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포토에세이

막장봉 소나무

느림보 이방주 2012. 11. 20. 12:33

막장봉 소나무

 

 

막장봉 주인

 

막장봉에 갔다. 정상이 바라보이는 날망에는 바위를 지키며 오롯이 앉아 있는 소나무가 있다. 뿌리는 한 줄기라도 바위에 내리기나 했는지 허공에 드러나 있다. 백년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메마른 가지가 안쓰럽다. 그래도 여린 잎은 푸름을 잃지 않았다. 가서 볼 수 없다. 바위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고요히 참선에 든 모습이라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속세 사람들은 호흡조차 함께 할 수 없는 거룩한 모습이다. 

 

이 소나무를 막장봉 주인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이 산을 다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다. 산 아래를 조망하면서 마음 밭을 가는 소나무라는 말이다. 다 버렸기에 세상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나도 소나무 옆 자리에 올라가 보고 싶다. 소나무 옆자리에 자리를 펴고 앉아 보고도 싶다. 소나무처럼 내 것이 아닌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앞에 대야산이 보인다. 하늘이 푸르니 그냥 검게 보이지만 눈을 감으면 그 멋이 다 보인다. 대야산 정상에서 중대봉에 이르는 산줄기, 조항산 청화산을 거쳐 속리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힘찬 꿈틀거림이 다 보인다. 칠보산이 보이고 장성봉에서 백두대간으로 달려가는 산줄기가 장엄하다. 그 너머 희양산도 대머리를 내밀었다. 어제는 비가 산야를 씻어냈으니 오늘은 연무를 연출하리라.

 

관평리로 내리 뻗치는 산기슭에 단풍이 한창이다. 관평리에서 버리미기재로 향하는 도로가 가늘게 숨었다가 나타났다 하면서 기어간다. 길이 있으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이 길을 달리면 잠깐씩 충청도와 경상도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거기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이다.

 

산의 주인은 정말로 누구일까? 누가 주인이면 어떠랴. 주인이 누구라도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문득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안될 일이다. 자연은 금방 자연이 아닌 게 된다. 누가 자기 소유의 산이나 들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겠는가?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재물이 된다. 재물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정말 다행이구나. 이 산야가 내 땅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말자. 가슴에는 되도록 작은 그릇만 품고 살자. 그릇이 작으면 그만큼 적게 담길 것이다. 탐욕이 절로 넘치는 작은 그릇이면, 보이는 것이 모두 아름다움뿐이라 버림으로써 모두 가지는 슬기를 지니게 될 것이다. 갖고자 하면 어리석음이 커지고, 버리고자 하면 부자가 되는 지혜를 막장봉 소나무에게 배운다.

(201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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