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25

고려견의 생각

고려견의 생각 초롱길을 혼자 걷는데 목줄도 없는 개가 나를 보며 ‘앙앙’ 짖어댄다. 달려들 기세이다. 개는 무엇으로 짖을까. 윤동주 시인은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라고 했다. 시인이 자신을 어둠으로 규정한 까닭은 지식인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나도 어둠이라 부끄러워하면서 ‘가자, 가자’ 해야 하나. 어떤 이는 개가 짖는 것은 반가움의 표현이라 한다. 그럼 밝음이다. 개도 두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다. 누구나 어둠과 밝음이 있다. 이빨을 드러내고 앙앙거리는 초롱길의 개는 나에게서 어둠만을 본 것이다. 어둠 뒤의 밝음은 보지 못한 것이다. 청주대학교 박물관 앞에 가면 오래된 개 두 마리를 만난다. 고려견이다. 남석교 양쪽 머리 법수(法首) 상단에 조각되어 서 있었는데 어찌어찌해서 여기..

정상동 돌꼬지샘

정상동 돌꼬지샘 샘은 시작이다. 샘은 물길의 시작이다. 바위산 마루에 세운 보리암 절집도 바위틈에 샘이 있다. 신라 혁거세거서간도 나정이라는 샘 곁에서 알로 태어났다. 역사도 샘으로부터 발원한다. 땀은 땀샘에서 나오고 눈물은 눈물샘에서 나온다. 샘은 가치와 진실의 시작이기도 하다. 인류는 자궁샘에서 탄생한다. 샘은 생명의 근원이고 문명의 시작이다. 금강처럼 큰물도 샘으로부터 시작한다. 금강을 거슬러 미호강으로 무심천으로 오르며 원류를 찾는다. 미호강과 무심천 합류 지점인 까치내로 흘러드는 지류 정상천이 있다. 정상천은 정상동 소류지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 지점에 돌꼬지샘이 있다. 그래서 정상천 발원지를 돌꼬지샘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상동 돌꼬지샘을 찾아갔다. 청주 북쪽으로 시가지를 성벽처럼 감싸고 있는 ..

발산 끝자락에 모신 부처님

발산 끝자락에 모신 부처님 상당산 정상 치소 자리에서 왼쪽 성벽은 한남금북정맥의 일부가 된다. 동암문으로 살짝 나서면 한남금북정맥 이티재로 향하는 산줄기다. 좌청룡 성벽을 타고 내려가면 진동문을 거쳐 동장대인 보화루를 만난다. 오른쪽 성벽은 백호를 타고 미호문을 거쳐 서남암문을 지나 공남문에 이른다. 중간에 서장대가 있다. 상당산성은 이렇게 마을을 안고 돈다. 미호문에서 바라보면 내가 사는 청주 북쪽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 미호강과 오창들을 건너 만뢰지맥이 나지막하게 뻗어 오창읍과 옥산면을 품었다. 미호문은 상당산성 서문이다. 상당산 우백호는 와우산 살진 암소를 발견하고 바로 공격하려고 잔뜩 움츠린 형상이다. 미호문은 여기에 호랑이 기운을 제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여기서 한 줄기가 급하게..

제일교회와 돼지국밥

제일교회와 돼지국밥 친구 연 선생이 육거리시장 제일교회 앞에서 만나잔다. 밥을 사준다고 한다. 점심 얻어먹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육거리시장 구경을 할 수 있겠다. 그래 가자. 주중동 마로니에공원 정류장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탔다. 주중동에서 육거리시장까지 점심 얻어먹으러 가는 길은 단순하지 않다. 청주대학교, 국립미술관, 시청, 도청을 다 지나야 한다. 육거리시장 정류장에서 내렸다. 인도는 남새를 파는 할머니들이 점령했다. 나는 무심코 큰길을 건넜다. 그때 친구가 위에서 부른다. 제일교회를 그쪽으로 옮겼냐. 왜 건너 가냐. 아 그렇지. 제일교회는 시장 쪽이지. 그러고 보니 제일교회가 가까이서도 보이지 않는다. 교회는 주변의 큰 건물에 가렸다. 어머니는 열무 서른 단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시오리길..

알나리깔나리 쟤들 좀 봐 -구룡산 장승공원에서-

알나리깔나리 쟤들 좀 봐 -구룡산 장승공원에서- 이방주 문의면 하석리 장승공원이 궁금하다. 2005년 6월에 구룡산에 장승을 세우고 장승축제를 열었을 때 참석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 매우 뜻 깊은 행사라고 감탄하며 이 행사를 주도한 오효진 군수님에게 감사하기도 했었다. 장승공원은 구룡산성 서쪽 기슭이다. 청주시내에서 가려면 현암사를 지나 대청호 공원으로 건너가는 다리 쪽으로 좌회전하기 직전에 오른쪽 골짜기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간다. 거기에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에 구룡산 등산로 안내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가파른 등산로를 타고 오르면 무너진 구룡산성 돌더미가 나온다. 돌길을 따라 등마루를 밟으면 바로 정상인 삿갓봉이다. 이 봉우리는 군사정권 시절 청남대를 지키는 초소가 있어서 아무나 오를 수 없었다. 여기..

연초공장 누나들

연초공장 누나들 커피 맛이 특별한 문화다방에 갔다. 오늘도 오천 원짜리 한 장으로 두 잔을 샀다. 현관문 바로 앞에 앉아 체온을 체크하는 여성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문화의 씨앗 하나를 심는 것이다. 문화다방은 연초제조창이었던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건물 로비에 있다. 커피 맛이 특별하고 따뜻하다. 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바로 달려가면 8시 55분에 도착할 수 있다. 현관에서 체온을 체크하는 중년 여성을 만난다. 참 친절하다. 따끈한 커피 한잔이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 그분에게 커피를 건넨 날은 더 행복하다. 더구나 9시 이전에 결제를 하면 3000원에서 자그마치 500원이나 할인해 준다. 오천 원짜리 한 장이면 두 잔을 살 수 있다. 그분에게 한 잔을 슬쩍 건넨다. 돌아오는 미소가 따듯하다. 그분..

산과 강 사이 -옥화구곡길을 걸으며-

산은 마을을 나누고 강은 마을을 잇는다. 산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사람살이를 만들어내고 강은 마을에 새로운 살림살이를 전하고 소통한다. 산은 나누고 강은 통섭한다. 산과 강 사이에 길이 있다. 산과 강은 자연이 만들었지만 길은 사람이 만들었다. 길을 따라 마을이 이웃으로 간다. 길을 따라 문명이 들어오고 사람살이가 쌓여 문화가 된다. 산과 강 사이에 길이 있고 길 위에 사람이 있어서 쉼 없이 문화도 역사도 이어간다. 옥화구곡길을 걸었다. 바람 불고 추웠다. 옥화구곡길은 미원면 운암리 청석굴 공원부터 어암리까지 달래강을 따라 이어지는 14.8km 길이다. 둔치를 걸어 마을 앞을 지나 산기슭을 내려서면 징검다리를 건너 이웃 마을로 간다. 강바람은 맵고 산바람이 볼에 시리다. 삶은 때로 바람이고 시련이다. ..

후곡리 미소아줌마

후곡리 미소아줌마 후곡리 숯마을 전경 - 왼쪽 연안이씨 사당, 가운데 하얀 집이 최씨 집 마당에 차를 세웠다. 낡은 무쏘의 엔진 소리에 부인이 뛰어 나온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나는 내 차를 알아보고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마당에 차를 세우는 누구에게나 다 미소를 보낼 것이다. 그런 아줌마를 나는 미소아줌마라고 이름 지었다. 미소부인이라고 했다가 그 분의 삶이 아줌마가 더 나을 것 같아 미소아줌마라고 하기로 했다. 그분의 미소에서는 참취를 꺾었을 때나 맡을 수 있는 향이 풍긴다. 시월에 피는 참취의 하얀 꽃처럼 청초하다. 미소아줌마는 무슨 일로 항상 얼굴에 미소를 담고 살까? 생활이 즐거운 것이다. 자연이 웃으니 따라 웃는 것이다. 아니 웃으며 사니 자연이 환하게 열리는 것이다. 모두..

백골산성에서

백골산성에서 백골산에서 바라본 대청호반 여기는 백골산, 아니 백골산성이다. 나는 백골산성 망루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지금은 대전시 동구 신하동. 백제 땅도 아니고 신라 땅도 아니다. 성을 차지하려고 다툴 사람도 없이 그냥 우리 겨레붙이가 함께 사는 대전광역시 신하동 뒷산이다.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어느 때를 따질 것도 없이 여기에 올라 올 수 있고, 마음 닿는 대로 내려갈 수 있다. 백골산, 이름은 괴악해도 산은 아주 작고 부드러운 야산이다. 아니 그냥 동네 뒷산이다. 신하동과 신상동을 잇는 산줄기이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하고 산나물 캐던 그런 산이다. 아이들이 산딸기를 따고, 억새를 꺾어 활을 쏘던 그런 민중들이 디딘 일상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언덕배기이다. 덥다. 예보보다 더 덥다. 셔츠가 다 ..

염티리 소금길을 찾아서

문덕이나 염티 마을에는 왠지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문의면 염티리에서 회남 땅의 남대문리로 넘어가는 길은 승용차로도 만만찮은 고갯길이다. 고갯마루에 염티(鹽峙)라는 한자 이름이 궁금증을 더한다. 염티는 문의면 염티리에서 회남면 남대문리로 넘어가는고개이다. 그러나 두 마을만 소통되는 단순한 고개는 아니라는 것은 염티에 올라 내려다 보면 다 알 수 있다. 염티에서 바라보면 회남에서 옥천으로 가는 구룸재, 보은오 가는 밤재를 가물가물하게 볼 수 있다.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뻗어가다가 추정재에서 팔봉지맥으로 나뉘어 다시 피반령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갈리어 팔봉산까지 한 줄기와 샘봉산까지 가는 한 줄기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청주 인근에서 보은으로 가는 고개는 피반령과 염티가 가장 큰 고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