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나물 지짐이에 정情을 지지고
산에서 내려온 우리가 가는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참마대성斬馬大成한 김유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으로 행하듯 차가 절로 그리로 굴러 간다. 원마루 시장에 있는 칼국수집이다. 칼국수도 좋지만 우리 네 사람의 입맛을 다 맞추어내는 지짐이를 안주로 달달한 막걸리를 마실 수 있어 더 좋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주인아주머니의 정情 깊은 손맛이다.
누군가 들어서며 ‘지짐이 하나 막걸리 하나’하고 외치기 무섭게 번철에서 ‘지지직’ 기름 튀는 소리가 난다. 번철은 이미 불에 달아 있었고, 지짐이 반죽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은 지 오래다. 거친 듯 섬세한 손맛 아주머니는 기름이 튀는 번철에 들나물을 한 움큼씩 집어 놓고 지룩한 지짐이 반죽을 국자로 떠 넣는다. 반죽을 들나물 위에 들이부은 아주머니의 커다란 국자는 보기보다 여린 손놀림으로 ‘지지직’ 익어가는 지짐이를 고르게 펴기도 하고 살살 누르기도 하면서 손맛을 낸다. 생활에 닳고 닳은 한국 여인들은 투박해진 손길로도 그의 마음이 가는 길은 정만큼 섬세하다.
아주머니가 맷방석만한 지짐이를 상에 올려놓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떼어 먹기 좋게 칼질이 되어 있고 양념간장 종지가 고명처럼 한가운데 앉아 있다. 막걸리를 한잔씩 따라놓고 기다리던 우리가 탄성을 올렸다. 지짐이는 말할 것도 없이 두툼하다. 밀가루보다 들나물이 더 많다. 나물은 한 가지가 아니다. 가늘고 부드러운 미나리, 젓가락에 하얗게 감기는 대파, 말랑한 애호박, 매콤한 부추, 달곰한 양파 같은 부드럽고 연한 들나물이 뒤섞여 있다. 거기에 오돌오돌한 오징어 다리가 나물인 듯 해물인 듯 숨어 있다. 지짐이 접시에 함께 따라온 양념간장은 잠자는 혀를 깨울 만큼 매콤한 청양고추, 빨갛게 마른 고춧가루, 거기에 알큰한 마늘다짐으로 맛을 마무리 했다.
우리는 일단 우리 고향 청주의 맑은 물로 빚어낸 달달한 막걸리를 한 대포씩 들이켜고 젓가락을 들어 지짐이를 공략한다. 누구는 뭉쳐 있는 부추를, 누구는 노릇노릇 익은 오징어 다리를 골라내지만, 나는 번철에서 열을 더 받아 고소하게 눋내가 나는 미나리에 뭉쳐진 애호박을 도려낸다. 힘닿는 데까지 크게 도려낸 지짐이 젓가락을 양념간장에 푹 찍어 올린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다. 방금 올랐던 산 이야기로부터 가난했지만 정에 젖어 살아온 옛날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시나리오이다.
친구 산여山如는 막걸리에 지짐이 안주가 혀에 닿으면 추억을 불러온다. 여기에 불온不慍이 추임새를 넣으면 늘봄이 뒤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이다. 느림보인 나는 막걸리에 약하다. 막걸리는 조금만 마셔도 생각할수록 더 아련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된다. 술기운이 눈에서 얼굴로 퍼지면 쏟아내는 말도 발갛게 물이 든다. 말은 추억을 낳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추억은 다시 거칠 것도 없는 말을 낳는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어느새 이야기에서도 지짐이 익는 냄새가 난다. 정 깊은 아주머니는 익어가는 이야기를 귀 너머로 듣다가 함께 추억에 빠진다. 지짐이에 마구 섞인 들나물처럼 친구들의 마음도 아주머니의 정도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지짐이는 밀가루 반죽에 들나물을 넣고 들기름에 지져내기에 지짐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침이 괴지 않는가? 지짐이에 들어가는 나물로는 미나리, 대파, 부추, 애호박이 기본이다. 여기에 저민 물오징어가 들어가면 호사이다. 때로 강판에 간 감자나 도토리 녹말가루를 섞기도 하는데 차지고 구수한 맛을 더해 준다.
대학 시절 학교 앞에서는 대파나 쪽파만 넣고 밀반죽을 슬쩍 뿌려 구워낸 지짐이가 있었는데 이른바 파전이라고 했다. 인심 좋은 막걸리 집 여인은 파전에 막걸리 한 잔으로 가난한 대학생의 허기를 메워주었고, 우리는 젊은 날의 낭만에 젖어 철학이 가난한 철학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서로 가난한 친구 간에 나누는 파전 한 점이나 공짜로 얹어주는 아줌마의 지짐이 조각에 따라오던 따뜻하고 깊은 정은 아직도 남아 우리들의 얘깃거리로 익어 있다.
젊은 날 두메에 있는 작은 학교에 근무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불러 메밀 부침개에 막걸리를 먹였다. 산골 여인들은 메밀 부침개를 아주 얇게 부쳐내는 손재주가 있었다. 절인 배춧잎을 얹거나 마른 고사리를 얹어 백짓장처럼 얇게 부쳐낸 메밀 부침개를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얇은 부침개와 함께 따라오는 정情이란 반기는 오히려 도타워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부침개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빙허당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서는 부침개는 반찬이 아니라 전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부침개 중에서 지짐이는 흉년에 남대문 밖 유랑민에게 “적선이오.” 하고 던져 주는 전병이었다고 한다. 부침개 가운데 빈대떡이 있는데 이것은 녹두를 갈아 고기나 해물을 섞어 기름에 구워낸 것이다. 손님을 대접하는 전병이라 해서 '빈대떡'이라 했다고 하기도 하고, 빈자에게 적선한다 하여 '빈자떡'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정설인지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옛날에는 흔하던 녹두가 귀해진 오늘날에는 비교적 고급스러운 부침개에 속한다. 언젠가 정선 시장에 가서 손 큰 아줌마들에게 이 녹두빈대떡을 싼 값에 실컷 먹고 왔던 기억이 있다.
부침개 중에서 육전, 채전, 어전으로 이름 붙여 주로 제사 음식으로 쓰는 전煎이 있다. 고기, 나물, 생선을 얹어 부칠 때 계란을 입히기도 하여 조금 더 정갈하게 한다. 제사에 쓰는 전병 가운데 찹쌀가루에 씨 발라낸 대추, 말린 맨드라미, 검은 깨, 까만 석이 등으로 모양내어 구어 낸 찹쌀부꾸미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겨울철에는 화로에 석쇠를 놓고 구우면 그 따끈따끈하면서 차진 맛이 주린 배를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여기에도 이야기가 있고 깔깔대던 행복이 있었다.
들나물지짐이를 앞에 놓고 펼쳐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지칠 줄 모른다. 손 큰 아주머니가 부쳐 내온 두툼한 지짐이만큼이나, 거기 들어간 들나물만큼이나 가짓수도 깊이도 가늠할 수가 없다. 술기운으로 혀가 손맛을 느끼지 못할 때쯤 우리는 우리 사이에는 없던 벽까지 다 허물고 정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주머니의 손맛으로 우리는 산에서는 맛보지 못한 그윽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 있었다. 모두 따뜻하고 두터운 정에 젖어 흥얼흥얼 노년의 옹알이를 외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2015. 12. 10. 계간에세이포레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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