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잊을 수 없는 맛 2 - 삼도봉에서-

느림보 이방주 2012. 10. 26. 11:04

잊을 수 없는 맛 2

- 삼도봉에서 -

 

여기는 삼도봉, 드디어 산마루에 올랐다. 충북 영춘, 경북 부석, 강원도 하동(현재는 김삿갓면)이 만나는 꼭짓점이다. 봄 햇살이 따스하지만 바람에는 냉기가 남았다. 강원도 쪽으로는 화전이지만 너른 평원이다. 서너 채 초가가 눈에 띄니 배가 고프다.

 

평원은 모두 희귀한 약초밭이다. 겨울잠을 자던 약초들이 언 땅을 비집고 막 기지개를 켠다. 붉은색으로 손가락을 내미는 것은 작약이리라. 화전이라도 다듬고 가꾸어 깨끗한 약초밭으로 가꾸었고, 바람막이 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모롱이를 돌아가니 나지막한 초가집 마당에 봄볕이 한창이다. 산지이지만 풍요는 아니라도 평온이 있다. 너른 약초밭 끄트머리에는 아지랑이도 아롱아롱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당에 토실토실 살진 토종닭들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었다.

 

주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니 이런 두메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아낙이 나왔다. 우리 세 사람은 점심 부탁을 하고 싶었지만 서로 눈치만 보았다. 수염까지 덥수룩하여 더 무뚝뚝해 보이는 남정네가 '손님들 오셨는데 점심 좀 차리지.'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생면부지에게 보내는 호의가 오히려 의아했다. 산 아래 충북 땅에 있는 학교 교사들이라면서 인사를 청했다. 이미 짐작했는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약초밭 구경을 할 수 없느냐는 물음에 말없이 밭으로 안내했다. 싹이 막 돋아 오르는 약초들은 처음 보는 것도 있고, 이미 봐서 아는 것들도 있었다. 웃음은 없어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비교적 친절하게 약초 종류와 재배 방법, 효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젊은 아낙의 부름으로 봄볕이 따사로운 평상에 차린 두레상에 둘러앉았다. 커다란 냄비에서 고기향이 피어오른다. 가시가 그냥 남아있는 엄나무를 넣은 삼계탕이다. 대추, 산밤, 수삼도 보인다. 닭고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 대신 쌉쌀하고 구수한 엄나무 향기가 좋다. 그렇게 큰 닭은 처음 보았다. 젊은 아낙이 옆에 앉아 고기를 뜯어 대접에 나누어 주었다. 고기는 담백하고 구수하다. 씹을수록 차지고 달다. 찰밥에 노란 기름이 돌아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야말로 온갖 맛이 다 들어있고 색깔까지 발그레하게 고운 오미자술을 한잔 들이키고 고기를 뜯었다. 신선들은 날마다 이렇게 살까? 다래순묵나물무침, 더덕구이, 애동고추튀각, 엄나무순장아찌, 땅에 묻었던 배추김치 등 다른 반찬들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었다. 

 

오미자술이 거나해졌는데도 친절의 이유를 아직 알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전설이 생각나 가끔 두렵기도 했다. 술이 오르고 상이 거의 끝날 무렵 눈치를 챘는지 남정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렇게 살려니까 사람이 그리워요. 오늘 귀한 손님을 맞아 한나절이 참 즐거웠습니다."

동료 한 사람이 닭 값이라도 드린다며 지갑을 열었다. 주인이 펄쩍 뛴다. 젊은 아낙이 얼굴에 홍조를 띤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닭인걸요. 혼자서 무슨 맛이 있겠어요. 귀한 분들과 함께 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한사코 사양하는 내외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사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삼도봉에 가면 무뚝뚝한 사내와 홍조를 띤 젊은 아낙 내외가 잔잔한 미소로 맞아줄 것만 같다.  

(2012. 10 26.) 

 

 

에세이뜨락 - 잊을 수 없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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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2-12-02 오후 6: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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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현재 충북고등학교 교사
1. 삼도봉에서

여기는 삼도봉, 드디어 산마루에 올랐다. 충북 영춘, 경북 부석, 강원도 하동(현재는 김삿갓면)이 만나는 꼭짓점이다. 봄 햇살이 따스하지만 바람에는 냉기가 남았다. 강원도 쪽으로는 화전이지만 너른 평원이다. 서너 채 초가가 눈에 띄니 배가 고프다.

평원은 모두 희귀한 약초밭이다. 겨울잠을 자던 약초들이 언 땅을 비집고 막 기지개를 켠다. 붉은색으로 손가락을 내미는 것은 작약이리라. 화전이라도 다듬고 가꾸어 깨끗한 약초밭으로 가꾸었고, 바람막이 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모롱이를 돌아가니 나지막한 초가집 마당에 봄볕이 한창이다. 산지이지만 풍요는 아니라도 평온이 있다. 너른 약초밭 끄트머리에는 아지랑이도 아롱아롱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당에 토실토실 살진 토종닭들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었다.

주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니 이런 두메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아낙이 나왔다. 우리 세 사람은 점심 부탁을 하고 싶었지만 서로 눈치만 보았다. 수염까지 덥수룩하여 더 무뚝뚝해 보이는 남정네가 '손님들 오셨는데 점심 좀 차리지.'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생면부지에게 보내는 호의가 오히려 의아했다. 산 아래 충북 땅에 있는 학교 교사들이라면서 인사를 청했다. 이미 짐작했는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약초밭 구경을 할 수 없느냐는 물음에 말없이 밭으로 안내했다. 싹이 막 돋아 오르는 약초들은 처음 보는 것도 있고, 이미 봐서 아는 것들도 있었다. 웃음은 없어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비교적 친절하게 약초 종류와 재배 방법, 효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젊은 아낙의 부름으로 봄볕이 따사로운 평상에 차린 두레상에 둘러앉았다. 커다란 냄비에서 고기향이 피어오른다. 가시가 그냥 남아있는 엄나무를 넣은 삼계탕이다. 대추, 산밤, 수삼도 보인다. 닭고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 대신 쌉쌀하고 구수한 엄나무 향기가 좋다. 그렇게 큰 닭은 처음 보았다. 젊은 아낙이 옆에 앉아 고기를 뜯어 대접에 나누어 주었다. 고기는 담백하고 구수하다. 씹을수록 차지고 달다. 찰밥에 노란 기름이 돌아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야말로 온갖 맛이 다 들어있고 색깔까지 발그레하게 고운 오미자술을 한잔 들이키고 고기를 뜯었다. 신선들은 날마다 이렇게 살까? 다래순묵나물무침, 더덕구이, 애동고추튀각, 엄나무순장아찌, 땅에 묻었던 배추김치 등 다른 반찬들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었다.

오미자술이 거나해졌는데도 친절의 이유를 아직 알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전설이 생각나 가끔 두렵기도 했다. 술이 오르고 상이 거의 끝날 무렵 눈치를 챘는지 남정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렇게 살려니까 사람이 그리워요. 오늘 귀한 손님을 맞아 한나절이 참 즐거웠습니다."

동료 한 사람이 닭 값이라도 드린다며 지갑을 열었다. 주인이 펄쩍 뛴다. 젊은 아낙이 얼굴에 홍조를 띤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닭인걸요. 혼자서 무슨 맛이 있겠어요. 귀한 분들과 함께 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한사코 사양하는 내외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사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삼도봉에 가면 무뚝뚝한 사내와 홍조를 띤 젊은 아낙 내외가 잔잔한 미소로 맞아줄 것만 같다.

 

2. 와석리에서

영호 엄마가 상을 들여왔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에 눈길이 쏠린다. 우리는 교사라는 체면을 잃어버리고 굶주린 짐승이 되어 밥상에 달려들었다. 우거지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민망하다. 깻잎장아찌, 고추장 바른 지고추, 불그레한 총각김치가 간소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꺽지튀김을 발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급수인 의풍천에서 여름에 잡은 꺽지를 맑은 골바람에 말려 두었다가 튀긴 것이다. 그 담백한 맛은 표현할 수 없었다. 참기름 소금을 바르면 소주 안주로 그만인 것을 나만은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대체 몇 시간을 헤맨 것인가? 지난 봄 엄나무삼계탕으로 신세진 삼도봉 약초밭에 소주랑 라면을 짊어지고 눈길을 헤치며 올라갔다. 주인은 집을 비웠다. 가져간 것들을 들여놓고 와석리 분교장을 지나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걸었다. 지름길이라고 들어선 것이 엄청난 착오였다. 산골에 해가 지자 금방 앞뒤 분간조차 어려워졌다.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춥고 배가 고팠다. 불안했던 70년대, 산골에서는 쉽게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리자 드디어 가물가물 불빛이 보였다.

문이 열린 것은 그냥 돌아서려 할 즈음이었다. 군복 모양인 방한복을 입은 우리에게 쉽게 문을 열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길 잃은 사람인데·요기를 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때 갑자기 6학년 영호가 튀어 나왔다. "선생님요- 어쩐 일이래요." 아, 잘못 왔구나. 학구가 아닌 강원도의 유일한 학부모 집이였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도 없지 않은가? 영호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방에 들어섰다. 온돌이 따끈따끈했다. 종일 눈길을 쑤신 양말에서 땟국이 찌적찌적 나왔다. 발 냄새가 고약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깨끗한 방바닥에 발자국이 선명했다. 그래도 자리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방에서 만난 따뜻한 밥은 어머니의 밥상으로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방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들깻잎장아찌는 깻잎 위에 켜켜이 다진 마늘, 붉은 실고추, 깨소금으로 양념을 하여 밥솥에 슬쩍 쪄내던 어머니의 그 맛이었다. 총각김치는 어금니로 깨물 때마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처럼 맛도 꼭 그런 맛이었다. 가슴 속에는 고향이 가득했다. 가시가 억세기는 했지만 바삭바삭하는 꺽지튀김을 안주로 소주까지 한잔씩 걸치니 낯이 더 두꺼워졌다. 학부모집이라는 것도, 발이 지저분하다는 것도, 지금 모두가 거지꼴이란 것도 다 잊었다. 영호 엄마가 내온 양푼의 모둠밥까지 다 해치웠다. 소주를 한 병 더 요구하는 용기도 생겼다.

추위와 배고픔 끝에 몸이 녹고 배까지 부르자 온몸이 노글노글해지면서 잠이 왔다. 온몸을 깨끗이 씻고 보송보송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방에서 늘어지게 잠이나 잤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영호네 가족의 따뜻한 마음은 밤길 시오리를 따라와 써늘한 자취집까지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지금도 와석리에서 만났던 따뜻한 어머니의 밥상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