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세상이 온통 바짝 바짝 마르는 기분이다. 내 앞에 세상은 없는 것 같았다. 세상이 모두 등을 돌리고 앉은 채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아니 내가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하여 등을 돌린 것인가?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어디에 가면 세상을 찾을 수 있을까? 내 안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덥혀줄 볕은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바라기를 받아줄 태양은 어느 산 날망에 걸려 있을까?
차를 몰았다. 세상을 찾으러 바람을 가르며 차를 몰았다. 메마른 갈대처럼 바람이 부는 대로 그렇게 흐느적거리며 기우뚱거리며 덜커덩거리며 세상을 찾아 나섰다. 볕을 찾아 나섰다. 아니 빛을 찾아 나섰다. 세상의 빛을 말이다.
메마른 갈대
어느 갈대 우거진 강가에 이르렀다. 강 건너 어둑한 산에는 희끗희끗 눈이 쌓였다. 검은 소나무들이 낙엽 위에 내려앉은 눈을 밟고 떨고 있다. 골짜기를 넘어오는 바람이 머무는 곳에는 전봇대가 낡은 비닐 조각을 매달고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을씨년스러워서 그 자리에 더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 차가 머문 그 자리에, 바로 그 자리에 메마른 갈대들이 햇살을 받으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갈대에 머문 햇살은 거친 바람을 다스리며 메마른 내 안에 위안을 주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강물에 부서지는 은가루
거기에도 세상은 없다. 거기에도 내게 돌아오는 따사로운 볕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도 바라기할 볕은 한 줌도 없다. 그런데 그 때 검은 산등성이를 넘어온 옅은 저녁 햇살이 강물에 온통 은가루를 퍼붓고 있었다. 물새들이 은가루를 물고 하늘로 비상하는데도 강물은 소리도 없이 아주 평화로운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은가루는 온통 내게 반사되어 온몸이 도금이 되는 기분이다.
빛을 건지는 사람들
그 찬란한 은빛의 향연 속에서 검은 옷 입은 서너 명의 사내가 빛을 건지고 있었다, 낚시를 드리우고 연신 줄을 당기며 빛을 건지고 있었다. 햇살을 건지고 있었다. 세상을 건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건지고 있었다.
갈대 너머
눈 쌓인 산을 넘어온
겨울 햇살이 은가루처럼 영롱하게 물결에 반사하는
옅은 강에서
빛을 건지는 사람들을 보았다.
메마른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물새는 햇살을 차고 비상하는데
사람들은 연신 낚싯줄을 당겨
빛살을 건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건지고 있었다.
혼자인 나는
그걸 바라보다 돌아왔다.
햇살은 거기에 둔 채
그냥 돌아왔다.
사람들은 차가운 물에 들어가 저렇게 빛을 건지는데 그들의 삶을 건지는데 내가 건져내야 할 빛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찾아야 할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그냥 돌아오는 돌길에 아무것도 모르는 자동차만 덜커덩거린다.
(2007. 1. 12)
***** 월간 <문학저널> 2007년 2월호 (42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