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고등어와 꽁치

느림보 이방주 2012. 3. 11. 11:42

 고등어와 꽁치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추어야겠다. 이제 정말 맛집이나 찾아다니는 탐욕일랑 버려야겠다. 고등어와 꽁치가 좋아 포항으로 대닫고, 구수한 대게 맛이 그리워 강구항까지 차를 몰았다. 후곡리의 붕어찜, 병천 순대, 연풍의 삼겹살은 물론 정선의 먹거리 장터를 찾아 백리든 이백리든 마다않고 달려갔다. 부끄럽지만 지난날 배고픔의 한을 풀기나 할 듯이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그리고 먹거리를 글감으로 삼았다. 하늘은 먹거리에 대한 내 글이 더 미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어와 꽁치를 별나게 좋아했다. 고등어조림을 며칠씩 장복을 했다. 아내가 꽁치조림을 잊고 밥상에 올리지 않으면 손수 부엌으로 나갔다. 점심도시락을 가지고 출근하던 예전에는 내 가방에서 고등어조림 냄새가 났다. 점심시간이면 냄새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핀잔을 들으면서도 고등어와 꽁치에 대한 애착은 그칠 줄 몰랐다.

 

지난 수요일 아침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왼쪽 새끼발가락 부근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괜찮겠지’ 하면서 종일 걸음을 조심해서 걸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새끼발가락에서 연결되는 관절이 감전당한 것처럼 찌릿찌릿 아팠다. 양말을 벗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으려니, 아내가 옆으로 지나가면서 치맛자락만 스쳐도 기다란 철사를 발가락부터 종아리까지 뼛속에 집어넣어 후벼내는 듯이 아팠다. 아니 창문을 열고 바람만 스쳐도 통증이 ‘짜르르 짜르르’ 뼈를 파내는 듯했다.

 

동네 정형외과에 가보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이렇게 아픈 것이 마치 그의 잘못이나 되는 듯이 의사 앞에서 불손한 말투로 통증을 호소했다. 의사는 내게 ‘통풍’이라는 병을 일러 주었다. 한번 발작을 일으키면 바람만 스쳐도 자지러질 듯이 아파서 통풍이라고 한단다. 이걸 다스리지 못하면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더 나아가 신장에 영향을 주어 건강을 잃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황당한 것은 먹이에 대한 탐욕이 그 원인이란다.

 

의사는 인제부터 욕심내서는 안 되는 먹거리 목록을 내밀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첫째가 바로 고등어와 꽁치였기 때문이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끼니마다 몇 점씩 허용하면서 고등어와 꽁치는 절대 금하라 한다. 차라리 쇠고기 돼지고기를 절대 금하고 고등어 꽁치를 몇 한두 토막씩이라도 허용해 주면 안 되느냐고 떼를 써 보았다. 절대 안 된단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멸치도 못 먹고, 콩나물은 물론 된장찌개까지 포기해야 한단다. 나는 그런 의사가 야속했다. 하지만 그를 미워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생각해 보니 이것은 먹이에 대한 탐욕의 결과이다. 짐승처럼 게걸스러운 식탐에 대한 징벌이다. 자연의 섭리에 도전했다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보잘것없는 나의 최후이다. 자연의 내 먹이 통장에 천지신명이 허용한 만큼만 배당해 놓은 모양이다. 이런 아픔은 내게만은 무한정 보장해 주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무지한 나에게 내린 섭리의 경고이다. 그러니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이제 바꾸어야 한다.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한다. 들리는 것만큼만 듣고, 보이는 것만큼만 보고, 해야 할 말도 줄여야 하는 것처럼 먹이도 줄여야 한다. 인제 고등어 꽁치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보다 생존의 섭리를 좇아야겠다. 이렇게 된 나를 비극이라 여기지 말고, 고등어와 꽁치에 대한, 아니 섭리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해야겠다. 군자는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소인이 되더라도 좋으니 몸을 하늘같은 주인으로 섬겨야겠다.

                                                                                                                                                (201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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