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잊을 수 없는 맛 1 - 마대산 꽁보리밥-

느림보 이방주 2012. 10. 7. 11:10

마대산 꽁보리밥

 

  

마대산 꽁보리밥

이방주∥수필가 이방주

 

 

숨이

턱에

닿는다. 고갯길은 가파르고 멀다. 준상이는 1050m 마대산 골짜기에 화전을 일구어 보리를 갈고 옥수수 농사를 지어 먹는 화전민의 아들이다. 검은 얼굴은 햇볕 탓이고, 옷이 낡은 것은 가난 때문이다. 마대산 물소리와 솔바람 향기 덕택으로 어린 나이에도 맑은 눈과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 땟국만 지우면 도회 아이들보다 미남이다. 단 10분도 공부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 왜 담임교사를 초대했을까? 

 

 고갯마루에 앉으니 산바람이 땀을 걷어간다. 산은 온통 보랏빛 칡꽃이라 향기가 몸에 배는 듯하다. 내리막길에 청아한 물소리로 7월의 땡볕을 잊는다. 물방울이 톡톡 튀는 징검다리를 건너니 준상이네 마당 끝이다. 산그늘이 드리운 마당이 깨끗하다. 따비에 옥수수 대궁이 줄을 지어 싱그럽다. 토담집은 정갈하고 아담하다.

 

  부모님이 볕에 익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나를 맞는다. 쪽마루에 앉았다. 소쿠리에 삶은 옥수수를 내왔다. 그렇게 큰 옥수수를 처음 보았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젊은 아빠는 도회의 청년에게 옥수수 먹는 시범을 보였다. 크기에 비해 연하고 부드럽고 차지고 달았다. 이어 엄마가 밥상을 내왔다. 새까만 꽁보리밥이다. 그렇게 새까만 보리밥은 처음 보았다. 아마도 절구나 디딜방아에 찧었나 보다. ‘후-욱’하고 불면 밥상 위로 날아가 확 퍼질 것만 같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 마음 상하지 않게 사양하는 방법은 없을까? 상에는 고추장 한 종지, 풋고추 한 보시기, 열무겉절이가 전부였다. 열무겉절이에 눈이 갔다. 잎이 서너 개쯤 나온 애기열무를 양념 간장에 절였는데 밭에서 금방 솎아 왔는지 살아 싱싱하다. 맑은 아침 이슬을 머금어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내키지는 않지만 맛있게 먹어야 한다. 깨소금이 소복하게 버무려진 열무로 꽁보리밥을 덮고 고추장을 푹 떠서 올렸다. 준상이 엄마가 참기름을 아낌없이 끼얹어 준다. 고소한 냄새가 골짜기를 흔든다. 거침없이 비볐다. 검은 꽁보리밥이 파르스름한 열무 무늬가 있는 빨강 고추장 옷을 입었다.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안에 넣어 보았다. 달다. 맵다. 고소하다. 마대산 골짜기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입안에 쓸어 담는 느낌이다. 숟가락은 먹거리에 대한 나의 원초적 욕심을 거침없이 퍼 날랐다.  아, 좋은 맛은 가식 없이 순박한 인정에서 오는 것이구나. 젊지만 가난한 화전민인 준상이 아빠 엄마는 70년대의 방황하는 청년 교사에게 매운 맛을 보여 주었다. 정겨운 내외의 따뜻한 손맛은 얼어붙은 나의 가슴을 잔잔하게 녹여주었다. 풍요로운 오늘에도 그날의 맛을 잊을 수 없다. 

  

(2012. 10. 08)    

 

2012 좋은 생각 1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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