이다. 문학 작품은 인지적 정의적 심미적인 요소들에 의해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을 미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작가의 상상력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 마디로 문학의 예술적 울림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필도 문학이므로 상상에 의한 형상이 있어야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고 작품에 붙잡아 둘 수 있다. 수필은 체험과 사실의 문학이라 해서 마치 상상은 필요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상과 허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되는 오해이다. 문학은 상상에 의해 태어나고 수필도 분명히 문학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허구를 수용할 수 없지만 상상은 반드시 필..

‘관계’의 해석으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적 속삭임

‘관계’의 해석으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적 속삭임 - 『한국수필』 1월호를 읽고 - 이방주 수필가는 창작에 앞서 수필문학의 개념을 분명히 규정하여야 한다. 수필의 범위를 정하고 타문학 양식과 다른 특성을 알고 수필을 써야 ‘넋두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있다. 허구적 양식인 시나 소설과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야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나 구성도 달라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와 수필은 태생부터 다르다. 시가 태초에 인류가 신에게 드리는 소망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면, 수필은 현대를 사는 철학적 인간이 이웃에게 들려주는 치유의 속삭임이다. 그래서 시는 일방적이고 수필은 쌍방 간에 소통하는 목소리여야 한다. 시인은 평범한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대신 기도하는 사제司祭라 한다면 수필가는 이웃과 아..

무심無心 앤솔러지Anthology (무심수필 3호 작품 해설)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휴머니티의 속삭임 - 무심無心 앤솔러지Anthology - 이방주(수필가 문학평론가) 무심 앤솔러지가 지향하는 가치 《무심수필》 3호 발간을 축하한다. 2018년 8월 24일 16명으로 출발한 무심수필문학회는 22명의 단단하고 열정적인 회원으로 정착하여 《무심수필》 3호를 내기에 이르렀다. 창간호에는 14명 회원이 35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었다. 작고 수필가로 우리 고장 목성균수필가의 작품을 실은 뜻은 우리가 지향하는 수필 세계를 어렴풋이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초대 수필로 충북의 대표 수필가인 반숙자, 박영자 수필가의 작품을 실었다. 《무심수필》 2호에는 18명 회원의 작품 36편과 회원 5명의 등단 작품과 심사평, 수상소감을 실어 동인지를 더 든든하게 했다. 초대 수..

일상에서 삭이고 우려낸 삶의 원형성 - 김윤희의 <어머니의 길>-

제 27회 충북수필문학상 심사평 어머니의 길 김윤희 ‘가 봐야지, 가서 꼭 한 번 만나봐야지’ 오래전부터 그리던 곳을 향하고 있다. 차창에 눈을 매단 채 앉아 있어도 마음은 몇 시간째 서성거린다. 드디어, 율포 앞 바다 새벽안개에 머리를 감고 가지런히 참빗질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산기슭 구릉 따라 푸르게 일렁이며 가슴을 열고 다가오는 봇재다. 더러 소릿재로 불리기도 하는 이 고개를 중심으로 한쪽은 판소리 서편제가 터를 내린 곳이고 또 다른 쪽은 보성 남쪽 끝 바닷가 마을을 끌어안고 있는 녹차 재배지이다. 해안을 굽어보는 활성산의 봇재가 바다의 물결마냥 남실남실 굽이치고 있다. 율포 앞 바다와 산 구릉이 밤마다 무시로 은밀히 마음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 닮아가면서 만들어냈을 이 초록 물결에 나의 달뜬 마..

하동포구에 떠오른 무지개, 그 실존의 흔적 -김규련 작품론-

김규련 작품론 하동포구에 떠오른 무지개, 그 실존의 흔적 이방주 □ 적막한 우수 빛깔의 무상無常 수필가 김규련(1929~2015)은 자신의 수필을 ‘적막한 우수 빛깔의 무상無常’이라고 했다. 무상은 허무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함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무상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나고 변하고 없어지고 또다시 나는 것이어서 그대로인 것이 없는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김규련의 수필에는 무상한 인생의 끊임없는 순환이 녹아 있다. 소목素木 김규련은 1968년 《수필문학》에 작품 〈강마을〉을 발표하여 등단한 이래 2015년 6월 별세할 때까지 《강마을 1977》 《거룩한 본능 1979》 《종교보다도 거룩하고 예술보다도 아름다운 1985》 《素木의 횡설수설 1989》 《높고 낮은 목소리 1992》 《귀로의 ..

로고스와 파토스의 미학 - 이방주의 <보리누름에>

로고스와 파토스의 미학 허상문 들어가며 과학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적 삶에서는 갈수록 이성과 지성의 논리가 삶의 중요한 태도로 여겨진다.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준 편리와 안락에 깊이 침윤되어 사람들은 점차 정심세계의 중요성에는 관심이 사라져 가는 듯하다. 기술과 자본의 힘에 의존하다 보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는 거듭된 불화와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라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창궐하고 있는 것도 인간과 다른 생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생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간다운 삶은 타자(세상)를 위한 공감과 희생을 가능케 하는 사랑의 감정으로부터 성숙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고하고 그러한 정신적 가치가 점차 소멸해 간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심미적 삶..

자연에서 이룬 존재의 정원

강흥구 수필가의 수필집 《산밭에 핀 도라지꽃》 자연에서 이룬 존재의 정원 이방주 (수필가, 문학평론가) □ 들어가기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세계에 존재한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소크라테스 이전에 엘레야 학파를 세운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0년경~450년경)는 존재는 모든 것이 가진 속성일 수도 있고 물리 세계 너머에 또는 그 위나 뒤에 있는 대상이나 영역일 수도 있다고 했다. 불가(佛家)에서 존재(存在)는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채운 현상들을 두루 일컫는다. 보통 그 현상들이 물리적인 인과 관계를 가질 때 ‘존재한다’라고 인식된다. 그리고 그 존재의 실체는 오감에 의해서 알아낸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

한국수필 심포지엄 유감 - 오양호교수의 발제와 이방주의 질의에 대하여

2020.6.23. 대구;아젤리아호텔. 창간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발제 논문 한국수필의 현황과 전망 오양호(인천대학교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2019년 12월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문인은 14,641명이고 그 가운데 수필분과에 가입된 수필가는 3,634명이다. 이 숫자는 시 장르 7,833명 다음으로 많다. 그리고 수필전문 잡지는 약 30여종 쯤 되는 듯하다. 이런 잡지에는 아직 한국수필가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수필가도 수두룩하다. 이렇게 계산하면 한국의 수필가 수는 어림잡아 5천명은 될 것이다. 한국수필가협회나 한국문협 수필분과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아도 수필을 쓰고, 수필집을 출판하는 사람은 다 수필가인 까닭이다. 이런 현상을 좋게 말하면 수필장르가 아주 활성화되어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