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이번 여행에도 아내는 고추장만은 꼭 챙기리라 벼르고 있다.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고추장을 꼭 챙긴다. 특히 중국여행을 가는 사람의 배낭에는 대개 고추장이 들어 있다. 느끼한 중국 음식은 칼칼한 맛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추장은 현지 식탁에서 인기가 높다. 외국여행이 아니라도 우리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고추장이다. 그래서 한국의 여인들은 고추장 담그기에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장맛을 보면 그 집안 분위기를 알 수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몇 해 전, 첫 근친을 다녀온 며느리가 이바지 음식과 함께 항아리 두 개를 내놓았다. 하나는 된장 항아리이고 다른 하나는 고추장 항아리이다. 아내가 고추장 항아리를 열었다. 형광등 불빛에 고추장 빛깔이 잘 익은 앵두알처럼 곱다. 붉은 듯 검기도 하고, 검은 듯 붉기도 하다. 표현할 수조차 없는 향기가 방안에 가득 퍼진다. 아내가 젓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어준다. 혀 밑바닥까지 감응하는 매콤하고 달달한 맛이 황홀하다. 마음까지 평온해진다. 푸르고 맑은 옥천의 하늘빛과 싱그러운 산야가 눈앞에 선하다. 화목한 마을 인심까지 항아리에 쓸어 담아 온 듯하다.
상견례를 하고 혼례식이 있기까지 짧은 기간에 양가의 어머니들이 옥천에서 만났다. 두 어머니들이 만나 밥만 먹은 것이 아니라, 사부인의 성화로 사돈댁에까지 다녀왔다. 그때도 고추장을 얻어 왔다. 아마도 도시에 사는 여자들은 장 담그는 법을 모르는 것으로 생각하셨나 보다. 아니면 ‘나는 딸을 이런 맛으로 키웠소.’라는 자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우리도 고추장 된장을 담가 먹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주는 대로 넙죽 받아온 것이다. 정갈한 장독대가 욕심났을 것이다. 티끌하나 없는 햇살을 받은 사무치게 고운 고추장 빛깔이나 정성이 탐이 났을 것이다.
웬만한 정성으로는 이렇게 빛깔 곱고 향기로운 고추장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우선 고추가 좋아야 한다. 고추는 알맞게 붉었을 때 조심스럽게 따야 한다. 고추를 딸 때 꼭지가 떨어져도 안 되고, 지나치게 거칠게 힘을 줘서 무르게 해도 안 된다. 태양초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순수한 한여름 땡볕만 쪼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잠깐 딴전을 부리면 소나기를 맞히고 해찰을 떨면 곯아서 희아리가 된다. 그러면 검붉은 고추장 색깔을 내기 어렵다. 메주도 깨끗하게 띄워야 고추장에서 애먼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잘 기른 엿기름으로 찹쌀밥을 삭혀야 깐작깐작한 질감이 남는다. 밥을 삭힐 때 그야말로 지어지선止於至善해야 시큼한 맛을 피할 수 있다. 천일염으로 간을 잘 맞추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모두가 최선에 머물러야 조화를 이루어 제맛을 내게 된다. 어느 하나라도 미흡하거나 지나치면 맛을 버리게 된다. 모두가 한국 여인의 섬세한 손끝에서 나오는 맛이다. 문자 그대로 한국 여인의 손맛이다.
우리 내외는 아내가 담근 고추장을 밀어놓고 사부인께서 보내주신 고추장을 상에 올린다. 아내의 고추장도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따를 수가 있겠는가? 분꽃이 피는 시간에 보리쌀 안쳐 밥을 짓고, 장독대에 맨드라미랑 봉숭아꽃을 피워 정갈한 볕만으로 숙성시킨 태양초 고추장 맛을 어떻게 따르겠는가? 고추장 맛을 볼 때마다 며느리와 마주 앉은 착각에 빠진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시골의 맑은 햇살이 입안에 가득하다. 그때마다 향수의 고향 옥천 실개천 물바람이 불어온다. 싱그러운 산야의 향기가 돈다. 얼룩배기 황소의 게으른 울음이 들려온다.
딸을 낳아 길러본 사람은 알지. 딸이 대문을 나설 때마다 느끼는 조마로운 마음을 말이다. 누구나 딸을 낳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반어적으로 위로하는 말이 생겨났을까. 딸이 대문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조마로운 일인데 출가하여 남의 가족으로 가버릴 때 어미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도 내 딸을 시집보낼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니 자식 사랑을 본능으로 타고 났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환갑을 넘었어도 남자로 살아온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재간이 없다. 며느리가 시집오던 날 혼례식이 끝날 때까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갈무리하느라 천장만 쳐다보던 사부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그 때마다 아내 얼굴을 돌아보았다. 새 식구를 맞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얼굴이 민망했다.
살림 밑천인 맏딸을 길러낼 때, 고추를 다듬듯이 씻고 가다듬고, 엿기름을 기르듯이, 동녘에서 막 돋아오는 봄 햇살을 놓칠까 밤이슬에 젖을까 노심초사, 항아리를 닦고 덮개를 열고 닫고 쓰다듬고 매만져서 정갈한 장독대를 가꾸듯이 온갖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고추장맛보다 더 행그럽고 더 달큰하고 더 매콤하고 더 고운 맏따님을 길러내는 정성을 어찌 고추장 담그기에 비기겠는가?
그 댁의 귀한 맏따님은 이제 막 삶의 오르막 내리막을 터득하게 되었고, 따라서 어머니의 속마음도 이해하여 동무가 될 만큼 성숙했는데 내 며느리가 되어버렸다. 아니 내 며느리로 앗아 왔다. 나는 그날 그 분의 모든 것을 도둑질해 오는 것만큼이나 스스로 발이 저렸다.
사부인께서는 올해도 잊지 않고 태양초 고추장을 보내 주셨다. 착한 며느리를 맞은 아내는 이제 고추장 담그는 어려움에서도 벗어났다. 새로 담근 햇고추장에 보리밥을 비벼 먹으면서 황홀한 맛의 행복에 혼례식 날 언뜻 보인 사부인의 눈시울이 겹쳐오는 걸 어찌할 수 없다.
(201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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