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고구마

느림보 이방주 2011. 3. 16. 12:40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 싶다. 아침 먹은 지 두어 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노란 호박고구마가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서 입에 넣었을 때, 뜨거워서 혓바닥에 이리저리 굴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흉내까지 내어 보았다. 바라보던 아내의 표정이 시들하다. 지난 가을에 들여온 것은 물론 누님이 가져온 한 자루까지 이미 다 먹어버렸다는 말만 하고 그만이다.


동네 앞 가게에 가 보았다. 고구마는 없다. 그만둘까 하다가 다른 가게에 들렀다. 아, 찾았다. 비닐 주머니에 아기 주먹만 한 것 겨우 여섯 개를 담아 3,800원이나 받는다. 그래도 그냥 샀다.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껍질 색깔만으로도 맛은 더 물어볼 필요 없다. 노란 호박살이 밖으로 두레질을 해댄 듯하다.


고구마를 대충 씻었다. 이미 한 번 씻어 포장했는지 황토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양면프라이팬에 가지런히 일렬로 줄을 세웠다. 물을 부으면 질퍽해져서 맛이 덜하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은 아주 작게 줄였다. 약한 불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구마가 눈에 선하다. 벌써 군침이 돈다.


지난 가을, 오랜만에 누님들이 오신다는 전갈이 왔다. 대전에 사는 큰누님과 파주에 사는 셋째 누님이 매형들과 함께 오신단다. 네 분 다 칠순을 넘었다. 아버님 산소에 성묘를 겸해 올케를 보고 싶다고 한다. 아내는 오랜만의 시누들과의 만남과 여성테니스클럽의 월례대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물론 누님들을 모시고 산소에도 가고 점심 대접도 해 드리기를 바랐다.


결론은 간단히 났다. 아내는 점심으로 뭘 사드려야 하느냐고 내게 묻는다. 아내는 달마다 있는 월례대회를 포기하고, 일 년에 한 번 오시기도 어려운 손님을 맞기로 한 눈치이다. 나는 이미 아내의 결론을 믿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누님들도 막내 올케를 미더워 한다.


막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까운 황토오리구이 집에 모셨다는 것이다. 10분 거리이다. 달려갔다. 칠순 혈육 네 분을 만났다. 칠순 중반을 넘어선 큰누님의 얼굴은 어느새 어머니의 상호로 바뀌어 계신다. 점심상을 받아 막 수저를 들다가 막내아우를 맞아 모두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한다. 큰 매형은 해맑은 소년이 인제는 함께 늙어간다면서 세월의 무상감을 되새긴다.


화제는 셋째 누님의 농사가 중심이 되었다. 매형이 은퇴 후에 조그만 농장을 마련하여 소일거리로 삼는다는 말씀이다. 성묘도 성묘이지만 동생에게 고구마를 나누어 주려고 일부러 발걸음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고구마로 돌아갔다. 한 마디로 고구마는 간난의 세월에 주림에서 우리 형제들을 건져 올린 구세주이다.


가을에 고구마 캐는 일만큼 흥겨운 일은 없었다. 형제들이 모두 모여 따비밭에서 고구마를 캤다. 말이 따비밭이지 이랑이 아주 길었다. 흙이 황토인데다가 자갈이나 등걸 하나 걸리지 않았다. 우선 큰형님이 낫으로 덩굴을 걷어낸다. 덩굴이 실하기 때문에 그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덩굴을 걷어 밭둑으로 내 던지면 이랑은 까까중의 깎은 머리가 된다. 우리는 한 고랑씩 차지하고 앉아 호미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어떤 곳은 파헤치지 전에 고구마가 덩굴에 달려 나오기도 하고, 황토 흙의 벌어진 틈으로 발그레한 속살을 보이기도 한다. 호미질을 잘못해 고운 몸에 상처가 나면 금방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흘러나온다. 흙을 파헤칠 때마다 나오는 고구마는 모양이나 크기 때문에 절로 우리들의 환성을 자아내게 한다.


밭둑에서 걷어낸 덩굴에서 순을 따던 어머니가 고구마를 한 바구니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올라가시면 그때부터 집에서 내려오는 모롱이로 눈길이 간다. 어머니가 찐 고구마를 한 소쿠리 들고 나타나시는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은데도 우리는 목을 빼고 기다려야만 했다. 동치미가 없는 가을에는 잘 익은 열무김치만 있어도 고구마는 제맛을 낸다. 금방 황토밭에서 캐낸 고구마는 얇은 껍질이 잘 벗겨진다. 마치 보리타작 때 볕에 덴 어깨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 잘 익어 너무 포실 포실해서 목이 메면 불그스름한 김칫국물을 마시면 된다. 해가 서산에 지고 하늘빛이 홍시 빛깔을 닮아갈 때쯤 일을 마무리한다.


한겨울에는 고구마가 점심 양식이다. 가을볕에 슬쩍 물기를 거둔 고구마를 골방 구석에 미리 만들어 놓은 통가리에 저장한다. 점심때가 되면 가마솥에 그들먹하게 고구마를 안친다. 겨울 고구마 맛을 한결 돋우는 것은 얼음이 자그락자그락하는 동치미이다. 동치미 무를 길게 저며서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고구마를 들고 번갈아가면서 한입씩 베어 먹으면 모든 간난을 다 잊어버린다. 고구마로 에끼는 점심 식탁에도 자분자분 웃음꽃이 내려앉는다.


양면프라이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벌써 냄새가 솔솔 풍긴다. 익은 듯 탄 듯 구수한 냄새다. 대나무 젓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부드럽게 쏙쏙 들어가는 손맛이 달다. 노랗다. 질퍽하지도 목이 멜 정도로 포실 포실하지도 않은 노란 호박살 같은 고구마에 윤기가 흐른다. 동치미가 없으니 배추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다. 너무 뜨거워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가 꾹 누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온통 지지며 넘어간다. 가게에서 사왔는데도 어느새 누님의 고구마 맛이 되었다. 누님의 사랑만큼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기억의 저편에서 여덟 형제자매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몰려온다.

 

                                                                                                                    (2011. 3. 16.)

 

고구마
에세이 뜨락-이방주
2011년 03월 31일 (목) 21:17:43 지면보기 11면 중부매일 jb@jbnews.com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 싶다. 아침 먹은 지 두어 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노란 호박고구마가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고구마에 김치를 얹어서 입에 넣었을 때, 뜨거워서 혓바닥에 이리저리 굴리며 어쩔줄 몰라 하는 흉내까지 내봤다. 바라보던 아내의 표정이 시들하다. 지난 가을에 들여온 것은 물론 누님이 가져온 한 자루까지 이미 다 먹어버렸다는 말만 하고 그만이다.

동네 앞 가게에 가보았다. 고구마는 없다. 그만둘까 하다가 다른 가게에 들렀다. 아, 찾았다. 비닐주머니에 아기 주먹만한 것 겨우 여섯 개를 담아 3천800원이나 받는다. 그래도 그냥 샀다.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껍질 색깔만으로도 맛은 더 물어볼 필요없다. 노란 호박살이 밖으로 두레질을 해댄 듯하다.

고구마를 대충 씻었다. 이미 한 번 씻어 포장했는지 황토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양면프라이팬에 가지런히 일렬로 줄을 세웠다. 물을 부으면 질퍽해져서 맛이 덜하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은 아주 작게 줄였다. 약한 불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구마가 눈에 선하다. 벌써 군침이 돈다.

지난 가을, 오랜만에 누님들이 오신다는 전갈이 왔다. 대전에 사는 큰누님과 파주에 사는 셋째 누님이 매형들과 함께 오신단다. 네 분 다 칠순을 넘었다. 아버님 산소에 성묘를 겸해 올케를 보고 싶다고 한다. 아내는 오랜만의 시누들과의 만남과 여성테니스클럽의 월례대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물론 누님들을 모시고 산소에도 가고 점심 대접도 해 드리기를 바랐다.

결론은 간단히 났다. 아내는 점심으로 뭘 사드려야 하느냐고 내게 묻는다. 아내는 달마다 있는 월례대회를 포기하고, 일 년에 한 번 오시기도 어려운 손님을 맞기로 한 눈치이다. 나는 이미 아내의 결론을 믿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누님들도 막내 올케를 미더워한다.

막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까운 황토오리구이 집에 모셨다는 것이다. 10분 거리이다. 달려갔다. 칠순 혈육 네 분을 만났다. 칠순 중반을 넘어선 큰누님의 얼굴은 어느새 어머니의 상호로 바뀌어 계신다. 점심상을 받아 막 수저를 들다가 막내아우를 맞아 모두 반가워 어쩔줄 몰라 한다. 큰 매형은 해맑은 소년이 인제는 함께 늙어간다면서 세월의 무상감을 되새긴다.

화제는 셋째 누님의 농사가 중심이 되었다. 매형이 은퇴 후에 조그만 농장을 마련해 소일거리로 삼는다는 말씀이다. 성묘도 성묘이지만 동생에게 고구마를 나누어 주려고 일부러 발걸음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고구마로 돌아갔다. 한 마디로 고구마는 간난의 세월에 주림에서 우리 형제들을 건져 올린 구세주이다.

가을에 고구마 캐는 일만큼 흥겨운 일은 없었다. 형제들이 모두 모여 따비밭에서 고구마를 캤다. 말이 따비밭이지 이랑이 아주 길었다. 흙이 황토인데다가 자갈이나 등걸 하나 걸리지 않았다. 우선 큰형님이 낫으로 덩굴을 걷어낸다. 덩굴이 실하기 때문에 그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덩굴을 걷어 밭둑으로 내던지면 이랑은 까까중의 깎은 머리가 된다. 우리는 한 고랑씩 차지하고 앉아 호미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어떤 곳은 파헤치지 전에 고구마가 덩굴에 달려 나오기도 하고, 황토 흙의 벌어진 틈으로 발그레한 속살을 보이기도 한다. 호미질을 잘못해 고운 몸에 상처가 나면 금방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흘러나온다. 흙을 파헤칠 때마다 나오는 고구마는 모양이나 크기 때문에 절로 우리들의 환성을 자아내게 한다.

밭둑에서 걷어낸 덩굴에서 순을 따던 어머니가 고구마를 한 바구니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올라가시면 그때부터 집에서 내려오는 모롱이로 눈길이 간다. 어머니가 찐 고구마를 한 소쿠리 들고 나타나시는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은데도 우리는 목을 빼고 기다려야만 했다. 동치미가 없는 가을에는 잘 익은 열무김치만 있어도 고구마는 제맛을 낸다. 금방 황토밭에서 캐낸 고구마는 얇은 껍질이 잘 벗겨진다. 마치 보리타작 때 볕에 덴 어깨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 잘 익어 너무 포실포실해서 목이 메면 불그스름한 김칫국물을 마시면 된다. 해가 서산에 지고 하늘빛이 홍시 빛깔을 닮아갈 때쯤 일을 마무리한다.

한겨울에는 고구마가 점심 양식이다. 가을볕에 슬쩍 물기를 거둔 고구마를 골방 구석에 미리 만들어 놓은 통가리에 저장한다. 점심때가 되면 가마솥에 그들먹하게 고구마를 안친다. 겨울 고구마 맛을 한결 돋우는 것은 얼음이 자그락자그락하는 동치미. 동치미 무를 길게 저며서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고구마를 들고 번갈아가면서 한입씩 베어 먹으면 모든 간난을 다 잊어버린다.

양면프라이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벌써 냄새가 솔솔 풍긴다. 익은 듯 탄 듯 구수한 냄새다. 대나무 젓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부드럽게 쏙쏙 들어가는 손맛이 달다. 노랗다. 질퍽하지도 목이 멜 정도로 포실 포실하지도 않은 노란 호박살 같은 고구마에 윤기가 흐른다. 너무 뜨거워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가 꾹 누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온통 지지며 넘어간다. 가게에서 사왔는데도 어느새 누님의 고구마 맛이 되었다. 누님의 사랑만큼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기억의 저편에서 여덟 형제자매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몰려온다.



▶'한국수필' 신인상(1998), 충북수필문학상(2007) 수상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내륙문학회원, 충북수필문학회원
▶내륙문학회장 역임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칼럼집 '여시들의 반란', 편저 고전소설 '윤지경전'
▶충북고등학교 교사
▶nrb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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