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 4

미술관으로 모신 장독

미술관으로 모신 장독 아내가 장독을 내놓았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는데 베란다가 비좁아 이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내는 장독을 계속 닦고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한다. 어떻게 버려야 하나. 대형폐기물로 신고하고 벼려야 하나. 그냥 부숴서 쓰레기봉투에 담아야 하나. 혹시 분리수거장에 갖다 놓으면 누가 가져다 쓸까. 생각이 많아 보인다. 어떻게 버리든지 ‘버림’인 것이다.신혼살림을 시작할 때였다. 마흔 둘에 낳은 막내아들이 살림을 시작하자 어머니는 홀가분해하시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우리 아파트에 오시면 예쁜 단지를 사오셨다. 살림을 장만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장독이 하나 둘 늘어났다. 좁은 열세 평짜리 아파트 베란다에 장독이 서너 개나 들어앉았다. 부자가 된 듯했다.이른 봄이 되면 잘 띄운 메주를 가지고 ..

어떤 회개

나는 전과자였다. 전과자는 회개해야 한다. 사전은 ‘회개’란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여 죄인임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뜻을 세워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일을 이른다.’라고 설명한다. 회개는 죄인임을 반성하고, 과오를 벗어야 한다. 회개의 첫 단계는 반성이고, 다음 뜻을 세우는 것이고,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실천이 곧 회개이다. 여자의 싹을 몰라서초등학교 교사 10년 만에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었다. 야간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비록 시골이지만 당시 국립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출신들만 갈 수 있는 공립학교 국어교사로 전직(轉職)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듬해 이웃 여자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큰언니 쯤 되는 처자들의 담임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모두..

삶의 세계에서 신성성(神聖性)을 회복하는 수필

《한국수필》 2025년 11월호 권두칼럼 삶의 세계에서 신성성(神聖性)을 회복하는 수필 이방주(부이사장) 왜 문학을 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수필을 쓰는가.얼른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얼른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지향하는 세계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존재의 비극이다. 우리는 우리 존재가 비극을 맞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아름다운 산을 잃어버리고는 부동산을 잃었다고 탄식하고, 맑은 물을 잃어버리고는 수자원을 잃었다고 가슴을 친다. 그러나 정작 사랑하는 마음, 신성함을 보는 눈을 잃어버린 것은 깨닫지 못한 채, 개나 닭이 집을 나간 것을 더 애태운다.“신은 죽었다.”프리드리..

느림보와 수필미학

느림보와 수필미학 2019년 늦가을이었다. 별로 늦지 않은 저녁시간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지만 받았다.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경상도 말투였지만 억양이 억세지는 않았다. “저는 계간 수필미학 주간입니다. 이방주 선생님 맞으십니까?”“예 제가 이방주입니다.”대답을 해놓고 계속 처음 들어보는 ‘수필미학’이 생각을 가로막았다. 조금이라도 아는 체 해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한국수필》이나 《수필과비평》을 통해서 수필교실 문우들이 등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촌사람임을 실감했다. 수필미학에서 작고(作故) 수필가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해서 첫 번째로 목성균 수필가에 대하여 원고를 마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검색 과정에서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