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칼국수

느림보 이방주 2011. 7. 23. 19:53

 

   

장마는 끝났는가? 여름 볕이 이마를 벗겨낼 것만 같다. 아내가 칼국수를 준비한다. 이런 날은 뜨거운 칼국수로 오히려 더위를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양푼에 밀가루를 반죽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에도 장마철에는 칼국수를 해 먹었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는 할머니가 안성맞춤이라고 아끼시던 노란 유기 양푼을 썼다. 가족들이 모두 들에 나가면 외지에 나가 있다가 모처럼 다니러 온 누나는 식구들을 위하여 칼국수를 만들었다. 뜰에 서서 다섯 자도 넘을 것 같은 도마를 지금의 식탁 높이만큼이나 되는 마루에 놓고 기다란 홍두깨를 굴리며 힘차게 밀었다. 스물여섯 살, 당시로서는 노처녀였던 누나는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엉덩이를 살살 흔들기도 하면서 병약했던 막내아우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

 

아내는 미리 반죽하여 숙성된 밀가루 덩이를 밀기 시작한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누님이 그리워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두 손으로 잡으면 남는 부분이 없는 작은 홍두깨에 부침개 넓이밖에 안 되는 반죽을 감았다. 옛날 누나가 하던 모습을 되새기며, 홍두깨를 감아쥐고 앞으로 굴리다가 손을 좌우로 '쓰으윽 쓱' 쓰다듬었다. 식탁 위에 펼쳐 놓고 덧밀가루를 바른 다음 홍두깨에 감아 굴리기를 반복하니 아주 얇아졌다. 얇으면서도 탄력이 있어서 구멍이 나거나 찢어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아내가 만족하게 웃는다.

 

칼국수를 미는 누나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우리 누나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금강산 나무꾼이 만난 선녀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머리카락에 하얗게 밀가루가 묻었다. 땀 맺힌 이마로 나를 바라보고 웃었다. 그 때마다 나도 힘없이 따라 웃었다. 누나는 병약한 아우에 대한 안쓰러움을 웃음으로 표현했다.

 

아내가 썰겠다는 것을 굳이 내가 썰어 보았다. 밀가루 덧바르기를 해서 꼭 그 옛날 모습으로 접은 다음 칼질을 시작했다. 누나가 하듯이 아내가 하듯이 그렇게 경쾌한 도마 소리를 내는 재주가 내게는 없다. 그러나 칼날이 스칠 때마다 고르게 똑똑 떨어지는 면이 예쁘다. 바로 끓여내면 될 것을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아 보았다. 보기 좋다. 내 솜씨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누님의 손길이 내 손을 타고 내린 것일까?  추억이 쟁반 위에 가지런히 쌓이는 것 같다.

 

누나는 그 많은 칼국수를 다 썰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그래도 국수 꼬랑지를 남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국수 꼬랑지를 들고 좋아하는 나를 바라보며 땀이 흐르는 얼굴로 만족하게 또 웃었다. 수건을 가져다 얼굴에 땀을 씻어 주었다. 누나 얼굴에 땀을 씻어 주는 일이 왜 그렇게 쑥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내는 대합을 씻고 감자를 손질하며 육수를 만들기에 분주하다. 호박눈썹나물을 만들어 놓고, 풋고추를 다져 양념간장을 만든다. 가지런하게 썰어놓은 면을 한 번씩 흩어서 바람을 쐬게 한 다음 팔팔 끓는 육수에 넣었다. 하얗던 면발이 투명해진다. 그렇게 익어가는 동안 온 주방에 추억의 냄새가 가득해진다.

 

썰어 놓은 면이 쟁반 위에서 바람을 쐬는 동안 누나는 칼국수에 넣을 감자를 씻는다. 눈치 빠른 나는 텃밭으로 뛰어가 풋고추를 따온다. 누나는 또 웃는다. 울타리나 텃밭 두둑을 작대기로 뒤져서 애호박까지 따오면 정말 기특한 막내아우가 된다. 양은솥에 칼국수를 끓여낼 때면 누나는 불을 싸게 때주지 못하는 내게 눈을 흘겼다. 장마철 보릿짚은 눅눅해서 불이 싸게 타지 않는다. 약한 불에는 면발이 엉겨 붙어 국수가 맛을 내지 못한다. 나는 부지깽이로 보릿짚을 들어 불을 괄게 타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도 누나가 자꾸 눈을 흘기면 부지깽이를 던지고 도망가 버렸다.

 

아내와 단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칼국수를 먹는다. 풋고추를 넣은 양념간장과 열무김치를 듬뿍 얹어도 뜨거운 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갈 때는 온몸에 불이 붙는 듯하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시면, 가슴에 불이 붙어 삼복더위도 달아날 것 같이 시원하다. 그러나 어딘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은 웬일일까?

 

들에서 돌아온 가족들이 마루에 둘러앉으면 누나는 커다란 양푼에 칼국수를 담아 온다. 온가족이 한 대접씩 받으면 그 뜨거움에 더위가 식는다. 잘 익은 열무김치, 풋고추, 오이 냉채를 곁들인 칼국수 맛을 칭송하는 동안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었다. 불을 때다 말고 도망간 말썽꾸러기 막내 이야기도 이제 전설처럼 묻혀버렸다.

 

육수에 정성을 다한 아내의 칼국수는 조미료로 맛을 낸 여느 칼국수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나 맹물에 간장만 넣고 끓여낸 예전의 맛은 찾기 어렵다. 맛은 손맛으로만 내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아니 맛은 혀로 보는 것만도 아닌가 보다. 맛은 가슴으로 보고 추억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의 칼국수가 예전의 맛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오늘의 칼국수에는  땀이 송송 배어 나온 아름다운 누나의 얼굴도, 꼬랑지 남겨 주던 살가운 정도, 형제들의 웃음소리에 담긴 삶의 참맛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인가 보다.

                                                                                                                                                                (2011. 7.   .)

 

칼국수
[에세이 뜨락] 이방주
2011년 07월 28일 (목) 20:35:32 지면보기 11면 중부매일 jb@jbnews.com

장마는 끝났는가? 여름 볕이 이마를 벗겨낼 것만 같다. 아내가 칼국수를 준비한다. 이런 날은 뜨거운 칼국수로 오히려 더위를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양푼에 밀가루를 반죽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에도 장마철에는 칼국수를 해 먹었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는 할머니가 안성맞춤이라고 아끼시던 노란 유기 양푼을 썼다. 가족들이 모두 들에 나가면 외지에 나가 있다가 모처럼 다니러 온 누나는 식구들을 위하여 칼국수를 만들었다. 뜰에 서서 다섯 자도 넘을 것 같은 도마를 지금의 식탁 높이만큼이나 되는 마루에 놓고 기다란 홍두깨를 굴리며 힘차게 밀었다. 스물여섯 살, 당시로서는 노처녀였던 누나는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엉덩이를 살살 흔들기도 하면서 병약했던 막내아우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

아내는 미리 반죽하여 숙성된 밀가루 덩이를 밀기 시작한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누님이 그리워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두 손으로 잡으면 남는 부분이 없는 작은 홍두깨에 부침개 넓이밖에 안 되는 반죽을 감았다. 옛날 누나가 하던 모습을 되새기며, 홍두깨를 감아쥐고 앞으로 굴리다가 손을 좌우로 '쓰으윽 쓱' 쓰다듬었다. 식탁 위에 펼쳐 놓고 덧밀가루를 바른 다음 홍두깨에 감아 굴리기를 반복하니 아주 얇아졌다. 얇으면서도 탄력이 있어서 구멍이 나거나 찢어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아내가 만족하게 웃는다.

칼국수를 미는 누나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우리 누나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금강산 나무꾼이 만난 선녀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머리카락에 하얗게 밀가루가 묻었다. 땀 맺힌 이마로 나를 바라보고 웃었다. 그 때마다 나도 힘없이 따라 웃었다. 누나는 병약한 아우에 대한 안쓰러움을 웃음으로 표현했다.

   
아내가 썰겠다는 것을 굳이 내가 썰어 보았다. 밀가루 덧바르기를 해서 꼭 그 옛날 모습으로 접은 다음 칼질을 시작했다. 누나가 하듯이, 아내가 하듯이 그렇게 경쾌한 도마 소리를 내는 재주가 내게는 없다. 그러나 칼날이 스칠 때마다 고르게 똑똑 떨어지는 면이 참 예쁘다. 바로 끓여내면 될 것을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아 보았다. 보기 좋다. 내 솜씨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누님의 손길이 내 손을 타고 내린 것일까? 추억이 쟁반 위에 가지런히 쌓이는 것 같다.

누나는 그 많은 칼국수를 다 썰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그래도 국수 꼬랑지를 남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국수 꼬랑지를 들고 좋아하는 나를 바라보며 땀이 흐르는 얼굴로 만족하게 또 웃었다. 수건을 가져다 얼굴에 땀을 씻어 주었다. 누나 얼굴에 땀을 씻어 주는 일이 왜 그렇게 쑥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내는 대합을 씻고 감자를 손질하며 육수를 만들기에 분주하다. 호박눈썹나물을 만들어 놓고, 풋고추를 다져 양념간장을 만든다. 가지런하게 썰어놓은 면을 한 번씩 흩어서 바람을 쐬게 한 다음 팔팔 끓는 육수에 넣었다. 하얗던 면발이 투명해진다. 그렇게 익어가는 동안 온 주방에 추억의 냄새가 가득해진다.

썰어 놓은 면이 쟁반 위에서 바람을 쐬는 동안 누나는 칼국수에 넣을 감자를 씻는다. 눈치 빠른 나는 텃밭으로 뛰어가 풋고추를 따온다. 누나는 또 웃는다. 울타리나 텃밭 두둑을 작대기로 뒤져서 애호박까지 따오면 정말 기특한 막내아우가 된다. 양은솥에 칼국수를 끓여낼 때면 누나는 불을 싸게 때주지 못하는 내게 눈을 흘겼다. 장마철 보릿짚은 눅눅해서 불이 싸게 타지 않는다. 약한 불에는 면발이 엉겨 붙어 국수가 맛을 내지 못한다. 나는 부지깽이로 보릿짚을 들어 불을 괄게 타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도 누나가 자꾸 눈을 흘기면 부지깽이를 던지고 도망가 버렸다.

아내와 단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칼국수를 먹는다. 풋고추를 넣은 양념간장과 열무김치를 듬뿍 얹어도 뜨거운 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갈 때는 온몸에 불이 붙는 듯하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시면, 가슴에 불이 붙어 삼복더위도 달아날 것 같이 시원하다. 그러나 어딘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은 웬일일까?

들에서 돌아온 가족들이 마루에 둘러앉으면 누나는 커다란 양푼에 칼국수를 담아 온다. 온가족이 한 대접씩 받으면 그 뜨거움에 더위가 식는다. 잘 익은 열무김치, 풋고추, 오이 냉채를 곁들인 칼국수 맛을 칭송하는 동안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었다. 불을 때다 말고 도망간 말썽꾸러기 막내 이야기도 이제 전설처럼 묻혀버렸다.

육수에 정성을 다한 아내의 칼국수는 조미료로 맛을 낸 여느 칼국수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나 맹물에 간장만 넣고 끓여낸 예전의 맛은 찾기 어렵다. 맛은 손맛으로만 내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아니 맛은 혀로 보는 것만도 아닌가 보다. 맛은 가슴으로 보고 추억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의 칼국수가 예전의 맛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오늘의 칼국수에는 땀이 송송 배어 나온 아름다운 누나의 얼굴도, 꼬랑지 남겨주던 살가운 정도, 형제들의 웃음소리에 담긴 삶의 참맛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인가 보다.

   


▶'한국수필' 신인상(1998), 충북수필문학상(2007) 수상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내륙문학회원, 충북수필문학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내륙문학회장 역임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칼럼집 '여시들의 반란, 편저 '우리 문학의 숲 윤지경전
▶충북고등학교 교사
▶nrb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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