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호랑이
이방주
호무골은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과 용담동 사이에 있다.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앉았다. 2000년 즈음에 근무하던 금천고등학교 복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하루 종일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과수원이 보이고, 과수원 한가운데 평화로운 집 한 채가 아주 가깝게 보이기도 했었다. 한 5년쯤 지나서 주변이 시가지가 조성되고 아파트가 들어섰는데도 과수원 마을은 그대로 보였다. 어느 토요일 찾아가보기로 했다.
학교 뒤쪽으로 4차선 도로를 따라 주성고등학교 쪽으로 가다보면 산성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산성초등학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골짜기에 아담한 마을이 나온다.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에도 편입되지 않은 마을은 동글동글한 야산 아래 전설을 간직한 채 평화로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니 한 40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모두 기와집이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구옥이다. 울타리가 무너졌거나 아예 없는 집도 있고, 대나무로 파랗게 산울타리를 조성한 집들도 보였다. 소를 기르는 우사, 개나 토끼를 사육하는 축사 같은 것들이 즐비하다. 양지쪽에 황소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서 큰 눈을 꿈쩍이며 새김질을 한다. 무너진 집 사이의 공터는 주로 마늘밭이다. 야산은 성이 되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고샅은 정리되지 않았으나 너저분하지는 않았다. 고샅길은 깨어진 보도블록이 깔려 있다. 좁은 골목인데도 허름한 집 앞에는 고급 승용차가 번쩍거리는 것으로 봐서, 농사나 축산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을 앞들의 논밭들이 모두 금싸라기 땅이 되었을 것이다. 사금이 나왔다는 전설처럼 시대가 바뀌어 논밭에서 정말로 금을 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작은 우물이 있다. 우물은 뚜껑으로 덮이어 있고, 우물가 향나무는 보기 좋게 허리를 꼬며 서 있다. 맞다. 이 우물이 바로 호랑이가 마시고 춤을 추었던 그 우물이다.
골목에서 지게를 지고 오는 최 씨라는 노인 한 분을 만났다. 인사를 드리고 호무골과 애기바위, 구중고개에 대해 물었다. 호무골 얘기는 잘 알고 있었다. 호무골 지명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호랑이가 춤을 추웠다 하여 호무골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북쪽에 아름다운 호수(湖水)가 있다고 해서 호미골(湖美谷)이라고 불린다는 전설도 있고, 마을 지세가 호미를 옆으로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호미골이라는 이름이 붙어 온다는 설도 있으며, 마을에 과부가 많기에 호미골(홀어미)이라는 동리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최 씨 노인은 호랑이가 춤을 추웠다는 호무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흩어지고 정리되지 않았으며, 녹음기를 가져가지 않아 채록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고 문헌을 참고하여 옮겨 놓는다.
조선 말엽(1896)년 李明道라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다가 지형의 오묘(奧妙)함을 발견하고 이곳에 정착할 것을 결심했다. 그는 집터를 잡은 다음 바로 물터를 찾았다. 아무리 파보아도 계곡은 깊으나 석벽(石壁)을 이루고 있는 땅속에서 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지세가 좋다고 해도 물이 없는 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기에 이명도도 마침내 정착할 뜻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휘황하게 달빛이 쏟아지는 밤에 이명도는 평탄하게 닦아놓은 집터 자리에서 하룻밤을 드새고 다음날 딴 곳으로 떠날 차비를 차리고 있었다. 산짐승들의 포효를 들으면서 눈을 감으려던 이명도는 얼핏 머지않은 계곡에서 너울거리는 괴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멎은 곳에 한 마리의 호랑이가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우거진 숲 속에서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숲 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뺄 때에는 앞발을 들고 흔들면서 춤을 추는 것이다.
이명도는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도 그 호랑이가 왜 숲 속에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는지를 살폈으나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고 다만 얼룩무늬 등과 하얀 배를 달빛에 번득이며 춤을 추고 있는 모습만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것은 정말 신비하고도 괴이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몇 번인가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하고난 호랑이는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뛰어올라가 달을 향해서 산과 들이 울리도록 힘찬 포효를 하고 나자 동쪽을 향해서 바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명도는 날이 밝아오자 호랑이가 춤을 추며 머리를 넣었던 숲 속을 가보고 환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그곳에는 맑고 맑은 물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와 잔돌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물은 차갑고 단맛이 혀에 감쳤다. 호랑이는 밤마다 그것을 마시고 춤을 추며 좋아했던 것이다.
《전설지》(충청북도 문화공보담당관실, 고려서적주식회사, 1982.)에서 발췌 요약
호무골은 1970년대만 해도 말로만 시내이지 오지였던 것을 나도 기억한다. 그리고 한 3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호무골은 것대산 줄기 끄트머리에 붙은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니 100여 년 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것이 전혀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을 한가운데 보이는 우물이 새삼 반가웠다. 그러나 물을 마시지는 않았다. 이제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춤도 추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도 나타나지 않고 물도 이미 제 맛을 잃은 호무골은 햇살은 따사로워도 고층 건물 숲에 묻혀 있어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이 마을도 전설만 남기고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호무골 샘물을 자꾸 뒤돌아보며 발길을 돌렸다.
예상대로 호무골은 금천동에서도 가장 늦게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호랑이가 마시던 물을 함께 마시고 살았던 호무골 사람들도 흩어져 서로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다시 100년이 지나면 호무골 샘물을 다녀간 나의 걸음도 전설이 될 것이다. 지금은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숲에서 호랑이 춤추던 호무골 샘물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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