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몽단이재 의마총(義馬塚)

느림보 이방주 2023. 6. 27. 14:00

몽단이재 의마총(義馬塚)

 

말무덤은 잡초에 묻혀 있었다. 주검 모양대로 봉분을 지었는지 몸통, 머리, 네 다리가 말의 형상 그대로이다. 7월의 햇살이 쪼아대니 풀이 삐들삐들 말랐다. 봄에 피었을 삐비꽃 한 무더기가 마른바람에 흔들린다. 의마가 찢어 물고 왔다던 주인 매은당梅隱堂 박동명朴東命 장군의 옷자락 같다.

청주시 옥산면 국사리 의마총을 찾아갔다. 봉분 앞 ‘義馬之塚의마지총’이란 표지석이 개망초 꽃대에 가렸다. 개망초가 하얗게 핀 제절이지만 옥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梅隱堂義馬之塚碑’ 육척 비문에 고스란히 남았다. 비석은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까지 얹었다. 비를 세운 이들의 정성이 갸륵하고 격식이 있다. 제절 아래 2004년에 세운 ‘몽단이재와 의마총 유래비’는 옥산면 이장들이 정성을 모았다. 말의 의리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덕을 쌓아 내렸다.

유래비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뚜렷하다. 주인공 박동명이란 실명과 인조 14년 1636년 병자호란 당시라는 시간이 확실하다. 배경이 된 몽단이고개는 매은당의 사연에서 연유하여 이름을 바꾸어지었다는 지역적 증거도 확실하다. 화살을 맞고 전사한 주인의 저고리를 매은당의 애마가 물어뜯어 왔을 뿐 아니라, 주인을 위한 진혼제를 지내고 이곳에 의관장(시신을 찾지 못하여 의관으로 대신 장례함)을 지내자 의마는 발굽이 땅에 붙어 칠일 간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하긴 그런 일이 드문 일이기에 이야기가 오늘까지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의마 이야기나 의마비는 옥산 국사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천에도 이영남 장군의 용마총이 전해진다. 그밖에도 의로운 소나 개의 비와 비각, 무덤이 전국에 산재해 있고 그에 따른 동물의 의리, 충심이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가 함께 한다.

최근에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동물들도 호의를 권리로 바꾸어 듣는지 요즘 반려동물은 주인에게 받은 사랑만큼 의리나 충심을 되돌리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들도 개에게 무조건 사랑을 주는 것으로 행복을 느낄 뿐이지 내린 사랑을 되돌려 받으려는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으로 행복한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되돌려 받지 못하면 ‘내가 저에게 어떻게 했는데’ ‘내가 제 놈을 어찌 키웠는데’ 하면서 내심으로 섭섭해 한다. 연인 사이에도 죽도록 사랑한다면서 막상 사랑을 돌려받지 못하면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하며 가슴을 친다. 나도 필요할 때는 존경하는 스승을 두고 ‘영원한 스승’ 운운하면서 그립다고 말은 하지만 한 번 찾아뵙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니 깃털이 나자마자 ‘끼룩끼룩’ 날아오르며 둥지에 대고 물똥이나 갈기지 않으면 다행이라 하겠다.

‘의리’와 ‘충심’이라는 말은 유교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그리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조건 없는 충忠을 의미하는 말로 왜곡되어 쓰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 때 의리인 것이 남이 볼 때는 불의인 경우가 허다하다. 충심이라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제 충심과 의리는 사라진 것 같다. 의견, 의마 또는 충견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냥 반려로 불리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소위 ‘일타 강사’라는 말을 들으면 스승과 제자 사이도 사랑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시험 보는 비법이나 쉽게 일러주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씁쓸하다. 처음에는 의리와 충심을 가지고 접근했다가 목표에 도달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일반사이다. 의마총에 와보니 청주 사람들은 남다른 충심과 의리로 살아온 것 같다. 말의 의리를 기리는 말무덤 앞에 와서 별 부끄러운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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