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다시 만난 콧등치기국수

느림보 이방주 2015. 6. 17. 04:37

다시 만난 콧등치기국수

 

기다리던 황기족발이 나왔다. 그런데 온통 기름덩어리이다. 점심때로는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하니 비어 있는 홀hall만큼이나 음식을 내오는 여인의 행주치맛자락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아내와 나는 여인이 던지듯 차려놓고 간 기름진 황기족발에 젓가락을 댔다한 점 집어 먹으니 온 입안이 기름투성이가 된다. 황기 향에 실려 전해오던 인정은 어디 갔는가? 주인은 전에 왔을 때처럼 정선 사람이 예로부터 족발을 먹어야 했던 내력이나, 황기를 넣은 족발의 효능이나, 족발을 먹고 나면 콧등치기를 먹어야하는 이유에 대한 이바구도 없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 중략 -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국수에서-

 

백석의 시 <국수>를 읽다가 문득 정선이 그리웠다. 정선의 콧등치기국수가 생각나서 바로 달려온 것이다. 백석의 고향 함흥은 가본 적이 없으니 정선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정선의 여름 먹거리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 식당에서 황기족발을 먹었다. 황기족발을 먹은 후에는 콧등치기국수를 곁들여야 한다기에 함께 먹었다. 그 때 담백한 맛과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바로 이집으로 찾아왔다시인처럼 겨울 국수는 아니지만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가시오가피주를 곁들였는데 맛이 담백하여 마음까지 정갈해지는 기분이었다. 술로 씻어낼 기름기는 아예 다 빠져버리고 없었다. 콧등치기국수를 내온 청년은 하얀 얼굴에 파르스름한 구레나룻이 인상적이었다. 백석의 시구詩句 텁텁한 꿈을 지나서처럼 청년은 착한 목소리로 콧등치기국수에 얽힌 아우라지의 애잔한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콧등치기국수는 맑은 장국에 깔끔하게 말아서 내왔는데 청년의 말대로 한 젓가락을 후루룩하고 빨아들이면 끄트머리에 남은 몇 가닥이 콧등을 후드득치고 넘어갔다. 나는 떼꾼이 되어 사랑하는 산골 아낙이 건네주는 따뜻한 국수국물을 들이켜듯 애잔한 마음으로 가슴이 멍해졌었다.

바람 차가운 여인은 황기족발이 아직 남았는데 콧등치기국수를 내왔다. , 이제 족발에서 뒤집어쓴 기름기를 집된장 국수장국으로 씻어볼까.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내오리라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맛이면 된다. 서둘러 국물 한 모금을 마셔보았다. , 그런데 예전의 깔밋한 맛이 아니다. 구수했던 감칠맛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옛날 떼꾼의 아낙이 아우라지를 지나가는 사랑하는 남정네에게 선 채로 건네던 맑은 장국이 아니다. 배불뚝이들의 입맛에 아부하는 탐욕의 이물이 육수에 숨어든 것이 분명하구나. 기대와 달리 도리어 혀의 감각이 마비되는 기분이다. 기계로 뺐는지 면발은 후루룩’ 아무리 세게 들이켜도 콧등을 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입안에 괴어 있던 황기족발의 기름기가 새로운 기름을 만나 마구 온몸에 스멀스멀 스며드는 기분이다.

세월이 죄인가시인 백석이 외던 고담하고 슴슴한 맛을 우리가 잃어버렸듯이 얼굴 하얀 청년의 친절은 어디 가고 배불뚝이가 된 젊은 사장은 나와 보지도 않는다우리는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가? 십여 년 사이 풍요로워진 세상이 돼지발에도 두터운 기름이 끼게 만들었나 보다. 식당에도 기름이 돌고, 순수했던 청년의 배에도 기름이 괴고, 음식 나르는 여인의 손길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기름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름 냄새가 나게 마련인가 보다. 풍요로운 시대라 하더라도 기름진 음식은 더 큰 풍요로 향하고자 하는 탐욕을 부른다. 내 시선도 역사의 어떤 가치를 찾아 헤매는지 두렵다.

메밀은 메밀다워야 한다. 정선의 메밀은 정선의 메밀이어야 한다. 정선 사람은 정선 사람다워야 한다. 메밀은 본래 거친 식재료지만, 메밀로 빚어낸 콧등치기는 물론이고 메밀전병이나 메밀전이나 메밀묵은 탐욕을 맑게 다스리기에 충분했었다. 콧등치기국수는 차가운 사내 가슴을 덥혀주는 따뜻한 아낙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래야 낭군이 뗏목에 몸을 싣고 아우라지를 지나 거친 물줄기도 억세게 넘어서 마포나루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콧등치기국수는 콧등을 쳐야 제 맛이다. 애잔한 정도 슴슴한 부드러움도 잃어버린 콧등치기국수는 청순하던 여인의 마음까지 세월의 바람에 날려버린 듯했다.

아내와 나는 진한 자판기 커피를 빼서 왈왈기름진 입을 가셔냈다. 입안이 달달해졌다. 우리는 입에 남은 단맛이나마 흐뭇해하며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구절리역으로 차를 몰았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철도청이 코레일Korail이라는 이국적인 이름으로 바뀌더니 아우라지역까지 7.2km를 둘이서 빌려 타는데 자그마치 25,000원이나 받았다. 출발 신호와 함께 터널을 지나자 아우라지로 향하는 송천 강가 산과 마을이 절경이다숫물이라 부르는 송천이 아우라지에서 암물이라 불리는 골지천과 어우러지면 신명난 물은 동강으로 남한강으로 소쿠라져 흐르게 마련이다.

떼꾼들의 아라리가 애잔하게 울려 퍼지던 아우라지에 철마의 기적소리가 골짜기를 뒤흔들더니, 이제는 철마도 어디 가고 장난감 같은 레일바이크가 덜커덩거린다. 떼꾼 부부같이 이별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우리 내외는 모처럼 스물두 살 때처럼 즐거웠다. 여울은 아직도 절절한 정선 아라리를 부르는데 철부지가 된 우리 내외는 휘파람을 불었다.

아우라지역이 가까워지는 어느 모롱이에서 젊은 여인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마치 옛날 떼꾼의 아내가 사랑하는 남정네에게 콧등치기국수를 건네듯 레일을 구르는 바이크를 멈추게 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권한다사지死地가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사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도 고담하고 소박한 정도 없어서 섭섭하다. 정선의 콧등치기국수도 맛이 변했다. 백석이 시를 쓰던 시대의 국수 맛을 그리워하면서도 오늘날 입맛에는 맞추지 못하듯이 정선아리랑의 애잔함에 향수를 느끼면서도 예전 그대로 아우라지의 콧등치기는 배불뚝이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가 보다.

생각해 보니 정선 콧등치기국수 뿐 아니라 세상이 좋아하는 맛은 세월 따라 모두 변했다. 그러나 맛은 사람의 정서를 가르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혀가 느끼는 예민한 오미五味는 그보다 더 예민한 칠정七情을 다스린다. ‘이라는 감각은 오욕칠정의 뿌리가 뻗어갈 방향타가 된다. 세상이 바뀌어도, 아우라지에 레일바이크가 덜커덩거려도 정선의 콧등치기국수만은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고담하고 소박한옛날 그 맛으로 지탱해 갔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네 음식 문화만큼은 소박한 맛의 전통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5.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